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 6장 11절-16절 ‘선한’의 원어는 '칼로스', 이 단어는 ‘선한’이란 의미 이외에 좋다, 마땅하다, 옳다, 아름답다 등의 말로 사용된다고 하였습니다. ‘증거’라는 원어가 가지고 있는 뜻은 '증거 혹은 고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선한 증거’란 정당한 고백, 마땅한 증거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라면 마땅히 해야 할 고백이라는 말입니다. 성도가 무엇이며 구원이 무엇인지 아는 자로서 일평생 해야 할 고백과 또한 경계해야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혹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간증 가운데 간혹 잘못된(?)간증으로 많은 성도들을 미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막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자신을 선하다 하는 자를 향하여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다 말씀하시며 예수께 집중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렸습니다.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선한 분이신 하나님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만 선하기 때문에 그 분의 그 뜻이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만 선하기 때문에 그 분의 인도가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만 선하기 때문에 그 분의 명령이 선한 것입니다. 이것을 철저하게 순종하심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선한 증거인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적인 싸움은 우습게도 자존심 싸움일 때가 참 많습니다. 이 자존심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본능적인 것입니다. 영적인 관계로 실패하는 것을 보아도 근본은 자존심 때문일 때가 참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나를 증명하기 위해 사느냐? 오직 선하신 주를 증거 하기 위한 삶이냐? 이것이 신앙에서 정말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13절에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 하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사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선한 뜻을 증거 하는 삶만 사셨던 것입니다. 비록 그 길이 피조물에게 멸시와 모욕을 나아가 죽임을 당하는 길이었지만 그 길을 묵묵히 순종하심으로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시험받으러 광야로 나가신 일이 있습니다. 그 시험의 본질은 바로 자신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해보라 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리스도이시기에 그 일에 관심이 없는 분이시기에 그 시험에 넘어지지 않으셨습니다. 로빈훗 이야기에서 로팅 검성으로 가는 길에 셔우드라는 숲 안에 왕 개인의 사슴이 있어 지키는 산림청 직원들이 있습니다. 사슴이 왕의 소유이기에 민간인이 죽이거나 잡으면 사형에 처하는 벌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몇 번 이 처형이 가해지자 범법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듭니다. 산림청 직원들은 범법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자신의 존재이유가 있다 여겼는데 범법자가 없어지자 이제는 사람들을 죄로 유도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로빈훗에게 이렇게 시비를 겁니다. ‘촌뜨기가 활은 좋은 것 가지고 다니네 저 활 시위를 당길 수나 있을까?’ ‘뭐 활시위를 당길 줄이나 알아? 좋아 내기를 하자구.’ 결국 내기를 하였고 임금의 사슴을 죽이고 마는 범법자가 되는데 이유인즉, 자기를 증명하려다, 자기를 드러내려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험이 주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써 가진 권세와 능력을 예수 자신을 드러내며 증명하는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수하기에 힘을 썼을 뿐이셨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간증의 위험성입니다. 잘못된 간증, 위험한 간증이 바로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증명하는 간증입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 되었는가를 간증하는 것은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 같으나 실상 증거의 대상이 자신인 경우가 참 많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도 그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며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하게 되고 잘살게 된 자신을 본받게 함으로 때로는 절망을 느끼게 할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40일 작정 기도했더니 이렇게 물질로 축복받았다'라는 간증은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 해봐'라는 암묵적인 사인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물질의 축복은 그 사람에게 처해진 상황과 환경이 반드시 그것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지, 40일 작정기도가 원인이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오해하여 40일 작정 기도했다가 응답받지 못 할때 그 때 무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사도행전 14장에 루스드라에서 발을 쓰지 못하는 한사람을 고치고 나니 성 사람들이 바나바를 쓰스(제우스), 바울을 허메(머큐리)로 부르며 추앙하자 옷을 찢으며 1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행 14: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 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자신이 증거 될 때 옷을 찢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선한 분이신 하나님만 증거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정도가 아닙니다. 목숨까지도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딤전 6: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명령을 지키되 점도 책망 받을 것도 없이 하라 하십니다. 선한 증거의 대상이신 분을 기약이 이르면 보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날에 우리의 증거가 참됨을 확인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증거 한 그 분이 바로 저분이라고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5절과 1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자신을 높이며 자신이 영광을 취하는 존재로 증명하는 자입니다. 이 유혹과 이 미혹을 분별하여 점도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자로 다시 오시는 예수그리스도 앞에 서기를 축복합니다. 이 한해가 선한 증거자로 사는 일에 성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주시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딤전 6: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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