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입력 2020.07.08 15:00
정세균 국무총리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다주택자가 집을 살 경우 취득세를 가중하는 ‘싱가포르 모델’을 검토해야 한다고 나서자 부동산 업계에서 설익은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싱가포르가 다주택자의 취득세율이 높지만, 보유세가 누진적이지 않고 양도소득세가 극히 적은데 이런 조세정책의 차이는 고려하지 않아 "필요한 것만 빼다 쓴다"는 비판도 나온다.
8일 정계에 따르면 이해찬 대표는 최근 민주당의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무주택자와 유주택자간 취득세율에 차등을 두는 싱가포르 모델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현행 최고 4%인 취득세율을 다주택자에게는 12%까지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앞서 열린 고위 당·정·협의에서 취득세 강화 대책을 의논하면서 싱가포르 사례를 언급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하는 이해찬 당 대표(왼쪽)와 김태년 원내대표 /남강호 기자
주택정책 전문가들은 ‘싱가포르의 취득세 중과’를 다주택자의 부동산 투기를 막는 대책으로 쓰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고 평가한다. 싱가포르의 주택시장의 상황과 조세 제도가 한국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 종부세·양도세 없는 싱가포르, 보유세는 임대수익 근거해 과세
싱가포르는 매도인에게는 양도소득세, 매수인에게는 취득세를 매기는 한국과 달리 주택을 파는 사람이 거둔 수익에 세금을 매긴다는 개념이 없다. 기본적으로 3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팔면 집값이 얼마가 올라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다주택 여부도 상관이 없다. 다만 투기를 막기 위한 제도로 ‘단기매도세’가 있다. 집을 산 지 1년 안에 팔면 집값의 12%를, 보유 기간이 1년 이상 2년 이내면 8%를, 2년 이상 3년 이내면 4%를 각각 세금으로 낸다.
반면 한국에서는 1주택자라도 집값이 많이 오르면 양도세를 많이 내는 구조다. 올해부터는 △2년 이상 실거주 △집값이 9억원 미만 등 조건을 채우지 못하면 1주택자의 양도세 면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주택자라면 중과된다. 시세 차익에 따라 최고 42%를 양도세로 부과한다. 이번 정부 들어서는 오래 보유한 주택을 팔 때 세금을 감면해주던 장기보유특별공제율도 낮아졌다.
싱가포르는 부동산 보유세를 부과하는 방식도 한국과 다르다. 해당 주택의 월 임대수익을 계산한 ‘임대가치’와 실거주 여부에 따라 세율이 달라진다. 본인이 거주하는 집의 예상 임대수익이 연 8000싱가포르달러(약 700만원) 이하면 재산세율은 0%다. 높은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주택이라면 실거주 주택이라도 최고 16% 재산세가 부과된다. 본인이 살지 않는 집은 임대료 수준에 따라 연 임대료의 10~20%를 재산세로 부과한다. 한국의 종합부동산세처럼 집이 여러채 있다고 중과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는 공시가격을 산정해 재산세율을 차등 부과하기 때문에 집을 갖고만 있으면 1주택 실거주자도 무조건 보유세를 내는 구조다. 주택수가 많으면 공시가격에 따라 재산세율도 높아진다.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까지 강화되면서 2주택 이상을 보유하면 재산세와 임대소득세를 모두 내야 한다.
◇ 외국인·법인에는 고율 중과해도 무주택자 취득세는 0%
정 총리와 이 대표가 거론한 취득세인 싱가포르의 인지세(stamp tax)는 단순히 다주택자라고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게 아니다. 국적과 개인인지 법인인지도 반영한다. 싱가포르 국적인 무주택자가 주택을 살 때 부과되는 인지세율은 0%다. 싱가포르 국적 유주택자의 인지세율은 7~10%다. 반면 외국인과 법인의 인지세율은 15% 단일세율이다.
다주택자에게 취득세가 추가된다는 개념은 맞는다. 싱가포르 국적인 2주택자는 12%, 3주택자는 15% 다. 외국인과 법인은 주택 보유수와 무관하게 단일세율을 매긴다. 외국인에는 20%, 일반법인과 부동산개발법인에는 각각 25%와 30%를 중과한다.
한국은 취득세율이 집값, 주택 면적, 보유 주택수에 따라 1~4%다. 집을 사는 사람은 무주택자여도 거의 누구나 취득세를 내야 한다. 실수요자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으로 2019년부터 한시적으로 신혼부부에게 취득세를 감면해주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요건이 까다롭다.
정부는 부부합산 소득이 연 7000만원 이하(외벌이는 5000만원 이하)인 가구가 △생애최초로 △전용면적 60㎡ 이하 △매매가 수도권 기준 4억원, 지방 3억원 이하 주택을 살 때 취득세를 50% 깎아준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으로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 매매가격의 중간값인 중위매매가격은 8억3541만원이다. 수도권 아파트 중위매매가격도 5억1525만원이다.
이관옥 싱가포르국립대 도시계획과 교수는 "자산은 팔지 않으면 실제로 생기는 이익이 없는데 한국에서는 공시가격에 따라 재산세를 부과해 실제 수익이 없어도 세금을 내고, 종합부동산세라는 유례가 없는 제도까지 운영한다"면서 "싱가포르에서는 해당 주택에 거주하지 않고 임대했을 때 생기는 수익에 과세하는 구조이고, 다주택자라도 본인이 거주하는 주택에는 낮은 재산세율을 적용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싱가포르의 주택 거래세는 파는 사람의 부담은 적고 매수자가 (취득세를) 부담하는 구조지만, 한국은 매도자와 매수자가 모두 부담하는 방향이기 때문에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여당인 민주당은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율과 양도소득세율을 높이는 법안과 정부가 전월세시장 안정을 위해 추진한 임대사업자제도의 세제 혜택을 전면 폐지하는 법안 등도 논의 중이거나 발의한 상태다. 반면 무주택자나 신혼부부,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등 위한 세제 혜택이나 대출 지원 대책은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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