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비가 오면 더 운치있는 여행지

鶴山 徐 仁 2005. 11. 30. 01:53

 
비와 여행은 악연인가? 꼭 그런 등식이 성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많은 여행지 가운데 비가 오면 더욱 분위기가 선명해지는 그런 여행지도 많이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도 좋고, 주륵주륵 내려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는 그런 여행지를 찾아 분위기 있는 여행을 떠나보자.
 
담양 소쇄원 - 비가 오면 더욱 좋은 곳
광주호로 흘러 들어가는 광주천을 예전에는 백일홍나무가 많은 개울이라 하여 자미탄(紫薇灘)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이곳에 소문난 원림과 정자가 모여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은 자연의 풍치 속에 인공의 정자가 그대로 젖어있는 정원인 소쇄원(瀟灑園)이다. 그리고 그 부근에는 가사문학이 꽃필 수 있는 터전이 된 환벽당(環碧堂)과 취가정(醉歌亭), 식영정(息影亭) 등이 광주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형국이다.
소쇄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민간 정원이다. 16세기에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가 그의 고향에 만든 정원으로 사랑채와 서재가 붙은 제월당(霽月堂), 계곡 가까이에 있는 정자인 광풍각(光風閣), 초가 누각인 대봉대(待鳳臺) 등이 울창한 대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고 그 한가운데로 깊은 계곡이 지나고 있다. 큰 길에서 사철 푸른 대나무 숲을 뚫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1천400여평의 계곡을 끼고 있는 산비탈에 있는 소쇄원의 멋스런 풍경이 나타나는데 자연과 인공이 잘 조화된 구조는 남도의 풍류를 한껏 머금고 있다.
비오는 날을 골라 소쇄원을 찾아나서면 색다른 감동을 얻을 수 있다. 대숲에서 바람에 슬리는 잎새 소리와 빗소리가 풍악에 가깝다. 대숲을 지나 소쇄원으로 들어선다. 좁은 개울 너머 광풍각(光風閣) 마루에 앉아보고 걸음을 옮겨 제월당에도 들러보는 여유 있는 발걸음은 자신을 상념의 세계로 몰아 간다.
가는 길은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진출입로를 빠져나와 광주로 들어간 뒤 300m쯤 달리다 887번 지방도로를 왼쪽으로 타고 6㎞쯤 가면 왼쪽으로 소쇄원 입구(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가 나온다. 부근에 식영정 등 조선시대 정자가 많다.
 
운길산 수종사 - 비내리는 산사에 차향기...
경기도 남양주에서 한강 합수머리를 내려다보는 운길산. 산 아래 펼쳐지는 모든 것은 잿빛 섞인 흰색 파스텔로 온통 흐리다. 그리고 그 틈새로 언뜻 보이는 양수리 마을은 차분하다 못해 무거워 보인다.
서울에서 6번국도로 양평을 향하다가 양수대교 못미쳐에서 춘천으로 가는 45호 국도를 갈이타 4㎞쯤 되는 곳 왼편에 진중리 마을이 있다. 큰길에 수종사 팻말이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수종사는 마을 안쪽 산길로 2㎞를 올라가야 한다. 승용차로 오를 수 있는 길이지만 비가 오면 조금 미끄럽기 때문에 마을 빈터에 차를 세워두고 힘들 때마다 산 아래를 감상하면서 쉬기를 반복하면서 산길을 오르면 조금은 초라한 절, 수종사에 이르게 된다.
운길산 수종사는 세조와 인연이 깊은 절이다. 조카를 유배시키고 독살한 죄로 세조는 평생을 피부병으로 고생했다. 1458년 그날, 오대산에서 요양을 하고 돌아오던 세조는 귀경길에 이 부근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날 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은은한 종소리. 왕은 이튿날 종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고, 지금의 수종사 자리에 있는 토굴에서 나한 열여섯 분을 발견했다. 이 어인 조화인고. 업보로 고생하던 세조는 나한을 모신 절을 짓고 수종사라 이름했다. 절은 6·25전쟁으로 폐허로 변했고, 세조의 흔적은 창건 때 세운 팔각오층석탑과 세조가 심었다는 어마어마한 은행나무 두 그루, 그리고 나한전에 모신 나한들만 남았다.
수종사는 이름 그대로 물과 인연이 깊다. 세조가 나한을 발견한 토굴에서는 맑은 물이 솟는다. 그를 이끈 종소리는 그 물이 바위에 부딪치며 공명한 소리였다고 한다. 토굴은 형체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 물은 여전하다. 인근 마현마을에서 나고 죽은 다산 정약용은 이곳 샘물로 차를 즐겼다. 이따금 놀러온 한국 차의 원조 초의선사도 함께였다. 한국 다도의 산실이라는 자부심으로 절에서는 삼정헌이라는 다실을 지었다. 산행을 즐기러 왔건, 경배를 하러 왔건, 가람을 들른 모든 이에게 차는 무료다.
 
남해 금산 - 비 긋기를 기다리는 곳
넓은 쪽빛 바다를 한눈에 굽어보려는 욕심에 남해 금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러나 속절없이 비는 내리고, 해발 681m 바닷가 바위산은 중턱부터 잿빛 구름에 휩싸인다.
바다는 커녕, 주변 기암들조차 바람 따라 흐르는 구름 사이로 인심 쓰듯 비쳤다 사라지고 만다. 쌍홍문과 보리암을 지나 망월대 꼭대기까지 올라 보지만, 짙어가는 구름만이 꿈결같다. 나와 ‘지상세계’를 이어주는 건 희미한 산길뿐이다.
그래도 희망이 남아 있는 건 산 중턱에 보리암이 있기 때문이다. 보리암에 들어 비가 그치길 기다리다 날이 저문다. 저녁 공양을 드린 뒤 지상의 복을 빌러 사람들은 법당으로 줄줄이 들어선다. 맨 뒷줄에 서서 다음날 바다를 볼 수 있길 빌어본다. 마음을 비우면서...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에서 진교 진출입로로 빠져나온다. ‘남해·하동’ 이정표를 보고 직진해 20분쯤 달리면 남해대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다시 20㎞ 남짓 가면 금산 입구에 이른다. 상주해수욕장이 가까이 있다.
 
광릉수목원 - 비가 와도 걱정없는 곳
짙푸른 나뭇잎들은 빗방울을 튕기며 흔들흔들 춤을 춘다. 웬만한 빗줄기쯤은 숲이라는 ‘자연 우산’이 넉넉히 가려준다. 비오는 날 숲길을 밟는 맛은 각별하다. 흙은 촉촉하면서도 아직 보송보송한 기운이 남아 있다. 울울창창한 숲은 나뭇가지로 서까래를 하고 나뭇잎으로 지붕을 얹은 거대한 자연 건축물이다.
비오는 날 광릉수목원에 들면 막힌 콧속과 가슴속부터 시원하게 뚫린다. 그 다음으로는 머리가 맑아온다. 10여개로 나뉜 식물원을 돌며 팻말에 붙은 식물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주고 돌아나올 때쯤엔 저절로 입에서 푸른 숨이 흘러나온다. 아직 숲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가는 길은 구리시 교문네거리에서 47번 국도를 타고 퇴계원~광릉내 삼거리까지 간 뒤 314번 지방도로를 타고 들어간다. 의정부에서 43번 국도를 타고 포천쪽으로 가다 축석검문소에서 우회전해 314번 지방도로를 타고 갈 수도 있다. 토·일요일과 공휴일, 국경일에는 휴관한다. 5일 전에 예약해야 입장할 수 있다.
 
선유구곡 - 비 오면 더욱 풍류가 넘치는 계곡
화양동보다 규모는 작지만 신선이 놀았다는 선유(仙遊)라는 이름에 걸맞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제6곡 난가대와 제7곡 기국암에는 나무꾼과 신선의 전설이 전해진다. 두 신선이 기국암에서 바둑두는 모습을 난가대에서 지켜보던 나무꾼의 도끼자루가 썩었다는 전설이다. 예전에는 선유동계곡을 따라 찻길이 이어져 차안에서도 계곡미를 감상할 수 있었으나 지난 93년 계곡 남쪽으로 새 우회도로가 뚫리면서 옛길은 차량통행이 금지됐다.
선유구곡과 나란히 달리는 592번 지방도로를 타고 청천면 방향으로 내려가면 속리산국립공원 매표소가 나온다. 지난 84년 속리산국립공원으로 편입된 화양구곡이다.
넓게 펼쳐진 암반,푸른 파도처럼 호호탕탕 흘러내리는 계곡물. 계곡 양편으로 도열하듯 펼쳐진 울창한 노송숲. 삼남지방 최고의 비경이다. 화양구곡은 조선시대의 거유 우암 송시열선생이 조정에서 물러나 은거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우암선생은 이곳이 중국의 무이구곡을 닮았다고 해 제1곡부터 9곡까지 이름을 붙이고 경천벽 금사담 첨성대 등의 바위에 글씨를 새겨넣었다. 특히 화양구곡가운데 가장 빼어난 제4곡 금사담(金沙潭)은 이름처럼 반짝이는 금빛모래가 깔려 있는 곳으로 넓은 암반위에 우암선생이 서재로 사용했던 정자인 암서재가 노송사이에 있어 운치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