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치 1번 대탑(우), 3번 스투파(좌) (이하 사진출처- http://cafe.daum.net/people4050 )
인도 중부 마드야 프라데쉬주의 수도 보팔 근처 북부 46km 지점에 자리한 산치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불교 조각 예술들 가운데 그 극치를 보여주면서 인도 불교의 발전사를 집약해 놓은 곳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818년 한 영국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1912-9년 사이에 존 마샬에 의해 현재의 형태로 조심스럽게 복원되었다. 기원 후 1세기 후반 경에 간다라 지방과 중인도의 마투라 지방에서 사리를 모신 스투파(塔)의 형태로 단순한 문양을 조각한 건축양식으로 기념되어 왔던것인데 이러한 스투파로서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산치에 있는 불탑이다. 산치의 스투파는 크고 작은 것이 20여 개였으나 대부분 파괴되고 오늘날 남아있는 것은 산치 대탑이라고 불리는 제1탑과 그 탑을 사방 동서남북으로 둘러싼 탑문(塔門, torana) 그리고 제3탑이다. 산치 대탑은 인도 불교 예술사 가운데 가장 정교한 형태를 띠고 있는 조각이다. 원래 아쇼카 왕(기원전 286-232재위)이 기원전 3세기에 이 탑을 세웠다고 기록되고 있지만, 그것은 내부에 조그마한 스투파로서 덮여있고, 현재 16m의 높이와 37m의 넓이로 된 모습은 후대에 더욱 확장된 것이다. 이를테면 아쇼카 왕 시대의 작은 탑을 슝가왕조(기원전 2세기) 때에 증축하고 그후 이 원형의 탑을 둘러싼 사방의 탑문이 각각 세워졌고 그 중 남문이 가장 오래된 것인데 이는 안드라 왕조(기원전 2세기-기원 후 3세기)의 초기에 세워진 것이다. 탑문 중에서도 양쪽 기둥을 가로로 연결하는 3개의 횡량(가로 대들보)인 3층 형태의 아치형 문에는 주로 붓다의 다양한 삶의 에피소드를 그린 자타카(jatakas)가 아름답고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특히 이 자타카에는 아직 소승불교의 단계에서 대승불교로 발전하기 전 단계였으므로 붓다의 모습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다만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를테면 붓다의 탄생을 말하는 연꽃이나 그의 깨달음을 말해주는 보리수, 혹은 그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바퀴(法輪, 차크라)나 그의 현존을 상징하는 발자국 또는 옥좌 등이다. 물론 사방의 탑문 안에 안치된 스투파 그 자체가 붓다를 상징하는 하나의 기념비적 작품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산치 1번 대탑>
산치 1번 대탑 (이하 사진출처- http://cafe.daum.net/people4050 )
스투파(STUPA)란 무엇인가? 부처가 쿠쉬나가르에서 80세에 열반에 든 후 가까운 간지스 강가에서 화장을 했는데 조그마한 물체들이 많이 나왔다. 이를 영원한 물체(Sarira)라고 하며 한문으로 '사리(舍利)'라고 한다. 佛典에 보면 사리가 모두 8말 4되가 나왔다고 하는데 당시 인도는 8國으로 이루어졌을때인지라 이 사리를 8分하여 나눈다. 이때부터 分사리가 생긴것이며 나누어진 사리는 8개의 塔을 세워서 모시니 그 명칭을 STUPA라고 하는데 이는 인도말로 '높은분이 돌아가서 계신곳'이라는 뜻이다. STUPA는 다시 TUPA로 이를 한자로 쓰다보니 塔이라 쓰게 된것이다. 인도최대의 전성기는 아쇼카 大王이다. 그는 넓은 대륙국가인 인도를 사상적으로 통일할 필요가 있었고 그를 위해 불교를 선택하였다. 따라서 위에 8개의 탑을 헐어서 다시 모아서 84,000개의 탑을 세우니 이때가 기원전 약 1세기경이다. 그 탑들중 아직 남아있는 탑이 산치市 남쪽 동산 위에 있는 산치탑이다. 바로 아쇼카 왕때의 탑이다. 1번 스투파는 BC 3세기경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대왕에 의하여 세워졌으며 슝가왕조대에 증축된것으로 돔 부분을 덮어 씌웠다고 한다. 스투파의 높이는 16.46m, 직경 36.60m로 가장 큰 규모이며, 그래서 산치대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주목해서 볼 것은 동서남북 사방의 문 위에 세워진 토라나(Torana)인데 여기에는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조각이 새겨져 있어서 이것이 바로 산치 유적의 백미이자 인도 불교예술의 귀한 보물로 꼽히는 작품인것이다. 북-서-남-동의 순서로 만들었다고 하니 입구 정면의 북문으로 들어가 반시계방향으로 돌면 북-서-남-동 순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부따의 직접적인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데 이는 자신의 상을 만들지 말라는 부다의 명령이 지켜진것이기 때문으로 해석되며 그대신 당시의 생활상을 여기저기 조각해놓아서 기원전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입구에서 바라보아 정면, 그러니까 북쪽문으로해서 스투파로 들어섰다. 토라나 문을 통해 들어서면 제일먼저 불상을 만나게 되는데 (대부분의 유적지 불상이나 조각상들이 그렇듯이) 이 역시 얼굴이나 손, 발등이 파손되어 안타까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산치 1번 대탑
산치 1번 대탑
산치 1번 대탑
산치 1번 대탑
대탑 통로
통로
남문 계단
산치 1번 대탑 남문 (이하 사진출처- http://cafe.daum.net/people4050 )
남문은 네 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붓다의 탄생 이야기와 불자로서의 아쇼카왕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이 남문에는 안드라 왕조의 초기(기원전 2세기 이후)에 만들어 졌다는 사실이 명각(銘刻)되어 있다. 비록 지금은 산치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남문 가운데서 인상적인 것은, 문기둥의 일부분에 새겨진 것(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으로 붓다에게 우유 죽을 공양하는 자매(수다타 혹은 두 牧女)의 모습이다.
산치 1번 대탑 남문
산치 1번 대탑 남문 토라나(Torana)
산치 1번 대탑 남문
산치 1번 대탑 동문
산치 1번 대탑 동문
산치 1번 대탑 동문 토라나(Torana)
산치 1번 대탑 동문 지모신 야크니쉬(약시)
산치 대탑에 있는 약시(야크니쉬), "야크쉬니"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 집이나 토지의 수호신적 성격을 갖는다. 깨달음과 윤리성을 그 본래의 뜻으로 삼고 있는 불교는 이같은 민간신앙을 흡수함으로써 생생한 활력을 얻어 민중 사이에 정착했다. 그러나 야크쉬니도 점차 변모해 중국과 일본에서는 야차(夜叉)라고 불리는 악귀가 되어있고, 스리랑카에서는 사람을 홀리는 해로운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
산치 1번 대탑 동문
산치 1번 대탑 동문
동문의 기둥은 열반에 드는 붓다의 모습을 담고 있고, 또한 붓다가 니란자라 강물 위를 걸어서 건너는 기적 등을 묘사하고 있다. 기둥의 중앙 부위를 가로지르는 횡량에서 붓다는 말을 타지 않고 단지 빈말로서 상징되고 있는데, 이는 세속적인 모든 삶을 포기하고 깨달음을 위해 출발하는 ‘출가유성(出家踰城)’의 장면을 말해주고 있다. 한쪽 기둥에는 붓다를 잉태했을 때 달 위에 서있는 코끼리 꿈을 꾸었다는 붓다의 어머니 마야의 꿈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가장 아름다운 산치 대탑의 묘미는 이 동문의 횡량 아래를 장식하고 있는 약시(yakshi) 처녀 상이다. 불탑의 난간이나 탑문에는 주로 붓다의 본생설화(자타카)에 관한 내용이 새겨져 있는 것이 보통인데 산치와 바르후트에는 나무의 신, 산의 신, 토지의 신, 또는 가정의 수호신으로까지 불리는 약시 여성상이 곁들여 조각되어 있다. 약시의 남성형인 약샤는 원래 인도의 오래된 문헌인 <리그베다>에 등장하는데,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영적 존재로 불려졌던 것이다. 이러한 존재가 민간 신앙과 결부되어 풍요와 결부된 지모(地母)의 신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이미 기원전 3세기부터 제작되어 오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신성한 불교의 유적지에 그리고 그것도 가장 오래되고 정교한 불교 미술을 자랑하는 산치 대탑의 동문에 이처럼 가슴이 풍만하고 하체를 드러낸 부드러운 여성의 모습을 조각한 이유는 여성을 종교의 중심에 둔다. 이는 힌두 사원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남성신 쉬바 곁에는 언제나 그의 아내 파르바티가 나타나고 쉬바의 상징인 남근(男根)아래에는 언제나 여성의 생식기인 요니가 같이 숭배를 받고있듯이, 여성 없는 종교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인도 종교의 특징이다. 따라서 불교도 거대한 힌두 전통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 날 수 없었고, 인드라(번개의 신)나 야마(죽음을 관장하는 신)등등의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불교의 다양한 설화도 바로 힌두적 신화의 전통과 영향권 속에 있었다는 것을 반증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종교적 성역에 나타난 픙만한 가슴의 여성상은 불교에까지도 나타나는 인도 문화의 전반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민중신앙이다.
산치 1번 대탑 동문
산치 1번 대탑 동문
산치 1번 대탑 북문 (이하 사진출처- http://cafe.daum.net/people4050 )
깨어진 법륜(法輪)이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는 북문은 네 개의 문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정면으로 가까이 다가서서 자세히 보아야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이 문에는 붓다의 탄생과 초기 삶에 대한 많은 장면들이 새겨져 있다. 원숭이가 꿀 사발을 붓다에게 공양하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붓다의 모습은 보리수로 대신되어 있다. 또 다른 한쪽 패널에는 보리수로 상징되는 붓다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여러 가지 기적 이야기 중의 하나를 말해주고 있다. 3개의 아치형 횡량 기둥 밑에는 코끼리가 사방을 응시 하며 떠받치고 있고, 횡량 사이사이에 층층이 새겨진 사자의 모습 있다.
산치 1번 대탑 북문 토라나(Torana)
산치 1번 대탑 북문 토라나(Torana)
산치 1번 대탑 북문
산치 1번 대탑 북문 불상, 얼굴이 손상되어있다.
대탑 불상
산치 1번 대탑 서문 토라나(Torana)
서문은 배가 불룩 튀어나온 난쟁이들에 의해 지탱을 받고 있어 아주 흥미롭다. 한 기둥의 뒷면에는 붓다가 마라(Mara, 세 눈을 지닌 죽음을 관장하는 신)의 유혹을 받고있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악마들이 도망을 치고 있는 반면에 천사들은 붓다의 저항을 보고 성원하고 있다. 횡랑 꼭대기의 정면에는 붓다의 7가지 화신(化身)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붓다가 직접적인 모습으로 그려질 수 없었기에 세 번은 스투파의 모습으로 네 번은 나무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횡랑 아랫부분의 정면에는 붓다의 일대기에 관한 여러 가지 설화 중에서 붓다의 화신과 관련된 내용이 새겨져 있다. 그중 붓다가 6개의 뾰족한 엄니를 가진 코끼리 형태의 화신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산치 1번 대탑 서문 토라나(Torana)
<산치 2번,3번 스투파>
산치 2번 스투파 (이하 사진출처- http://cafe.daum.net/people4050 )
토라나가 없고 스투파 중간에 돌아보는 길은 있으되 난간이 없으며 꼭대기에 작은 탑 모양도 없이 간단하게 생겼다. 한바퀴 돌아보고 나면 내려온 길로 다시 올라가야 한다.
산치 2번 스투파
산치 2번 스투파
산치 2번 스투파
산치 2번 스투파
산치 3번 스투파
1번 스투파의 왼쪽에는 단순한 모양으로 조금 작은 크기의 #3번 스투파가 서 있다. 여기에는 부따의 제자인 사리푸트라(Saripuyra)와 목갈라나(Mogallana)의 사리가 안장되어 있었던곳으로 유명하며, 이들 사리는 한때 영국으로 옮겨져 대영박물관에 있기도 했으나 인도 독립후 반환되어 스투파 밖에 새로지은 사원에 안치되어 있으며 매년 12월에 일반에 공개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리불, 목련불로 알려져 있는 부따의 10대제자중 으뜸으로 꼽히는 두 사람이다.
산치 3번 스투파
<기타 스투파 >
기타 스투파 (이하 사진출처- http://cafe.daum.net/people4050 )
기타 스투파
기타 스투파
기타 스투파
<아쇼카 석주>
아쇼카 석주(Ashoka's Pillar) (이하 사진출처- http://cafe.daum.net/people4050 )
아쇼카 왕은 자신의 점령지 여기저기에 석주를 세웠는데 산치에도 아직 남아 있는것이 #1번 스투파 남문 앞에 있다. 그러나 온전한 모습은 아니며 상부 사자상은 고고학 박물관에 모셔놓고 있어 여기에는 하단만이 있을뿐이다.
아쇼카 석주
아쇼카 석주, 1번 스투파 남문 앞
아쇼카 석주
<산치 기타 사원과 수도원>
산치 51번 수도원 (이하 사진출처- http://cafe.daum.net/people4050 )
산치 기타 사원과 수도원
산치 기타 사원과 수도원
산치 기타 사원과 수도원
산치 기타 사원과 수도원
산치 기타 사원과 수도원
산치 기타 사원과 수도원
산치 기타 사원과 수도원
산치 기타 사원과 수도원
산치 기타 사원과 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