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정희 대통령은1970년 7월23일 국방대학원
졸업식 유시에서 아주 낙관적인 전망을 피력했다.
<우리와 북괴 사이에 상대적인 힘의 균형에 있어서
1970년대 중엽에 가면 피차간에 큰 격차가 생길 것으로 나는 내다 보고 있다. 1976년, 즉 우리의 제3차 5개년 계획이 완료될 무렵엔
경제력에 있어서 우리의 국민 총생산은 북괴의 4배 내지 5배가 될 것이다. 인구에 있어서도 남한 인구는 북한 인구보다 2000만이 더 많을
것이다. 군사면에 있어서도 우리는 북괴를 훨씬 능가하는 실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때 가서는 북괴도 무력으로 남한을 정복하겠다는 지금까지의
생각을 다시 한번 再考하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고 본다> 그리고 5년이 흐른 1976년 그의 예언은 거의 현실로 나타났다. 이해 1월24일
朴대통령은 국방부를 연두 순시한 자리에서 자신의 통일관을 담담하게 밝힌다. 원고 없이 조용조용하게 이야기한 내용의 테이프를 풀어본다.
특히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논리를 이론적으로 여러 가지로 제시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공산주의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왜냐. 우리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용납해선 안 된다. 공산당은 우리의 긴 역사와 문화, 전통을
부정하고 달려드는 집단이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만이 우리 민족사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여 지켜가는 국가이다, 하는
점에 대해서 우리가 반공 교육을 강화해야 하겠습니다. 공산당이 지난 30년 간 민족에게 저지른 반역적인 행위는 우리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을
겁니다. 후세 역사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온 것은 전쟁만은 피해야겠다는 일념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이 분단 상태를 통일을 해야겠는데 무력을 쓰면 통일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 번 더 붙어서 피를 흘리고 나면 감정이 격화되어
몇십 년 간 통일이 또 늦어진다. 그러니 통일은 좀 늦어지더라도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고 우리가 참을 수 없는 그 모든 것을 참아온 겁니다.
우리의 이런 방침엔 추호의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공산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그들이 무력으로 접어들 때는 결판을 내야 합니다.
기독교의 성경책이나 불경책에서는 살생을 싫어하지만 어떤 불법적이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침범할 때는 그것을 쳐부수는 것을 정의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누가 내 볼을 때리면 이쪽 따귀를 내주고는 때리라고 하면서 적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만 선량한 양떼를 잡아 먹으러
들어가는 이리떼는 이것을 두드려 잡아 죽이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도 우리 동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무력으로 쳐올라갈 리야 없지만 그들이 또다시 6·25와 같은 반역적 침략을 해올 때에 대비하고 있다가 그때는 결판을 내야 합니다.
통일은 언젠가는 아마도 남북한이 실력을 가지고 결판이 날 겁니다. 대외적으로 내어놓고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 소, 중, 일 4대 강국이
어떻고 하는데 밤낮 그런 소리 해보았자 소용없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객관적 여건이 조성되었을 때 남북한이 실력으로 결판을 낼 겁니다. 그러니
조금 빤해졌다 해서, 소강 상태라 해서 안심을 한다든지 만심을 한다든지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朴正熙는 화려한 통일방안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남한
주도의 통일이 가능한 객관적 조건을 성숙시킨 사람이었다. 문제는 통일의 결정적 순간이 도래했을 때 대한민국의 지도부와 국민들이 그 기회를
낚아채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가이다. 유리한 조건이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의지가 들어가야 한다.
親金正日
세력이 지금처럼 발호하는 상황에서는 그런 의지의 결단이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1990년대 10년 간은 「잃어버린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소련의
붕괴, 동구 공산체제의 붕괴, 중국의 개혁 개방, 金日成 사망, 북한의 대기근 사태로 이어지는 그 10년 간의 好機 속에서 한국인들은 흡수통일할
각오와 희생정신을 발휘하지 못했다. 親北 세력의 감언이설-서독의 동독 흡수가 실패라는 거짓말 등-과 주류층의 비겁성, 그리고 지도층의 안이한
전략이 첫번째 기회를 유실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 기회는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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