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몽촌토성 지역

鶴山 徐 仁 2005. 11. 27. 18:30

[오마이뉴스 이승열 기자]

 

▲ 파란하늘, 빨간장미, 갈색 나목의 어울림이 한폭의 그림입니다.
ⓒ2005 이승열
▲ 3백살, 또는 4백살쯤된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낙엽이 떨어진 후 까치집이 보였습니다.
ⓒ2005 이승열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도시민의 삶이지만, 퇴근길 동쪽 하늘에 걸린 하얀 달이 눈에 잡힙니다. 벌써 통통해진걸 보니 보름이 가까워졌나 봅니다. 달이 뜬 날은 무조건 몽촌토성 위를 걷습니다. 집안에 처박혀 있는 것은 애써 뜬 달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올 겨울 들어 제일 춥다하니 눈만 내밀고 완전 무장한 채 몽촌토성을 향해 나섭니다. 신호등을 건너니 올림픽 공원 담장 위 철없는 넝쿨장미가 몇 송이 피어 있습니다. 갈색의 낙엽과 빨간 장미와 파란 하늘의 어우러짐이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눈에 잡힌 풍경 그대로를 마음속의 액자에 얼른 끼워봅니다.

▲ 광장에는 아직도 횃불이 타고 있고, 인라인을 타는 젊음이 가득합니다.
ⓒ2005 이승열
▲ 섬처럼 빌딩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2005 이승열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 같은데, 벌써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월은 사람에게도, 자연에게도 그윽함을 선물합니다. 이미 고목이 된 은행나무, 바람이 불 때마다 멋진 가지를 흔들어대는 버드나무, 형형색색의 활엽수들, 맨땅이 보이지 않는 낙엽, 공원 안은 온통 가을입니다.

올림픽이란 단어 하나로 십 년 가까운 세월을 우려먹은 독재정권의 불순한 의도가 감지되어 공원 안을 산책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던 적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넓기만 할 뿐 그늘을 만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함이 더 마음에 들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일요일만 되면 졸린 눈을 비비면서 공원 앞에 모여 새마을 청소라는 이름으로 휴지를 주웠던 적이 있습니다. 88올림픽이 열리는 동네 한가운데 집도 있고, 직장도 있다보니 급기야는 ‘올림픽’이라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멀미가 나고 진저리가 쳐진 적도 있습니다.

ⓒ2005 이승열
▲ 능선을 따라 산책로가 있습니다. 가끔 저 시멘트를 걷어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2005 이승열
우매한 인간이 아무리 불순한 의도를 가졌어도, 자연은 묵묵히 제 할 일을 다 하고 있었나 봅니다. 줄기는 굵어 벌써 아름드리나무가 되었고, 떨어진 낙엽은 다시 줄기를 살찌우고 있었습니다. 이젠 땅에서도 나무에서도 토성에서도 세월이 만든 연륜이 느껴집니다. 성을 둘러싼 해자에는 만추의 낙엽이 가득하고, 이끼 낀 목책에서 세월이 느껴집니다.

초기 백제의 도읍이 이 근처 어딘가에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됩니다. 공원 안에 있는 부드러운 성을 따라 오감을 열어놓고 걷기만 하면 됩니다. 토성(土城)의 부드러운 능선이 몸과 마음을 단번에 무장해제 시킵니다. 땅뙈기만 보면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고 싶어 하는 20세기 대한민국에서 이 부드러운 능선이 남아 있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 내 오래된 소원은 함박눈이 온 날 저 능선 위에서 비료푸대 눈썰매를 타고 성 아래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2005 이승열
▲ 한낮에는 아직 가을햇살이 따사롭습니다.
ⓒ2005 이승열
부드러운 몽촌토성의 능선은 하얀 달빛이 천지에 가득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토성 가장 높은 곳, 달과 가장 가까운 곳 벤치에 앉아 도시를 바라봅니다. 한강이 보이고, 올림픽 대교의 불빛도 보입니다. 불 켜진 사람들의 창문이 들꽃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천지간을 달빛과 불빛이 가득 찼습니다.

달빛과 어우러진 몽촌토성의 풍경을 표현할 능력이 내겐 없답니다. 달빛이 뿌린 세상이 온통 흰빛입니다. 아무리 성능 좋은 카메라로 풍경을 잡은 듯, 아무리 실력 있는 작가가 저 풍경을 담은들, 인간의 망막이 기억하는 풍경만 하겠습니까?

▲ 토성 위로는 걷고, 토성 주위에서는 걷거나 자전거를 탈수 있습니다.
ⓒ2005 이승열
▲ 저 작은 토성과 목책으로 적을 막았던 순박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2005 이승열
어젯밤의 토성 위 풍경을 떠올리며 달력을 보니 오늘이 시월 보름입니다. 농사를 짓는 어린 시절 시월 보름마다 한해 농사를 무사히 마치게 해준 천지신명께 늘 제를 올렸습니다. 붉은 팥을 듬뿍 넣은 시루떡을 넉넉히 해서 부뚜막에도 갖다 놓고 장독대에도 올려놓았습니다.

달빛을 맞으며 온 동네 한집도 빠짐없이 떡을 돌리며 돌아오는 길을 달빛이 밝혀주었습니다. 보름날 밤 가을걷이가 끝난 텅 빈 논밭에 가득 찬 달빛을 보면, 비로소 한 해가 다갔다는 풍만함이, 안도감이 온 몸에 전해집니다. 오늘밤 다시 토성 위를 걷다 오래전 농사를 접었는데도 여전히 추수감사제를 올리는 부모님께 전화를 해야겠습니다.

아까는 은행나무에 걸려 있던 달이 지금은 소나무 위에 있습니다. 달빛 가득한 만추의 토성 풍경을 당신께 보냅니다. 달빛이 사그라지기 전에, 낙엽이 모두 바스러지기 전에 도심으로 여행을 떠나세요. 토성 위에서 시린 가슴을 활짝 열고 달빛으로 가득 채워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