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2일
5.31 지방선거에서의 집권당 참패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통합.합당 등 정치권 새판 짜기 논의는 이미
시작됐다. 그 한복판에 고건 전 국무총리가 있다. 1일 서울 연지동 여전도회관에 있는 개인 사무실에서 고 전 총리를 만났다. 한시간을 넘겨
계속된 인터뷰에서 그는 '경제 대도약을 위한 국민 대통합'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10년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를 넘어서야 하고, 중국과 함께 어떻게든 G10(선진10개국)에 들어가 선진 강국에 진입해야 한다"며 "다음 정부와
지도자가 누가 됐든 이를 역사적 소명으로 알고 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나라당의 승리라기보다 여당의 완패라고 본다. 국민이 정치에 대해 뭘 원하고 바라는가 고민하게 하는
선거였습니다." -열린우리당 참패의 근본적 원인을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국민들은 겸허하고 유능하고 책임질 줄 아는
여당을 바랐을 텐데 여당은 이런 바람을 충족하지 못했고, 국민의 마음을 전혀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선거 참패의 책임이
열린우리당에 있나요. 아니면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을까요. "국민의 입장에서 정부와 여당은 동일체.공동운명체입니다. 내부에서 내 탓
네 탓 따지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지요." -노무현 정부의 초대 총리로서 지난 3년의 국정 운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수십 년간 지배해온 권위주의의 틀을 깼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회적 통합을 바라는 국민적
요청과는 반대로 오히려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방향으로 일해온 것 아닌가 하는 게 아쉬운 점이지요." -정부가 가장 잘못한 정책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서민들이 느끼는 경제적 곤란에 대해 대통령과 정부가 체감온도를 같이 맞춰놓고 국민과 대화해야 하는데 그게
항상 빗나갔던 것 같아요." -부동산 대책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부동산 정책은 시장원리를 무시해서도 안
되고 시장원리에만 맡겨서도 안 됩니다. 적정한 선에서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특정 지역의 주택가격을 잡기 위해 전국의 주택정책을
운영한다는 데 문제가 있어요. 또 주택에 대한 수요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다양한 공급이 이뤄져야 하는데 정부가 그런 것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게
아쉬운 점입니다." -부동산을 세금으로 잡으려 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외국에 비해 주택보유세가 낮고 거래세는 높은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보유세는 어느 정도 올려야 했다고 봐요. 그러면 거래세는 제대로 내렸어야 했는데 그걸 안 하고, 말하자면 퇴로까지
차단해 놓고 보유세만 올리니까 거기에 해당하는 많은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미 FTA 협상을 놓고 정권
내부에서도 부정적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경제의 80% 이상을 해외
시장에 의존하는 우리 입장에서 세계 여러 나라와의 FTA 체결은 생존전략과 같아요. 총리 재직 당시 한.칠레 FTA 협상을 타결할 때 피해
산업인 농어민 보호를 위해 119조원의 농어촌 투융자 대책을 만들었어요. 한.미 FTA도 피해 산업에 대한 충분한 전략과 대책을 세워놓고 타결에
노력해야 합니다."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이고, 보람을 느낀 때는 언제였습니까.
"갑자기 국회에서 탄핵이 의결되니 그 순간이 제일 어려웠어요.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제 본능에 따라 판단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무엇이 가장 시급하고 가장 중요한 것이냐를 생각했어요. 국가안보 점검을 필두로 해 외교.경제안정.해외신인도.국내 치안 질서 등의 순서로
위기관리를 해나갔지요. 이때 국민들이 권한대행을 신뢰하고 적극 협조해줘 안정적으로 국가를 경영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보람이고 국민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국가의 경영관리에 있어 국민의 신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체험했어요."
-권한대행을 하는 동안 혹시 '대행'자
떼고 진짜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요.
"당시 불안정한 상태를 최단기화하고 나라를 온전하게 경영관리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른 욕심을 부추긴 사람이 있긴 있었어요. 나더러 '여차하면(탄핵이 통과되면)보궐선거에 나와야 할 것 아니냐'고 하기에 그
자리에서 정색을 하고 야단을 쳤어요. '내가 중심이 돼 나라를 관리하고 있는데 내가 없으면 누가 관리하겠느냐. 누구에게 맡기고 보선에 나가느냐.
말도 하지 말라'고 했던 일이 있어요."
-사퇴한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이 연대를 제안했었는데요.
"저는 그동안
특정 정당 중심이 아니고 제 정당과 정파를 초월해 당면한 국가적 어젠다와 나라의 미래 발전 전략을 모색하는데 협력하자고 제의해 왔어요. 선거
전략 차원이 아니고 국가적 차원에서 협력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뜻에 같이하는 사람들이라면 연대하고 협력할 생각입니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고 전 총리 등 신망 받는 대선 후보를 영입하겠다고 했는데요.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정당에
입당하는 형식은 아니고 그분들이 고 전 총리 쪽으로 개별적으로 들어오는 형태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게 얘기하면 그분들이 기분
나빠하실 테고(웃음) 특정 정당과의 연대 협력 이전에 중도 실용주의 개혁노선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연대협력에 중점을 두려
합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한나라당과 손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저더러 중도
통합하라는 얘기 아닐까요.(허허허)"
-중도 실용주의 세력의 규합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일정을 공개해 주실 수 있습니까.
"7월 중에 중도 실용주의 개혁에 참여하겠다는 일반 국민들과 일종의 국민연대 같은 것을 만들어 새 정치 패러다임에 대해 기탄없이
얘기하고 고민하는 모임을 결성해 볼까 합니다."
-모임의 성격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지요.
"정당은 아니고
국민운동 성격의 모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앞으로 신당 등 정치결사체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까.
"그것을 예단하고
추진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정치인도 참여합니까.
"가급적 비정치인으로 하려고
합니다."
-(정치 참여)결심의 시기는 언제쯤이 될까요.
"국정에 여러 번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나라와 국민, 역사에
대해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서 제가 해야 할 시대적 역할에 대해 머지않아 결단을 내릴 것입니다. 늦지 않게 적절한
시기에 결심을 밝힐 것입니다."
-차기 대선 후보 구도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과 함께 '빅3'가 되는 형국인데요.
두 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박 대표는 겸허하면서도 아주 단호한 여성 정치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시장은 성공한
기업경영인으로서 추진력 있는 시장입니다."
-본인의 가장 큰 단점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중하다는 얘길 듣는데
오래 공직에 있다가 보니까 그런 게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단이 필요할 시점엔 결단합니다. 신군부가 국무회의장을 둘러싸고 5.17비상계엄령
확대를 의결할 때는 참을 수 없어 반대하고 사표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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