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名文시리즈/나무들 비탈에 서다

鶴山 徐 仁 2006. 2. 3. 00:04
그 속에 초가집 열여덟 채가 무거운 지붕을 감당하기 힘든 것처럼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黃順元   
 편집자 注: 이 작품은 1960년 ‘사상계’에 발표된 장편소설이다. 이 글은 소설가 金埈成씨가 발췌해 보내온 부분이다. 金埈成씨는 “6·25와 4·19 이후 좌절과 무기력에 빠진 젊은이들의 의식세계를 그려내며 역사와 인간, 전체와 개인을 세밀하게 조명하고 있다.”고 추천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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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마치 두꺼운 유리 속을 뚫고 간신히 걸음을 옮기는 것 같은 느낌이로군. …산 밑이 가까워지자 낮 기운 여름 햇볕이 빈틈없이 내리부어지고 있었다. 시야는 어디까지나 투명했다. 그 속에 초가집 열여덟 채가 무거운 지붕을 감당하기 힘든 것처럼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전혀 戰禍를 안 입어 보이는데 사람은 고사하고 생물이라곤 무엇 하나 살고 있지 않는 성싶게 주위가 너무 고요했다. 이 고요하고 거침새 없이 투명한 공간이 왜 이다지도 숨막히게 앞을 막아서는 것일까. 정말 이건 두껍디 두꺼운 유리 속을 뚫고 간신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느낌인데. 다시 한번 동호는 생각했다.
 

[ 2006-01-31, 10:06 ]

 

 

 

 

名文시리즈/메밀꽃 필 무렵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李孝石   
 편집자 注: 이 작품은 1936년 ‘朝光‘ 제12호에 발표되었다. 본문 중의 〈 〉는 여러 추천자들이 특히 名文이라고 적시한 부분임. 金埈成씨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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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 마리나 사면 족할 이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 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치 않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이 동업의 조선달을 나꾸어 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장에서 한 번이나 흐뭇하게 사본 일 있을까? 내일 대화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오늘 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 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날 산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여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필과 주단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멍석 위에는 천 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빠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장수도, 땜장이도, 엿장수도, 생강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느 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 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장판은 잔치 뒷마당같이 어수선하게 벌어지고 술집에서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 주정꾼 욕지거리에 섞여 계집의 앙칼진 목소리가 찢어졌다. 장날 저녁은 정해 놓고 계집의 고함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생원, 시침을 떼두 다 아네. …충주집 말야.”
 계집 목소리도 문득 생각난 듯이 조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화중지병이지. 연소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그렇지도 않을걸. 축들이 사족을 못 쓰는 것두 사실은 사실이나, 아무리 그렇다군 해두 왜 그 동이 말일세. 감쪽같이 충주집을 후린 눈치거든.”
 “무어 그 애숭이가? 물건 가지고 나꾸었나부지, 착실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그 길만은 알 수 있나… 궁리 말구 가보세나 그려. 내 한 턱 씀세.”
 그다지 마음이 당기지 않는 것을 쫓아갔다. 허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다.
 
 얼금뱅이 상판을 쳐들고 대어설 숫기는 없었으나, 계집 편에서 정을 보낸 일도 없었고,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 충주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 버린다. 충주집 문을 들어서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된 서슬인지 발끈 화가 나 버렸다. 상 위에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제법 난질꾼인데, 꼴사납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 처먹고 계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키고 돌아다니누나. 그 꼴에 우리들과 한몫 보자는 셈이지. 동이 앞에 막아서면서부터 책망이었다. 걱정두 팔자요 하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상기된 눈망울에 부딪칠 때, 결 김에 따귀를 하나 갈겨 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동이도 화를 쓰고 팩하게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생원은 조금도 동색하는 법 없이 마음먹은 대로는 다 지껄였다.
 
 “어디서 주워먹은 선머슴인지는 모르겠으나, 네게도 아비 어미 있겠지. 그 사나운 꼴 보면 맘 좋겠다. 장사란 탐탁하게 해야 되지, 계집이 다 무어야 나가거라, 냉큼 꼴 치워.”
 그러나 한 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어 측은히 여겨졌다. 아직도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섬짓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손님이면서두 아무리 젊다구 자식 낳게 된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셀 것은 무어야 원.
 
 충주집은 입술을 쫑긋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 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고 하고 그 자리는 조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면 죄 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이다. 담도 생긴데다가 웬일인지 흠뻑 취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거나해짐을 따라 계집 생각보다도 동이의 뒷일이 한결같이 궁금해졌다. 내 꼴에 계집을 가로채서는 어떡헐 작정이었누 하고, 어리석은 꼬락서니를 모질게 책망하는 마음도 한편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지난 뒤인지 동이가 헐레벌떡거리며 황급히 부르러 왔을 때에는, 마시던 잔을 그 자리에 던지고 정신없이 허덕이며 충주집을 뛰어나간 것이었다.
 “생원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이에요.”
 “각다귀들 장난이지 필연코.”
 짐승이도 짐승이려니와 동이의 마음씨가 가슴을 울렸다. 뒤를 따라 장판을 달음질하려니 거슴츠레한 눈이 뜨거워질 것 같다.
 “부락스런 녀석들이라 어쩌는 수 있어야죠.”
 “나귀를 몹시 구는 녀석들은 그냥 두지 않을걸.”
 
 반평생을 같이 지내온 짐승이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가스러진 목 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꼽을 흘렸다. 몽당비처럼 짧게 슬리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휘저어 보아야 벌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닳아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하였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럽게 울며 반겨한다.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목덜미를 어루만져 주니 나귀는 코를 벌름거린고 입을 투르르거렸다. 콧물이 튀었다. 허생원은 짐승 때문에 속도 무던히는 썩었다. 아이들의 장난이 심한 눈치여서 땀 밴 몸둥아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좀체 흥분이 식지 않는 모양이었다. 굴레가 벗어지고 안장도 떨어졌다. 요 몹쓸 자식들, 하고 허생원은 호령을 하였으나 패들은 벌써 줄행랑을 논 뒤요 몇 남지 않은 아이들이 호령에 놀래 비슬비슬 멀어졌다.
 “우리들 장난이 아니우, 암놈을 보고 저 혼자 발광이지.”
 코흘리개 한 녀석이 멀리서 소리를 쳤다.
 “고 녀석 말투가.”
 “김첨지 당나귀가 가 버리니까 온통 흙을 차고 거품을 흘리면서 미친 소같이 날뛰는걸. 꼴이 우스워 우리는 보고만 있었다우. 배를 좀 보지.”
 
 아이들은 앙돌아진 투로 소리를 치며 깔깔 웃었다. 허생원은 모르게 결에 낯이 뜨거워졌다. 뭇 시선을 막으려고 그는 짐승의 배 앞을 가리워 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늙은 주제에 암샘을 내는 셈야. 저놈의 짐승이.”
 아이의 웃음소리에 허생원은 주춤하면서 기어코 견딜 수 없어 채찍을 들더니 아이들을 쫓았다.
 “쫓으려거든 쫓아보지. 왼손잡이가 사람을 때려.”
 줄달음에 달아나는 각다귀에는 당하는 재주가 없었다. 왼손잡이는 아이 하나도 후릴 수 없다. 그만 채찍을 던졌다. 술기도 돌아 몸이 유난스럽게 화끈거렸다.
 “그만 떠나세. 녀석들과 어울리다가는 한이 없어. 장판의 각다귀들이란 어른보다도 더 무서운 것들인걸.”
 조선달과 동이는 각각 제 나귀에 안장을 얹고 짐을 싣기 시작하였다. 해가 꽤 많이 기울어진 모양이었다.
 
 드팀전 장돌림을 시작한 지 이십 년이나 되어도 허생원은 봉평장을 빼논 적은 드물었다. 충주, 제천 등의 이웃 郡(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 지방도 헤매기는 하였으나 강릉쯤에 물건 하러 가는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아다녔다. 닷새만큼씩의 장날에는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으로 건너간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삼아 말하였으나 고향에 돌보러간 일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반날 동안이나 뚜벅뚜벅 걷고 장터 있는 마을에 거의 가까웠을 때, 거친 나귀가 한바탕 우렁차게 울면 더구나 그것이 저녁녘이어서 등불들이 어둠 속에 깜박거릴 무렵이면, 늘 당하는 것이것만 허생원은 변치 않고 언제든지 가슴이 뛰놀았다.
 젊은 시절에는 알뜰하게 벌어 돈푼이나 모아 본 적도 있기는 있었으나, 읍내에 백중이 열린 해 호탕스럽게 놀고 투전을 하여 사흘 동안에 다 털어 버렸다. 나귀까지 팔게 된 판이었으나 애끊는 정분에 그것만은 이를 물고 단념하였다. 결국 도로아미타불로 장돌림을 다시 시작할 수 밖에는 없었다. 짐승을 데리고 읍내를 도망해 나왔을 때에는, 너를 팔지 않기 다행이었다고 길가에서 울면서 짐승의 등을 어루만졌던 것이었다.
 
 빚을 지기 시작하니 재산을 모을 염은 당초에 틀리고, 간신히 입에 풀칠하러 장에서 장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호탕스럽게 놀았다고는 하여도 계집 하나 후려보지도 못하였다. 계집이란 쌀쌀하고 매정한 것이었다. 평생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신세가 서글퍼졌다. 일신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언제나 변함없는 한 필의 당나귀였다.
 그렇다고는 하여도 꼭 한번의 첫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번의 괴이한 인연! 봉평에 다니기 시작한 젊은 시절의 일이었으나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그도 산 보람을 느꼈다.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두 도무지 알 수 없어.”
 허생원은 오늘 밤도 또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조선달은 친구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렇다고 싫증을 낼 수도 없었으나, 허생원은 시치미를 떼고 되풀이할 대로는 되풀이하고야 말았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조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確的(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서운한 제못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주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추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팔자에 있었나부지.”
 아무렴! 하고 응답하면서 말머리를 아끼는 듯이 한참이나 담배를 빨뿐이었다. 구수한 자줏빛 연기가 밤 기운 속에 흘러서는 녹았다.
 “날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달리 기다리는 놈팽이가 있은 것두 아니었네. 처녀는 울고 있단 말야. 짐작은 대고 있으나 성서방네는 한창 어려워서 들고 날 판인 때였지. 한집안 일이니 딸에겐들 걱정이 없을 리 있겠나? 좋은 데만 있으면 시집도 보내련만 시집은 죽어도 싫다지. 그러나 처녀란 울 때같이 정을 끄는 때가 있을까! 처음에는 놀라기도 한 눈치였으나 걱정 있을 때는 누그러지기도 쉬운 듯해서 이럭저럭 이야기가 되었네… 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었지. 제천인지로 줄행랑을 놓은 건 그 다음날이렸다. 다음 장도막에는 벌써 온 집안이 사라진 뒤였네. 장판은 소문에 발끈 뒤집혀 오죽해야 술집에 팔려가기가 상수라고 처녀의 뒷공론이 자자들 하단 말이야. 제천 장판을 몇 번이나 뒤졌겠나? 하나 처녀의 꼴은 꿩 궈먹은 자리야.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었지. 그 때부터 봉평이 마음에 든 것이 반평생을 두고 다니게 되었네. 평생인들 잊을 수 있겠나.”
 
 “수 좋았지. 그렇게 신통한 일이란 쉽지 않어. 항용 못난 것 얻어 새끼 낳고 걱정 늘고, 생각만 해두 진저리가 나지… 그러나 늙으막바지까지 장돌뱅이로 지내기도 힘드는 노릇 아닌가? 난 가을까지만 하구 이 생애와두 하직하려네. 대화쯤에 조그만 전방이나 하나 벌이구 식구들을 부르겠어. 사시장천 뚜벅뚜벅 걷기란 여간이래야지.”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 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 테야.”
 산길을 벗어나니 큰길로 틔어졌다. 꽁무니의 동이도 앞으로 나서 나귀들은 가로 늘어섰다.
 “총각두 젊겠다, 지금이 한창 시절이렸다. 충주집에서는 그만 실수를 해서 그 꼴이 되었으나 설게 생각 말게.”
 “처, 천만에요. 되려 부끄러워요. 계집이란 지금 웬 제격인가요. 자나 깨나 어머니 생각뿐인데요.”
 허생원의 이야기로 실심해 한 끝이라 동이의 어조는 한풀 수그러진 것이었다.
 “아비 어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제겐 아버지가 없어요. 피붙이라고는 어머니 하나뿐인 걸요.”
 “돌아가셨나?”
 “그런 법이 세상에…”
 생원과 선달이 야단스럽게 껄껄들 웃으니, 동이는 정색하고 우길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랴 했으나 정말이에요. 제천 촌에서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는 집을 쫓겨났죠. 우스운 이야기나, 그러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고 있는 고장도 모르고 지내와요."
 
 고개가 앞에 놓인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내렸다. 둔덕은 험하고 입을 벌리기도 대견하여 이야기는 한동안 끊겼다. 나귀는 건뜻하면 미끄러졌다. 허생원은 숨이 차 몇 번이고 다리를 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이가 알렸다. 동이같이 젊은 축이 그지없이 부러웠다. 땀이 등을 한바탕 쭉 씻어 내렸다.
 고개 너머는 바로 개울이었다. 장마에 흘러 버린 널다리가 아직도 걸리지 않은 채로 있는 까닭에 벗고 건너야 되었다. 고의를 벗어 띠로 등에 얽어매고 반벌거숭이의 우스꽝스런 꼴로 물 속에 뛰어들었다. 금방 땀을 흘린 뒤였으나 밤 물은 뼈를 찔렀다.
 “그래 대체 기르긴 누가 기르구?”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의부를 얻어가서 술장사를 시작했죠. 술이 고주래서 전망나니예요. 철들어서부터 맞기 시작한 것이 하룬들 편할날 있었을까. 어머니는 말리다가 채이고 맞고 칼부림을 당하고 나니 집꼴이 무어겠소. 열여덟 살 때 집을 뛰쳐나서부터 이 짓이죠."
 
 “총각 낫세론 동이 무던하다고 생각했더니 듣고 보니 딱한 신세로군.”
 물은 깊어 허리까지 찼다. 속 물살도 어지간히 센 데다가 발에 채이는 돌멩이도 미끄러워 금시에 훌칠 듯하였다. 나귀와 조선달은 재빨리 거의 건넜으나 동이는 허생원을 붙드느라고 두 사람은 훨씬 떨어졌다.
 “모친의 친정은 원래부터 제천이었던가?”
 “웬걸요. 시원스리 말은 안해 주나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봉평? 그래 그 아비 성은 무엇이구?”
 “알 수 있나요. 도무지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 그렇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 하다가 허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디었다.
 앞으로 고꾸라지기가 바쁘게 몸째 풍덩 빠져 버렸다. 허비적거릴 수록 몸은 걷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에는 벌써 퍽이나 흘렀었다. 옷째 쫄딱 젖으니 물에 젖은 개보다도 참혹한 꼴이었다. 동이는 물 속에서 어른을 해깝게 업을 수 있었다. 젖었다고는 하여도 여윈 몸이라 장정 등에는 오히려 가벼웠다.
 “이렇게까지 해서 안 됐네. 내 오늘은 정신이 빠진 모양이야.”
 “염려하실 것 없어요.”
 “그래 모친은 아비를 찾지는 않는 눈치지?”
 “늘 한 번 만나고 싶다고는 하는데요.”
 “지금 어디 계신가?”
 “의부와도 갈라져 제천에 있죠. 가을에는 봉평에 모셔 오려고 생각 중인데요. 이를 물고 벌면 이럭저럭 살아갈 수 있겠죠.”
 “아무렴. 기특한 생각이여. 가을이랬다?”
 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더 업혔으면도 하였다.
 “진종일 실수만 하니 웬일이오? 생원.”
 
 조선달은 바라보며 기어이 웃음이 터졌다.
 “나귀야, 나귀 생각하다 실족을 했어. 말 안했던가? 저 꼴에 제법 새끼를 얻었단 말이지. 읍내 강릉집 피마에게 말일세. 귀를 쫑긋 세우고 달랑달랑 뛰는 것이 나귀새끼같이 귀여운 것이 있을까! 그것 보러 나는 일부러 읍내를 도는 때가 있다네.”
 “사람을 물에 빠치울 젠 딴은 대단한 나귀새끼군!”
 허생원은 젖은 옷을 웬만큼 짜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은 알 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주막까지 부지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이 쉬어. 나귀에겐 더운 물을 끓여주고, 내일 대화장 보고는 제천이다.”
 “생원도 제천으로…?”
 “오래간만에 가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신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도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 2006-01-30, 19:05 ]

 

 

 

 

名文시리즈/李泰俊의 달밤
하루는 “평생 소원이 무엇이냐?”고 그에게 물어 보았다. 평생 소원은 자기도 원배달이 한번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李泰俊   
 편집자 注: 이 단편소설은 1934년 7월에 발표되었다. 깊은샘刊 ‘李泰俊 전집1’ 1988년 판에서 소설의 일부를 발췌했다. 具常씨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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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前略〉
 그는 이튿날 저녁, 집을 알고 오는 데도 아홉시가 지나서야
 “신문 배달해 왔습니다.”
 하고 소리를 치며 들어섰다.
 “오늘은 왜 늦었소?”
 물으니
 “자연 그럽죠.”
 하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는 워낙 이 아래 있는 삼산 학교에서 일을 보다 어떤 선생하고 뜻이 덜 맞아 나왔다는 것, 지금은 신문 배달을 하나 원배달이 아니라 보조 배달이라는 것, 저희 집엔 양친과 형님 내외와 조카 하나와 저희 내외까지 식구가 일곱이란 것, 저희 아버지와 저희 형님의 이름은 무엇무엇이며, 자기 이름은 황가인 데다가 목숨 수자하고 세울 건자로 黃壽巾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노랑수건이라고 놀리어서, 성북동에서는 가가호호에서 노랑수건 하면 다 자긴 줄 알리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다가, 이날도
 “어서 그만 다른 집에도 신문을 갖다 줘야 하지 않소?”
 하니까 그 때서야 마지못해 나갔다.
 
 우리 집에서는 그까짓 반편과 무얼 대꾸를 해가지고 그러느랴 하되,
 나는 그와 지껄이기가 좋았다.
 그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열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고, 그와는 아무리 오래 지껄이어도 힘이 들지 않고, 또 아무리 오래 지껄이고 나도 웃음밖에는 남는 것이 없어 기분이 거뜬해지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중만 아니면 한참씩 그의 말을 받아주었다.
 
 어떤 날은 서로 말이 막히기도 했다. 대답이 막히는 것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고 막히었다. 그러나 그는 늘 나보다 빠르게 이야깃거리를 잘 찾아냈다. 오뉴월인데도 “꿩고기를 잘 먹느냐?”고도 묻고, “양복은 저고리를 먼저 입느냐, 바지를 먼저 입느냐?”고도 묻고, “소와 말과 싸움을 붙이면 어느 것이 이기겠느냐?”는 둥, 아무튼 그가 얘깃거리를 취재하는 방면은 기상천외로 여간 범위가 넓지 않은데는 도저히 당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나는 “평생 소원이 무엇이냐?”고 그에게 물어 보았다. 그는 “그까짓 것쯤 얼른 대답하기는 누워서 떡먹기”라고 하면서, 평생 소원은 자기도 원배달이 한번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남이 혼자 배달하기 힘들어서 한 이십 부 떼어 주는 것을 배달하고, 월급이라고 원배달에게서 한 삼원 받는 터이라, 월급을 이십여 원을 받고 신문사 옷을 입고, 방울을 차고 다니는 원배달이 제일 부럽노라 하였다. 그리고 방울만 차면 자기도 뛰어다니며 빨리 돌 뿐 아니라 그 은행소에 다니는 집 개도 조금도 무서울 것이 없겠노라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럴 것 없이 아주 신문사 사장쯤 되었으면 원배달도 바랄 것 없고 그 은행소에 다니는 집 개도 상관할 배 없지 않겠느냐?” 한 즉, 그는 뚱그레지는 눈알을 한참 굴리며 생각하더니 “딴은 그렇겠다”고 하면서, 자기는 경황이 없어 거기까지는 바랄 생각도 못하였다고 무릎을 치듯 가슴을 쳤다.
 
 그러나 신문사 사장은 이내 잊어버리고 원배달만 마음에 박혔던 듯, 하루는 바깥마당에서부터 무어라고 떠들어대며 들어왔다.
 “이선생님? 이선생님 계쇼? 아, 저도 내일부턴 원배달이올시다, 오늘밤만 자면입쇼…”
 한다. 자세히 물어보니, 성북동이 따로 한 구역이 되었는데 자기가 맡게 되었으니까, 내일은 배달복을 입고 방울을 막 떨렁거리면서 올 테니 보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이란 게 그러게 무어든지 끝을 바라고 붙들어야 한다.”고 나에게 일러주면서 신이 나서 돌아갔다. 우리도 그가 원배달이 된 것이 좋은 친구가 큰 출세나 하는 것처럼 마음속으로 진실로 즐거웠다. 어서 내일 저녁에 그가 배달복을 입고 방울을 차고 와서 쭐럭거리는 것을 보리가 하였다.
 
 그러나 이튿날 그는 오지 않았다. 밤이 늦도록 신문도 그도 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신문도 그도 오지 않다가 사흘째 되는 날에야, 이날은 해도 지기 전인데 방울 소리가 요란스럽게 우리 집으로 뛰어들었다.
 “어디 보자!”
 하고 나는 방에서 뛰어나갔다.
 그러나 웬일일까, 정말 배달복에 방울을 차고 신문을 들고 들어서는 사람은 황수건이가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이다.
 “왜 전엣 사람은 어디 가고 당신이오?”
 물으니 그는
 “제가 성북동을 맡았습니다.”
 한다.
 “그럼 전엣 사람은 어디를 맡았소?”
 하니 그는 픽 웃으며
 “그까짓 반편을 어딜 맡깁니까? 배달부로 쓸랴다가 똑똑치가 못하니까 안 쓰고 말었나 봅니다.”
 한다.
 “그럼 보조 배달도 떨어졌소?”
 하니
 “그럼요. 여기가 따루 한 구역이 된 걸요.”
 하면서 방울을 울리며 나갔다.
 
 이렇게 되었으니 황수건이가 우리 집에 올 길은 없어지고 말았다. 나도 가끔 문안엔 다니지만, 그의 집은 내가 다니는 길 옆은 아닌 듯 길가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까운 친구를 먼 곳에 보낸 것처럼, 아니 친구가 큰 사업에나 실패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못 만나는 섭섭뿐이 아니라 마음이 아프기도 하였다. 그 당자와 함께 세상의 야박함이 원망스럽기도 하였다.
 
 한데 황수건은 그의 말대로, 노랑수건이라면 온 동네에서 유명은 하였다. 노랑수건 하면, 누구나 성북동에서 오래 산 사람이면 먼저 웃고 대답하는 것을 나는 차츰 알았다.
 내가 잠깐씩 며칠 보기에도 그랬거니와 그에겐 우스운 일화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삼산 학교에 급사로 있을 시대에 삼산 학교에다 남겨 놓고 나온 일화도 여러 가지라는데, 그 중에 두어 가지를 동네 사람들의 말대로 옮겨보면 역시 그 때부터도 이야기하기를 대단 즐기어 선생들이 교실에 들어간 새 손님이 오면 으레 손님을 앉히고는 자기도 걸상을 갖다 떡 마주 놓고 앉는 것은 물론, 마주 앉아서는 곧 자기류의 만담삼매로 빠지는 것인데, 한번은 도 학무국에서 시학관이 나온 것을 이따위로 대접하였다. 일본말을 못하니까 만담은 할 수 없고, 마주 앉아서 자꾸 일본말을 연습하였다.
 “센세이 히, 오하요 고사이마쓰까… 히히, 아메가 후리마쓰 유끼가 후리마쓰까, 히히… (선생 히, 안녕하십니까… 히히, 비가 옵니다. 눈이 옵니까, 히히…)”
 
 시학관도 인정이라 처음엔 웃었다. 그러나 열 번 스무 번을 되풀이하는 데는 성이 나고 말았다. 선생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종소리가 나지 않으니까, 한 선생이 나와 보니 종칠 것도 잊어버리고 손님과 마주 앉아서 “오하요 유끼가 후리마쓰까…” 하는 판이다.
 그날 수건이는 선생들에게 단단히 몰리고 다시는 안 그러겠노라고 했으나,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그예 쫓겨나오고 만 것이다.
 그는
 “너의 색시 달아난다.”
 하는 말을 제일 무서워했다 한다. 한번은 어느 선생이 장난엣말로
 “요즘 같은 따뜻한 봄날엔 옛날부터 색시들이 달아나기를 좋아하는데, 어제도 저 아랫말에서 둘이나 달아났다니까 오늘은 이 동리에서 꼭 달아나는 색시가 있을걸…”
 
 했더니, 수건이는 점심을 먹다 말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는 어서 바삐 하학을 시키고 집으로 갈 양으로, 오십 분 만에 치는 종을 이십 분 만에, 삼십 분 만에 함부로 다가서 쳤다는 이야기도 있다.…〈後略〉
 

[ 2006-01-29, 23:59 ]

 

 

 

 

名文시리즈/金聖佑의 '돌아가는 배'
나는 어릴 때 먹던 멸치와 고구마와 밀감을 먹으러 돌아간다. 내 少時를 양육한 滋養이 내 노년을 保養할 것이다.
金聖佑   
 편집자 注: 이 글은 1999년 ‘삶과 꿈’에서 출간된 ‘돌아가는 배’의 맨 마지막 章을 옮겨온 것이다. 노재봉씨 추천.
 
 나는 돌아가리라. 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리라. 출항의 항로를 따라 귀항하리라. 젊은 시절 수천 개의 돛대를 세우고 배를 띄운 그 항구에 늙어 구명보트에 구조되어 남몰래 닿더라도 귀향하리라. 어릴 때 황홀하게 바라보던 滿船(만선)의 귀선, 색색의 깃발을 날리며 꽹과리를 두들겨대던 그 칭칭이소리 없이라도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빈 배에 내 생애의 그림자를 달빛처럼 싣고 돌아가리라.
 섬의 선창가에서 소꿉놀이하며 띄워보낸 오동나무 종이 돛배의 남실남실한 걸음으로도 四海(사해)를 좋이 한 바퀴 돌았을 세월이다. 나는 그 종이 돛배처럼 그 선창에 가 닿을 것이다.
 섬을 떠나올 때, 선창과 떠나는 배에서 서로 맞잡은 오색 테이프가 한 가닥씩 끊기는 아픔이었다. 그러나 나는 얼마든지 늘어지는 고무줄처럼 평생 끊기지 않는 테이프의 끝을 선창에 매어둔 채 세상을 주유했다. 선창에 닻을 내린 채 닻줄을 풀며풀며 방랑했다. 이제 그 테이프에 끌려 소환되듯, 닻줄을 당기듯, 작별의 선창으로 도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온 세상은 내가 중심이다. 바다가 아무리 넓어도 내가 태어난 섬이 바다의 중심이다. 나는 섬을 빙 둘러싼 수평선의 원주를 일탈해왔고 이제 그 중심으로 복귀할 것이다. 세상을 돌아다녀보니 나의 중심은 내 고향에 있었다. 그 중심이 중력처럼 나를 끈다.
 내 귀향의 바다는 離鄕(이향)의 그 바다일 것이다. 불변의 바다, 불멸의 바다. 바다만큼 만고청청한 것이 있는가. 山川依舊(산천의구)란 말은 옛 시인의 虛辭(허사)일 수 있어도 바다는 변색하지 않는다. 그리고 不老(불로)의 바다, 不朽(불후)의 바다. 늙지 않고 썩지 않고 항상 젊다.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변하지 않은 친구가 있다. 그것이 바다다. 그 信義(신의)의 바다가 나의 竹馬故友(죽마고우)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파도의 유희와 더불어 자랐다.
 어느 즐거운 음악이 바다의 단조로운 海潮音(해조음)보다 더 오래 귀를 기울이게 할 것인가. 어느 화려한 그림이 바다의 푸른 單色(단색)보다 더 오래 눈을 머물게 할 것인가. 바다는 위대한 單調(단조)의 세계다. 이 단조가 바다를 불변, 불멸의 것이 되게 한다. 그 영원한 古典(고전)의 세계로 내가 간다.
 섬에 살 때 머리맡에서 밤새도록 철썩이는 바다의 물결소리는 나의 자장가였다. 섬을 처음 떠나왔을 때 그 물결소리를 잃어버린 소년은 얼마나 많은 밤을 不眠(불면)으로 뒤척였는지 모른다. 이제 거기 나의 安眠(안면)이 있을 것이다.
 고향을 두고도 실향했던 한 浪子(낭자)의 귀향길에 바다는, 어릴 적 나의 襁褓(강보)이던 바다는 그 갯내가 젖내음처럼 향기로울 것이다. 그 정결하고도 상긋한 바다의 香薰(향훈)이 내 젊은 날의 氣息(기식)이었다. 塵網(진망) 속의 塵埃(진애)에 찌든 눈에는 해풍의 청량이 눈물겹도록 시릴 것이다.
 가서 바닷물을 한 움큼 떠서 마시면 눈물이 나리라. 왈칵 눈물이 나리라. 물이 짜서가 아니라 어릴 때 헤엄치며 마시던 그 물맛이므로.
 소금기가 있는 것에는 신비가 있다던가. 눈물에도 바다에도 바다는 신비뿐 아니라 내게 무한과 영원을 가르쳐준 가정교사다. 海鳴(해명)속에 神(신)의 綸音(윤음)이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러 간다.
 나의 바다는 나의 공화국. 그 황량한 廣大(광대)가 나의 영토다. 그 풍요한 자유가 나의 主權(주권)이다. 그 공화국에서 나는 자유의 깃발을 공화국의 국기처럼 나부끼며 자유를 심호흡할 것이다. 바다는 자유의 공원이다. 씨름판의 라인처럼 섬을 빙 둘러싸서 나를 가두고 있던 수평선. 그 수평선은 젊은 날 내 부자유의 울타리더니 이제 그 안이 내 자유의 놀이터다. 나의 부자유는 오히려 섬을 떠나면서 시작되었다. 수평선에 홀려 탈출한 섬에 귀환하면서 海鳥(해조)의 자유를 탈환할 것이다. 수평선의 테를 벗어난 내 인생은 반칙이었다.
 섬은 바다의 집이다. 大海(대해)에 지친 파도가 밀려밀려 안식하는 귀환의 종점이다. 섬이 없다면 파도는 그 무한한 표류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희뜩희뜩한 파도의 날개는 광막한 황해의 어느 기슭에서 쉴 것인가. 섬은 파도의 고향이다. 나는 파도였다. 나의 일생은 파도의 일생이었다.
 바다는 인간의 무력함을 느끼게 하는 허무의 광야, 파도는 이 허무의 바다를 건너고 건너서 섬에 와 잠든다. 나의 인생도 파도처럼 섬의 선창에 돌아와 쉴 것이다.
 나는 모든 바다를 다 다녔다. 태양계의 惑星(혹성) 가운데 바다가 있는 것은 지구뿐이라 더 갈 바다가 없었다. 육대양을 회유한 나는 섬에서 태어난 영광과 행복을 찾아 돌아가야 한다.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바다의 모태 속으로.
 바닷물은 증발하여 승천했다가 비가 되고 강물이 되어 도로 바다로 내려온다. 나의 귀향은 이런 환원이다. 바다는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 더렵혀지지 않는다. 고향은 世塵(세진)에 더렵혀진 나를 정화시켜 줄 것이다.
 바다는 年輪(연륜)이 없다. 山中無歷日(산중무역일)이라듯 바다에도 달력은 없어 내 오랜 不在(부재)의 나이를 고향 바다는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섬은 이 蕩兒(탕아)의 귀환을 기다려 주소 하나 바꾸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고향은 집이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집이다. 쉬지 않기 위해 집을 나서고 쉬기 위해 찾아온다. 나는 꼭 만 18세의 성년이 되던 해 고향의 섬을 떠나왔다. 내 인생의 아침이었다. 이제 저녁이 된다.
 모든 입항의 신호는 뱃고동소리다. 내 출항 때도 뱃고동은 울었다. 인생이란 때때로 뱃고동처럼 목이 메이는 것. 나는 그런 목메인 船笛(선적)을 데리고 귀항할 것이다.
 돌아가면 외로운 섬에 두고 온 내 고독의 원형을 만날 것이다. 섬을 떠나면서부터 섬처럼 고독하게 세상을 떠다닌 나의 평생은 섬에 돌아가면 옛애인 같은 그 원판의 고독과 더불어 이제 외롭지 않을 것이다.
 고향은 앨범이다. 고향에는 성장을 멈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빛바랜 사진 속처럼 있다. 모래성을 쌓던 바닷가에서, 수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아 버리고 돌아온 옛 소년은, 잃어버린 童話(동화) 대신 세상에서 주워온 寓話(우화)들을 조가비처럼 진열할 것이다.
 아침녘의 넓은 바다는 꿈을 키우고 저녁녘의 넓은 바다는 욕심을 지운다. 어린 시절의 내 몽상을 키운 바다는 이제 萬慾(만욕)을 버린 내 노년의 무엇을 키울 것인가.
 사람은 무엇이 키우는가. 고향의 산이 키우고 시냇물이 키운다. 그 나머지를 가정이 키우고 학교가 키운다. 그러고도 모자라는 것을 우유가 키우고 밥이 키운다. 사람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는 충성하면서 고향에 대해서는 보답하는 덕목을 모른다. 내게 귀향은 歸依(귀의)다. 나의 뼈를 기른 것은 8할이 멸치다. 나는 지금도 내 고향 바다의 멸치 없이는 밥을 못 먹는다.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먹은 주식은 내 고향 욕지도의 명산인 고구마다. 그 때는 그토록 실미나더니 최근 맛을 보니 꿀맛이었다.
 내가 자랄 때 가장 맛있던 것은 밀감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아 값비싸고 귀하던 것이 지금은 이 섬이 주산지가 되어 있다.
 나는 어릴 때 먹던 멸치와 고구마와 밀감을 먹으러 돌아간다. 내 少時(소시)를 양육한 滋養(자양)이 내 노년을 保養(보양)할 것이다.
 영국 작가 조지 무어의 소설 ‘케리드 川(천)’을 읽으라. ‘사람은 필요한 것을 찾아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고향에 와서 그것을 발견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내가 찾아 헤맨 파랑새는 고향에 있을 것이다. 세상은 어디로 가나 결국은 외국. 귀향은 귀국이다. 모국어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내 고향 섬을 다녀온 한 지인의 말이, 섬 사람들의 말투가 어디서 듣던 것이다 싶어 생각해 보니 내 억양이더라고 한다. 떠난 지 50년이 되도록 鄕語(향어)의 어투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는 영원한 鄕人(향인)이다.
 물은 위대한 조각가다. 나는 파도의 조각품이다. 파도가 바닷가의 바위를 새기듯 어릴 때의 물결소리가 내 표정을 새겼다. 이것이 내 인생의 표정이 되었다. 한 친구가 나에게 ‘海巖(해암)’이란 雅號(아호)를 권한 적이 있다. 나는 섬의 바닷바위 위에 石像(석상)처럼 설 것이다.
 돌아가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는가. 그림을 그리리라. 고향의 美化(미화)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겠는가. 나는 알프스 산맥의 몽블랑도 그려왔고 융프라우도 그려왔다. 어릴 적 물갓집의 벽에 걸렸던 ‘시용성’ 그림의 배경이 알프스 산맥이었다. 이 눈 쌓인 고봉들을 물가에 갖다놓고 이제 바다를 그리리라. 섬을 떠난 나의 出游(출유)는 위로 위로의 길이었다. 나는 표고 4000여 m까지 상승한 증표를 가지고 도로 바다로 하강한다. 어느 화가가 내 서툰 그림의 과욕이 걱정되는지 바다를 잘못 그리면 풀밭이 된다고 했다. 그런들 어떠랴, 바다는 나의 大地(대지)인 것을.
 해면을 떠나면서부터의 나의 登高(등고)는 이륙이었고 이제 착륙한다. 인생은 공중의 곡예다.
 해발 0m에서 출발한 나는 해발 0m로 귀환한다. 無에서 시발이었고 無로의 귀결이다. 인생은 0이다. 사람의 일생은 토막난 線分(선분)이 아니라 圓(원)이라야 한다. “자기 인생의 맨 마지막을 맨 처음과 맺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한 괴테는 나를 예견하고 있었다. 고향에 돌아와 자신이 태어난 방에서 입적한 석가의 제자 舍利弗(사리불)처럼, 그것은 원점으로 회귀하는 일이다. 나는 하나의 라스트 신을 상상한다.
 한 사나이가 빈 배에 혼자 몸을 싣고 노를 저어 섬의 선창을 떠난다. 배는 돛도 없고 발동기도 없고 정처도 없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아무것도 싣지 않았다. 한바다로 나간 뒤에는 망망대해뿐 섬도 육지도 보이지 않는다. 이 배의 최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빈 배라도 띄울 선창을 나는 찾아간다. 물결은 정지하기 위해 출렁인다. 배는 귀항하기 위해 출항한다. 나의 年代記(연대기)는 航海日誌(항해일지)였다.
[ 2006-01-28, 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