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파 전통으로 된 훌륭한 작품으로 스케르쪼풍의 제2악장을 덧붙여서 4악장으로 만들었으며, 그 형식을
교향곡에 접근시켰는데, 이것은 협주곡에 대한 그의 이념이 교향곡화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렇듯 브람스는 이 협주곡에 스케르쪼 악장을
추가하여 하나의 혁명을 꾀하였으며, 이것은 대가적인 기교를 필요로 하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 ‘피아노 교향곡’이라 불리우는 계기가
된다.
명 피아니스트들에게 베토벤의 다음으로 많이 선택되는 협주곡 녹음 레파토리가 아마 브람스의 2곡일 것이다.
특히 2번은 협주곡으로는 이례적으로 4악장이고 연주 시간도 매우 긴 대곡이며 기교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데도, 명곡인데다 연주 효과와 일반적인
인기가 꽤 좋아서 웬만한 연주자들은 거의 하나 이상 녹음이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쌓여 온 음반의 수만 해도 상당한데, 이 곡을 새로 녹음하는
연주자에게는 기존의 음반들에 대해 자신을 어떻게 부각시키는가가 큰 문제가 될 정도다.
1881년에 작곡된 피아노협주곡 2번은 1번을 작곡하고 20년도 더 지나서 만든 것이다. 이 엄청난
인터벌이 이 작품의 깊이를 더해주었음은 물론이다. 오케스트라적 구성미는 더욱 견고해졌고 그만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모두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
연주하는 당사자에겐 여간 고역이 아닐 듯하다. 거대한 스케일이나 구성 등에서 단순히 피아노협주곡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그 존재감이 큰 작품이다.
'피아노로 연주하는 교향곡' 또는 '피아노를 위한 교향곡' 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싶다.
획기적인 사고나 생각은
단순히 하늘이 주신 영감일지도 모른다.
나한테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잘 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일 해서 내 것이 되기까지는 격멸해야 하는 선물이다.
빨리 얻으려고 서두를
필요도 없다.
악상은 마치 씨앗용 옥수수처럼
우리하곤 상관없이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싹이 틀
것이다.....
Johannes Brahms (1833-1897)
작품 해설 & 구성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 b플랫 장조는, 2개의 알레그로 악장과 한개의 느린 악장,
마지막에 다시 알레그로 악장으로 돌아오는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9세기후반에 일반적으로 유행하던 협주곡 작풍과는 달리, 피아노
독주부분(카덴차)의 기교적 난이도와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음이 돌출되지 않으며, 오케스트라에 완전히 융화되도록 쓰여진 교향악적인
풍미를 지닌 곡이다.
제1악장
멀리서 울려오는 듯한 나른한 호른의 소리로 시작한다. 그 밑으로 무거운 피아노의 아르페지오가 낮게
흘러들어와 주제선율을 펼친다. 피아노의 제1음만으로 무대 바닥이, 혹은 홀 전체가 떨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짧은 선율이
끝나면, 느닷없이 피아노가 분출하듯 카덴차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무겁고 예리한 발톱이 땅바닥을 내리쳐 파헤치는 음이다. 거의 건반
좌측에 치우친 저음의 무게는, 대지를 직접 파낸다는 말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잡아 뜯으면서 날아 오르는 불의 발톱.
이런 피아노에 이끌리듯 오케스트라의 튜티(*tutti:총주)가 한꺼번에 몰아 닥친다. 산맥 능선을 따라
흐르는 구름 그림자 같은 장대한 오케스트라의 울림 아래, 주제를 펼쳐나가는 피아노의 초절기교는 헤아릴 수 없이 어두운 불길을 뿜어 내는 또 다른
세상의 신음처럼 들렸다. 그 신음소리가 넘쳐 오르다가 무너지고, 쏟아져 내리다가 다시 기어오르는 폭풍 처럼 회오리 치기
시작한다.
제2악장 알레그로 아파쇼나토(*appassionato:정열적으로)라고 표기되어
있다.
작가의 지시대로 피아노는 또 다시 초반부터 과감하게 일어섰다. 빛은 한층 더 멀어지고, 날카로운 발톱은
더욱 무겁고 거칠게 휘몰아치며, 그것을 바쳐든 현악이 애처로운듯이 한숨을 내쉬다 흔들렸다. 건반을 누르는 무게, 그 격력함은 피를
흘리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는 피아니스트의 영혼에서 울려나온 목소리이자, '리비에라(*소설의 주제, 정체불명의 스파이)'를 향해
토해내는 격정이었다. 숨이 막힐정도로 땅 깊숙이 내리치는 소리의 무게는, 20년이란 세월과 분노의 무게였다. 피아니스트는 눈부신 얼음의 미소를
띤 채, 미칠듯한 분노에 통곡하고 있었다.
싱클레어(*노먼 싱클레어:소설의 주인공, 천재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은 대담과 섬세함, 음산함과 아름다움의
천을 차례로 휘감는다. 이윽고 오케스트라의 울림과 구분하기 힘들만큼 하나가 되어 피아니시모에서 포르테시모까지, 음의 입자는 분명 선명한 윤곽을
가지고 태어나는데도 불구하고 흘러나오자마자 서로 엉키고 성켜 결렬하게 뒤섞인다. 그렇게 땅을 향해 내리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하늘을 향해 쭉 뻗어나가는 섬세한 탄식의 소리가 듣는 이의 가슴을 찟어 놓는다.
중간부의 마르카토(*marcato:한음한음 뚜렸하게)에서 싱클레어는 서정과 격정을 마술처럼 뒤섞는가 하면,
이어진 주제 재현부에서 다시 무겁게 신음하고, 곧이어 울려퍼지는 피날레를 향해 뛰어 오른다. 테지마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으며, 버킨(*킴
버킨:영국 정보부 MI5의 '리비에라'사건 총 책임자, 테지마의 친구)은 옆에서 들릴 정도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래쪽 좌석에 앉은
'리비에라'의 얼굴은 창백하면서도 의연해 보였다.
제3악장
안단테는 첼로가 연주하는 주제선율이 아름다웠다. 현악파트의 음색이 흐르는 동안, 싱클레어는 건반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현악 선율 틈새에서 응축된 최상의 한방울이 떨어지듯 피아노 소리가 스며나오기
시작한다. 오케스트라는 피아노의 물방울에 놀란듯이 흠칫하고 몸을 떨며 더욱 나른한 선율을 자아낸다.
그 모습은 온 감각을 애무하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싱클레어의 손가락에서 굴러 떨어지는
음은 틀림없는 물방울의 울림을 지니고 있었다. 방울마다 순간적으로 빛을 발하며 흐미하게 떨어진다. 물방울은 서서히
겹쳐져 흐르는 물줄기로 변했으며, 현악의 곡선을 타고 위로 튀어 오른다. 현악이 짧은 비명을 외치자 그 아래로 피아노가 굽이치고, 다시
현악이 구슬프게 울부짓으면 피아노가 그 음을 담아 거두어 간다.
중간부에서 더욱 느린 아다지오가 전개되자, 피아노는 또 다시 물방울이 되었다. 예전보다 한층
더 조심스러운 한 방울이 선율 너머로 떨어진다. 다시 한방울. 이 음은 다른 음과 겹치거나 앞뒤로 이어지는 음이 없는
높은 단음에 불과했다. 하지만 틀림없이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제4악장 알레그로
그리하여 느린 악장이 사라지듯이 끝난 아주 짧은 순간 뒤에, 눈부신 빛의 입자로 돌변한 피아노가 창조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가, 빛을 발하며 쏟아져나와 최종악장인 알레그로의 질주로 이어진다. 어둠이 거둬지고 빛이 내려온다. 싱클레어의 손가락은
악마처럼 가벼웠다.
섬찍할 정도로 난이한 기교를 마치 즐기는듯한 가벼움이었다. 모든 소리가 늠름하게 일어서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살아 숨쉬지 않는 어느 존재와도 같은 청명함, 경쾌함과 빛에 감쌓인채 피아노도 피아니스트도 질주하고 있었다.
1악장에서 땅 속 깊이 파내려가던 손가락이 이번엔 하늘을 날아 오른다. 만일 이것이 사람의 손가락이라면 건반을 두드리기위한
수많은 장애물이 있어야 하는데도, 싱클레어의 손가락 앞에는 쓸데없는 것들이 일체 존재하지 않은 것
같았다.
처음부터 변함없던 싱클레어의 미소는 이제 천상의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달리면서 피아노는
오케스트라를 쉴 새 없이 잡아 당기고, 영원으로 이어진 문을 연달아 박차며, 문이 열릴 때 마다 그 빛은 더욱 강해졌다.
이윽고 피아노가 코다(*coda:종결부)의 문을 활짝 열자, 피아니스트는 한순간 그 곳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빛을 한 몸에 받아들였다. 교향악이라는 대지에 우뚝 서 있는 행복의 절정, 혹은 가장 높은 곳에 왕림한 임금과도
같았다.
이번에야말로 홀 전체가 흔들렸다. 2천명의 청중이 한꺼번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진동으로, 그리고 박수의
폭풍 속에서 크게 떨렸다. 무의식 중에 버킨의 입에서 감탄사가 새어나왔다.
" ‘리비에라’ 따위한테 이런 음악을 들려 줄 필요는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