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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慶尙)에서 길림(吉林)까지 동신라(新羅)땅 >
☞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의 신라구주(新羅九州) 항목을 다시보면 ~
< 만주(滿洲)는 6세기부터 7세기까지 신라(新羅)땅 >
지금까지 국사교과서에서는 신라가 압록강 두만강을 벗어나서 만주에도 존재했다는 구체적인 발표는 접하여 보지 못하였다고 생각된다.
'만주까지 신라땅'이라는 표제는 매우 충격적인 말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18세기에 기록되었으니 과연 위와 같은 이야기가 사실일까를 살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위와같은 말을 하면 황당무개한 것으로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서에 그런 기록이 있다면 무심코 지나칠수는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高麗)나 근세조선시대의 어떤 기록에도 만주가 신라땅이었다고 나타낸바 없었는데 1778년까지도 만주에서는 만주가 신라땅이었다는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만주원류고」에서 '길림에서 광령까지' 신라땅으로 기록하였을 것이 아니겠는가 ? 고려(高麗)나 근세조선에서도 모르고 있었던 비밀(?), 만주가 신라땅이라는 자료가 어디에 있었을까 ?
18세기까지도 만주가 신라땅이라는 흔적이 있었다면 지금도 발견될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무관심으로 일관하여 왔으며 만주에서 고구려(高句麗)가 있었다는 것에만 연연하여 오고 있었다.
과연 이 기록이 사실일까 ? 그리고 「만주원류고」 이외의 기록에 만주가 신라땅이라는 기록이 어디에 있는가도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1. 청나라에서 편찬한 「만주원류고」에서 만주(길림에서 광령까지)는 신라땅
「만주원류고」에서 신라에 관계되는 인용 사료는「北史, 梁書, 通志, 隋書, 冊府元龜, 舊唐書, 新唐書, 太平 宇記, 通考」등에 의하여 위치를 표현하고 있는데 「奉使行程錄」에서 ' 自咸州北行至同州東望大山卽 新羅山深處與高麗接界'라 하였다.
案에 의하면 함주는 今함평부이고 동주는 금동산 在鐵嶺 開原之間, 동쪽으로 威遠堡 즉 吉林界, 남쪽으로 봉천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許亢定行程錄」에 의한것이라 한다. 18세기에 나오는 지명 鐵嶺 開原과 吉林이 지금도 있다.
또 新羅九州 항목에는 「新唐書」 唐會要에 의하여 표현하였고 謹案에서 ' 其疆土東南竝有今朝鮮之慶尙江原二道 西北直至吉林烏拉又西近開原鐵領'이라 하였고 개원 이후 발해가 성할 때 압록강으로 경계하였다. 결국 신라강역은 북쪽의 동쪽은 吉林에서 서쪽은 개월 철령까지라고 하였다.
그리고 ' 九州之設東至吉林西至廣 跨海蓋而包朝鮮幅員式擴矣'라고 하였는데 吉林 廣寧이 현재도 있고 廣寧 근처에 鐵嶺 開原이 있으니 신라의 서쪽은 開原 鐵嶺 廣寧으로 이어지는 선을 경계로 나타내고 동쪽은 길림으로 이어짐을 볼 수 있는 것이다.
18세기에도 있는 지명이 현재 요하의 瀋陽을 중심으로 동북쪽에 鐵嶺과 開原이 있고 서쪽에 廣寧이 北鎭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北鎭=廣寧)
결국 「만주원류고」에서 신라는 동쪽 길림에서 서쪽의 개원 철령 광령까지를 포함하는 지역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만주원류고」에서는 이를 신라가 高句麗 百濟를 멸한 뒤 설치한 9주에 포함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물론 여러 東夷 관계 기록들 즉 앞에서 열거한 사서에 근거한다고 말하고 또한 百濟 高句麗 패망한 이후 그땅의 9주를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인용한「25사」동이전과 공통부분의 高句麗 百濟 패망의 땅은 황해 동쪽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어떻게 생각하던지 18세기까지 만주에서는 신라땅이라는 흔적이 있었기 때문에 만주원류고와 같은 내용이 기록될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면 다른 사서에서는 이와 유사한 기록이 어디엔가 있을수 있으므로 찾아봐야 할것이다.
서쪽의 廣 을 高句麗 패망 지명인 은산 신성 용도 둥의 서쪽에 있는 代와 燕慶사이의 恒山이 있는 지역의 廣靈으로 볼수 있으나 다른 지명인 開原 鐵嶺과 같은 지역에 없기 때문에 鐵嶺 서남쪽 지역에 있는 北鎭 즉 廣寧으로 보아야 타당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2. 서남쪽은 평양성이고 동쪽은 신라라는 곳의 海州는 발해만 錦州 북쪽
「만주원류고」에 나타난 길림에서 광령까지의 신라땅을 다른 사서에서는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가 바로 해주를 경계로하여 신라땅이 있었다고 「遼史」에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교과서도 황해도 해주 근처까지 신라땅으로 표기하는지도 모르지만 신라와 관련된 해주는「요사」에 찾아야하고 그 위치에서 옥저땅과 신라땅을 찾아보아야 한다.
海州는 신라뿐만 아니라 옥저땅으로 「삼국지」「후한서」에서 또 평양성과 신라땅의 경계로 「요사」에 등장한다.
현재 海州는 네 곳이 있다. 한국의 황해도 海州가 있고, 러시아의 연해주가 있고, 중국 요령성 海州가 있고, 강소성 海州가 있다.
海州는 옥저땅을 밝히고 평양성을 찾고 신라와의 경계를 찾는데 매우 중요한 지명이다.
① 평양성과 海州와 신라경계에 대한 기록을 보자.
『요사(遼史)』권 38에 의하면 ' 암연현의 동쪽은 신라이며 옛 평양성은 현의 서남쪽에 있으며 동북 120리 지점에 해주(海州)가 있다.(巖淵縣東界新羅故平壤城在縣西南東北至海州一百二十里)'고 하여 해주와 평양성과 신라의 관계를 기록하고 있다.
㉠ 황해도 해주는 서남쪽에 평양성이 있어야 하고 요나라땅이어야 하니 부적격인데 김부식도 해주성을 몰랐다고 하였으며 이땅이 「요사」의 해주로 볼 수 없다.
㉡ 중국 강소성 해주는 요나라 땅이나 평양성관계로 보아서 무리가 있고 高句麗와 신라의 경계로 보기에도 부적격이다.
㉢ 연해주는 평양성과는 방향이 일치하지만 동쪽이 신라라고 하였으니 부적격이다.
㉣ 은산 용도 고대인성 신성 북평 등 高句麗 동쪽에 있는 錦州 북쪽의 해주(海州)는 高句麗長城 근처에 있으며 요나라땅이니 가능성이 있는데 장성은 『삼국사기』高句麗장성 기록과 일치하고 있으니 이곳의 해주가 『요사』의 해주로 보여진다.
이곳이 『三國志』東夷 東沃沮에서 '海州衛本沃沮國地(明志)'라고 하였는데 「삼국지」「후한서」「진서」 동이 위치 배열도에 지명을 삽입한 경우 태원 북평의 高句麗 동쪽에 있으니 옥저 위치와도 일치하고 있다. 이 해주는 평양성과 옥저의 위치를 분명히 밝혀 줄 지명이니 연구해야 한다.
「요사」에 의하여 가장 타당성있는 錦州 북쪽의 해주는 「만주원류고」에 신라땅 서쪽 경계의 지명인 廣寧이 남쪽에 있고 동쪽에 鐵嶺과 開原이 있으니 이 이상 고구려와 신라경계를 명확하게 하여줄 海州는 없을 것이다.
이 또한 옥저땅을 밝혀주는 지명으로 보여지고 만주라는 지명이 생겨나게된 원인을 밝혀줄 지명이라고 보여진다.
< 해주, 광령, 철령, 개원, 길림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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