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궁중비사] 18. 王이 되려면 먼저 公主를 화랑 김응렴(金應廉)은 각간(角干) 김계명(金啓明)의 아들로서 조상은 왕족이었다. 그는 덕행이 높은 삼선설(三善說)의 인연으로 부마(駙馬)가 되었고, 나중에는 제四十八대의 경문왕(景文王)이 되었다. 화랑시대 김응렴의 삼선설과 삼복설(三福說)은 다음과 같은 일화로 유명했다. 제四十七대 헌안왕(.. 歷史. 文化參考 2007.02.27
[신라 궁중비사] 17. 元聖王의 登極夢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 소위 통일신라 시대가 와서 한반도에는 비로소 통일된 민족이 평화로운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그전에 신라, 고구려, 백제로 갈려서 동족끼리 피를 흘리고 싸우던 민족의 비극은 그 몇 백년 동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전쟁의 피해를 면한 평화시대가 .. 歷史. 文化參考 2007.02.27
[신라 궁중비사] 16. 高句麗와의 싸움 백제의 항복을 받은 뒤에 당나라는 임시로 백제에 무인(武人) 정치를 베풀고 있었다. 신라의 무열왕과 김유신은 백제의 영토와 백성을 신라에서 통치하려고 했으나 소정방 장군은 그러한 신라의 뜻을 알면서도 무시해 버리고 말았다. 신라로서는 아직 고구려라는 적이 남은 이때 전리품을 다투려고는.. 歷史. 文化參考 2007.02.27
[신라 궁중비사] 15. 三國을 統一한 新羅 花郞道 태자시절에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큰 계획을 세웠다.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려면 어떤 방법으로 싸워야 할까?” 태자가 김유신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 신라에는 임전무퇴(臨戰無退)의 화랑도 정신과 무력을 당할 자 없나봅니다. 그러나 한 나라만 상대하면 문제 없지만 두 .. 歷史. 文化參考 2007.02.25
[신라 궁중비사] 14. 妹夫와 妻男의 新羅國 김춘추는 제二十五대 진지왕(眞智王)의 손자로서 부친은 각간(角干) 김용춘(金龍春)이요, 모친은 제二十六대 진평왕(眞平王)의 천명공주(天明公主)였다. 그는 선덕여왕의 특허로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와 결혼한 후 유신과 함께 삼국통일(三國統一)의 큰 포부를 품고 나라에 충성을 다했다. “춘추는.. 歷史. 文化參考 2007.02.25
[신라 궁중비사] 13. 꿈을 사서 王妃가 된 文姬 왕족의 김춘추(金春秋)와 화랑 출신의 김유신(金庾信)이 아직 총각 시절에 그들은 장래의 큰 꿈을 겨루는 용과 같은 친구 사이였다. 인물로서도 쌍벽(雙璧)이었고, 무술로도 그랬고 풍류로도 그랬다. 신라(新羅)는 삼국(三國)을 통일(統一)해서 한민족(韓民族) 역사상 최초로 단일민족(單一民族)의 단일.. 歷史. 文化參考 2007.02.25
[신라 궁중비사] 12. 居陀知와 海仙 진성여왕은 애욕삼매로 '남자궁녀'까지 두고 향락에 빠져 있었으므로 국내의 정치는 혼란과 극도의 부패에 빠져 있었다. 백제의 견훤(甄萱)이 공격해 왔고 궁예(弓裔)의 반란도 겪어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 당나라에 예물 보내는 것도 게을리하였으므로 형식적으로라도 종주국(宗主國) 지위에 있던 당.. 歷史. 文化參考 2007.02.25
[신라 궁중비사] 11. 眞聖女王의 愛慾三昧 제四十九대 헌강왕(憲康王)의 삼형제는 모두 왕 노릇을 했다. 제五十대가 아우인 정강왕(定康王)이오, 제五十一대가 매제(妹弟)인 진성여왕(眞聖女王)이다. 여왕의 이름은 만(曼)이며 십일년 동안에 나라를 망쳐버릴 뻔했다. 여왕은 신라 여왕으로는 마지막 여왕이었는데 왕실을 음란의 소굴로 만들어.. 歷史. 文化參考 2007.02.25
[신라 궁중비사] 10. 善花公主와 薯董의 사랑 신라 서울 남쪽 교외에 남지(南池)라는 큰 못이 있었다. 이 못가의 초라한 집에 신분 모르는 처녀가 홀로 살고 있었다. 외롭고 가난한 처녀는 자기의 조상의 내력도 몰랐다. 세상에서는 물론 천한 집의 계집애로 경멸하고 웬만한 평민의 총각도 아내로 데려가려고는 하지 않았다. 남의 집에 가서 빨래.. 歷史. 文化參考 2007.02.25
[신라 궁중비사] 9. 眞德女王과 瑤石公主의 競艶, 그리고 元曉 선덕여왕의 다음 임금도 여자로서 제二十八대 진덕여왕(眞德女王)이 등극했다. 진덕여왕은 선덕여왕의 사촌 누이동생으로서 이름은 승만(勝曼)이었다. 진덕여왕은 미인인데다가 글을 잘하는 재원(才媛)으로서 당나라 황제에게 지어 보낸 송가(頌歌) 태평가(太平歌)로 유명하다. 신라에도 이렇게 한시.. 歷史. 文化參考 2007.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