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8월 17일 함북 경흥 하기 수양회석상에서
본문: 누가 복음 23장 1절 -12절
마태복음 14장 32절
빌라도와 헤롯은 서로 원수였습니다. 헤롯은 한 분봉왕이요 빌라도는 로마에서 보낸 총독이다.
헤롯은 갈릴리 지역을 專務(전무)하는 分封王이었다. 전일에는 서로 원수같이 지내더니 今日에는 이 사건만은 서로 양보하며 친구가 되었다.
弘布衣(홍포의)를 입은 주님 앞에 원수 되었던 세상 권세자는 평화가 되고 알았다.
國際間에 戰爭이 有할시에 大使같은 이가 평화의 소식을 가지고 온다면 얼마나 기쁘겠나?
男女婚姻의 사신도 有하다. 노총각, 노처녀 兩家에서는 기뻐한다.
우리 주님은 환영 받는 使臣이 못되고 홍포의를 입고 다닌 大使이다.
1.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大使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은 세상을 화평케 하기 위하여 來降(래강)하셨다. 유대와 이방, 각국 인류의 親同(친동), 그 보다 더 한층 나아가서 예수님의 오신 목적은 神人平和가 第一 이요 그 둘째는 人人平和가 그의 받은 사명이다.
웰슨 대통령은 歐洲 大亂을 평화케 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世界와 世界, 宇宙와의 평화이다.
웰슨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다. 이 평화 대사 예수 그리스도는 쇠사슬에 매여가지고 홍포를 입히고 끌려 다녔으나 遠大한 理想을 내다 보았다.
뺨을 맞고 채찍으로 맞고 모진 受辱을 당하였으나 자기의 받은 사명을 다 이행한 평화의 대사이다.
현재의 국가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多少 평화로운 지경에 入하였다.
그래도 세계적 會合은 기독교로부터 生起었다.
2. 使命을 完遂한 大使이다
죽기까지 그 맡은 사명을 다 擔當하였다. 혹 어떤 사신이던지 파송을 받고 가서 성공을 못하고 귀국 한다면 그 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성공하고 돌아 온 사신은 多歡迎 일 것이다. (예화 婚姻 使臣)
타인을 위하여 이 사신은 십자가상에서 1930년 전에 승전가를 불렀다. 이와 같이 사명을 마친 대사는 성공의 대사이다 . 그러한즉 우리는 영접하자.
3. 迎接하자.
영접을 하되 잘 분별하여 영접하라. 마귀도 분명히 大使이다.
父子兄弟 간에도 마귀의 대사만 가면 분쟁이요, 화평스러운, 자유롭던 동산이 마귀대사가 한번 가고 보니 修羅場이 되고 말았다.
묵시록에 있는 寶座 앞에 유리바다는 평화를 교시한다. 心中에 그리스도를 모시면 평화가 有한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 門곁에 절대 오지 못하게 거절하여야 한다.
그러나 영접할 대사는 영접하여야 한다.
다윗이 조문 사절을 암몬왕에게 보내었다. 그간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보내었더니 암몬의 방백들이 조문 사절을 정탐나온 人이라고하여 수염을 半깍고 의복을 다 찢고 돌려 보내니 다윗은 怒氣滿大 이었다. 그러므로 그 사신을 여리고에 留케하였다. 그 수염이 다 長한 후에 歸京하였다. 다윗은 토벌대를 보내서 토벌하였다(삼하 10: 1-14)
평화 대사가 왔는데 능욕하고 不待하면 소돔성과 고모라 성과 같이 멸망한다.
여리고성 기생 라합은 (旅館主人) 두 정탐군을 대접하였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점령 할 때에 어찌 그 집 식구를 모른다고 하리오
사렙다 과부는 有一會粉桶(유일회분통)과 有甁小油(유병소유)이나 엘리야 선지자를 대접 하였다. 그러나 無盡粉與油로다.
(박문수 어사 예화- 상략)
결론:
예수 믿는 것은 평화의 대사를 영접하는 것이다. 소자에게 냉수를 주는 것도 勿失其常(물실기상)이어든 -.
교회를 대접하라.
세상 대사도, 세상 왕자도 잘 대접하면서 만주의 주시오 하나님의 子 예수 평화 대사는 대접치 않는다. 영접인은 어부와 소수인 뿐이다.
예수를 영접하면 우리도 영접 받는다.
우리는 평화의 대사를 영접하자
1931년 경흥 하기 수양회 석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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