기도하기를 쉬는 죄 (삼상 12:19-25)
09월 21일 (월)
기도하기를 쉬는 죄 (삼상 12:19-25) 19.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중보의 기도를 부탁하는 대목입니다. <...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19절). 그릇된 동기에서 왕을 구했던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사무엘은 위로와 권면 그리고 경고의 말을 남김으로써 왕정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를 최종 마무리하는 데 우리가 기억하는 유명한 약속까지 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23절). 사무엘은 분명 중보의 사명을 띤 선지자로서 백성들을 위해 기도를 게을리 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큰 죄가 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록 백성들은 신정을 거부하고 왕정을 고집하는 우를 범했을지라도 지도자로서 그들을 위해 끝까지 기도하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 참으로 감동스럽습니다. 우리도 늘 식지 않는 기도의 열정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리더의 첫째가는 덕목은 중보기도의 사역임을 결코 잊지 말 일입니다. 오죽하면 <기도하기를 쉬는> 행위가 <죄>라고 했겠습니까?
사무엘은 기도의 여인 한나가 서원기도를 하여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기도의 아들인 사무엘은 이렇듯 <기도하기를 쉬는> 것을 <죄>라 믿으며 백성들을 위한 중보기도에 힘썼던 위대한 기도의 선각이었습니다.
<코로나19>를 핑계로 <기도하기를 쉬는 죄>에 빠지지 맙시다. 기도 쉬는 죄가 코로나로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다 사무엘처럼 <나는 결코 코로나19 하에서도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겠다>며 다짐합시다.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며 기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실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말한 <기도하기를 쉬는 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문 24절 말씀을 옮겨 적어 보십시오. -요즘 당신의 기도생활은 어떻습니까?
주님, 기도를 아예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쉬는 것조차 죄가 된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기도 쉬는 행위가 강도나 절도나 간음과 같은 죄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충격적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어서 기도를 쉬면 저희 영혼이 질식하고 고사함을 깨닫습니다. 더욱 근신하여 기도하게 하시고, 특히 리더들은 공동체를 위한 중보기도에 태만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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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은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꿀벌은 파리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는다. 꿀벌은 꽃만 찾아다닌 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James)는 ‘지혜란 무엇을 간과해야 하는지를 아는 기술’이라고 했다. 쓸데없는 일을 버리는 것은 자신의 목표에 관심을 집중하는 방법이다.”
강일수 저(著) 《안목》 (21세기북스, 172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몰라도 되는 일은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정보나 지식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목표에 관련된 지식과 정보에 집중하면 됩니다. 밭에 자라는 잡초를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밭에 기르고 싶은 식물을 가꾸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다시 만나 사랑을 확인하고 힘을 주십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요한은 어떻게 되겠냐고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요21:20,21). 베드로의 마음속엔 요한이 라이벌이었나 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21:22)
그가 어찌 되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내가 준 사명을 좇으라!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것은 새들에게 맡겨두고, 나는 나에게 주신 사명에 집중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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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For anyone who eats and drinks without recognizing the body of the Lord eats and drinks judgment on himself.(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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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는 이미 십자가로 치유 받았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마음속에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상처라는 것에 매여 있게 되면 오늘과 미래의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는 상처라는 단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조금 언짢은 소리를 듣거나 섭섭한 대우를 받으면 서슴없이 ‘상처받았다’고 이야기하는 청년들을 보게 된다. 그런 경우에는 상처라고 하는 게 아니다. ‘기분 나빠요’ 라고 해야 되는 것이다. 상처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받아서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묻힌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형진 목사의 ‘파멸의 현상 5 - 마음의 상처’에서-
그러나 우리는 모두 상처가 없습니다. 우리의 상처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치유 받았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상처의 껍데기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다 회복해 주신 상처를 안고 스스로 상처가 있다고 자처하며 파멸의 길에 동행해야 하겠습니까? 상처를 던져 버리세요. 그건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란 것입니다. 여러분이 상처라고 믿고 있는 것들을 뛰어넘으세요. 거기에 파멸의 길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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