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좆아 사는 사람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
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1:1-2)
예수님을 만난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이다.
서울 고척동에 있는 아파트를 팔려고 내 놓았는데 당시에는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확실한 기억은 잘 안나지만 매매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파트를 팔려고 내놓은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부동산
중개업소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파트를 사고자 하는 분이 계
신다는 것이다. 잠시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뵈었으면 한다고
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 도착하자 업소 주인과 아파트를 사실 분
이 나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조금 말하기 어려운 듯이
말했다. 매매가를 줄여서 매매계약서에 기록해 줄 수 없겠느
냐는 것이었다.
난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분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매매계약서에 매매가를 줄여서
기록하면 세금을 조금 덜 낼 수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난 그 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죄송합니다. 저는 예수
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부정한 일들도 한 적이
많이 있지만 이제부터는 조금이나마 정직하게 살아보기로 했
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로부터 15년정도가 지난 몇 년 전, 난 이제 목사의 신분
으로 부동산중개 업소를 통하여 교회부지를 위해 어떤 분과
계약을 했다.
부동산 중개업소 주인은 15년 전의 서울에서의 그 부동산중개
업소의 주인과 또 같은 말을 나에게 했다. “목사님, 매매가를
현싯가로 하지 말고 공시가로 낮추어서 합시다. 다 그렇게 합니
다.”
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목사라는 신분 때문에 차마
“그렇게 합시다.”라는 말은 못하고 묵시적으로 승인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예수님을 갓 믿었을 때의 그 용기는 어디로 갔을까?
예수님을 믿은지도 십수년이 되었고, 명색이 신학도 하고,
목사도 되었으므로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더 큰 믿음을
보여주었어야 하는데 도리어 그 때보다 더 못하니 어인 일일꼬?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와서는 오늘 본문 1절에서 말
씀하시는바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에 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
일까?
여러 가지의 원인이 있겠지만 다음과 같은 원인 때문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는 나 혼자만이 다르게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대충대충 그렇게 살아가는데 나만이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
이 아니다.
기독교인으로서 거룩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의미에선
별난 사람 취급을 받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이 과장 말이야, 안통하는 사람이야. 융통성이 없어. 원리
원칙 아니면 안된다구!” “당신은 믿어도 보통으로 믿으
면 되지, 꼭 그렇게 별나게 믿어야 되?”
우리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악인의 꾀로
살아가곤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때로는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함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하지 는 않는다 할지라
도 이익을 덜 봐야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악인의 꾀를 좆아 살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좆아 살
아라. 조금 덜 이익을 본다할지라도 그리하라. 별난 사람
취급을 받을 각오를 하라. 용기 있게 거절할 것은 거절하라.
그리하면 내가 반드시 형통케 할 것이다. 보상해줄 것이다.
너희를 존귀케 만들어줄 것이다. 악인의 꾀를 좆아 사는 사람
들보다도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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