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선비'라고 하면 '인격의 조화를 갖춘 실천하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이 선비의 본바탕이다. 그렇다면 '선비 정신'은 어떤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의 정의를 내리는 일처럼 '선비 정신'의 정의를 내리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왜냐 하면, 거기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옛 선비들은 선비의 인품을 상징하는 매화, 난초, 국화, 대[竹]의 사군자를 가까이하며 살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대를 좋아하여 집안에 심어 두고 늘 자신을 경계하는 표상으로 삼았으며, 그 대의 지조와 절개를 시로 노래하고, 화폭에 화제로 담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 참된 선비로 일컬어지는 퇴계 이황이, 율곡 이이가, 회재 이언적이, 고산 윤선도가 그러했고, 탄은 이정, 표암 강세황 등의 묵죽화가 그러했다.
나도 사군자 중에서 대를 가장 좋아하여 오죽(烏竹)을 청자분에 올리고 가꾸며 정성을 쏟는다. 그 까닭은 대가 솔, 매화와 더불어
세한 삼우(歲寒三友)로 불리기 때문만이 아니라, 늘 나로하여금 옛 조상들의 선비 정신을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대는 속이 비어 있으나 마디를 지니고 곧게 자라면서 추운 겨울에도 잎이 푸르고, 그 성질은 맑고 꼿꼿하다. 속이 깨끗이 비어 있음은 청렴(淸廉)과 결백(潔白)이요, 마디를 지니고 곧게 자람은 지조(志操)와 의리(義理)이며, 엄동 설한(嚴冬雪寒)에 그 빛이 오히려 더 푸름은 군자(君子)의 기개(氣槪)이니, 청아하고 고고한 품위는 옛 선비들의 기상(氣像)이다. 대의 이 모든 특성들이야말로 바로 청렴(淸廉)과 결백(潔白)과 지조(志操)와 의리(義理)를 목숨같이 중히 여긴 우리 조상들의 선비 정신을 상징(象徵)하고 있다 하겠다.
특히 선비의 역할을 강조한 대유 퇴계 이황은 "중국 동한(東漢) 때의 선비들은 절의를 숭상하여 세상을 편안히 하였고, 송(宋) 나라의 선비들은 도덕을 숭상하여 인심을 맑게 하였으나, 진송(晋宋) 사이의 선비들은 논란으로 천하를 망쳤고, 당(唐)의 선비들은 글을 쓰는 데만 열중하여 세상을 모르게 되었다."고 하여 진정한 선비의 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잘 일깨워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비를 세력과 지위에 굽히지 않는 존재라 하며 선비의 입장을 세속적 권세에 대비하여, "저들이 부유함으로 한다면 나는 인(仁)으로 하며, 저들이 벼슬로 한다면 나는 의(義)로써 한다." 라고 선비의 특징을 정의하였다.
또한 율곡 이이는 "마음으로 옛 성현의 도를 사모하고, 몸은 유교인의 행실로 신칙하며, 입은 법도에 맞는 말을 하고, 공론(公論)을 지니는 자이다."라고 선비를 정의하였고, 조광조는 "무릇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직 나라를 위하여 도모하며, 일을 당해서는 과감히 실행하고 환난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 바른 선비의 마음 씀이다."라고 바른 선비 정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설파하였다.
따라서, 선비란 청렴 결백하고 지조를 중시하는 사람,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고고한 정신을 지닌 사람, 세속에 물들지 않고 늘 학문을 가까이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할 수 있겠으며, 선비 정신이란 지조를 지키고 의리를 중히 여기는 도덕적 인간의 정신을 말한다 할 수 있겠다. 결국 선비 정신이란 당당하게 행동하며 비굴하지 않고 떳떳하며, 인(仁)과 의(義)를 실천하는 '언행 일치의 행동하는 지성(知性)의 정신'이라 하겠다.
5세기 초 왜국에 갔다가 억류되어 왜왕의 갖은 회유와 고문에도 굴함이 없이 충의와 지조를 위해 목숨을 버린 신라의 박제상으로부터 고려 왕조를 지키려다 선죽교에서 피를 뿌린 포은 정몽주와 조선 초 세조의 왕위 찬탈을 반대하며 목숨을 버린 사육신, 그리고 목숨은 버리지 않았더라도 그 부당함을 고발한 생육신, 임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구국의 횃불을 든 경향 각지의 수많은 의병장들과 1905년 을사조약으로 나라의 운명이 기울자 일제에 항거하며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이나, 경술국치를 당하여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한 매천(梅泉) 황현(黃玹) 등은 '충의와 지조'의 선비 정신을 행동으로 보여 준 진정한 선비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우리는 잊혀져 가는 선현들의 그 참된 '선비 정신'을 회복하여 계속 발전시키고 전승시키며, 그 '선비 정신의 삶'을 실천하도록 해야 하겠다.
<博約會消息>(2009.7.20.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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