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여당 속 야당’ 한동훈이 자임하라
- 동아일보
- 업데이트 2024년 3월 27일 23시 51분
정부견제론 크지만 야당은 더 무책임
범죄(혐의)자 그득… 방탄에 골몰할 것
“대통령실이 제일 두려운 것은 집권 여당”
당 중심으로 책임 있는 국정운영 선언을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27일 오전 인천 남동구에서 열린 인천 현장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3.27/사진공동취재단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란 옛말이 있다. 임진왜란 때 전시행정을 총괄하는 도체찰사 류성룡이 지방에 보낼 공문을 하달했는데 다음 날 고칠 부분이 생겼다. 난감한 순간, 공문이 아직 안 내려갔음을 알게 됐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괘씸해 문책하자 부하는 “공문이 달라질 수 있어 사흘 있다 보내려 했다” 하더란다. 류성룡의 ‘징비록’에 나오는 얘기다.
급하게 추진하고, 또 금방 잊고 잘못을 반복하기. 우리 성정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를 밀어붙이는 대통령이나 ‘진보정권 몰락’을 몰고 온 조국을 잊고 조국혁신당에 환호하는 국민이나 오십보백보다.
너나없이 조급하고 건망증도 심하지만 그래도 반성할 줄 아는 리더십도 있어 우리가 이만큼 왔다. 총선을 2주 앞둔 지금은 어디를 봐도 답답하다. ‘정부 견제론’이 커지는데 야당은 더 믿을 수 없어 불안하다. 범죄(혐의)자로 그득한 정당들이 복수혈전에 골몰해 과연 나라와 국민을 위할지 의문이다.
대안은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여당 속 야당’ 역할을 선언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이철희는 “청와대에서 제일 두려운 것은 여당”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오버’할 가능성이 많은데 야당 반대는 당연하게 여기지만 여당이 “NO” 하면 다시 고려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힘도 과거엔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는 여당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당과 정례회동을 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정동기 전 민정수석의 감사원장 사퇴 등 당의 건의를 수용한 전례가 적지 않다.
국힘은 ‘내부 총질’을 못 견뎠고 윤석열 대통령은 상명하복의 검사 체질을 버리지 못했다. 대통령과 여당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할 정무수석은 당 대표 후보로 나선 의원에게 감히 “아무 말 안 하면 아무 일 안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은 한동훈에게 물러나라는 대통령 말을 전하기까지 했다. ‘윤심이 당심’이고 ‘당심이 민심’이라는 간신들 언행에 민심이 돌아선 것이다. 이젠 민심이 당심이고, 당 중심으로 대통령의 국정운영 성공을 돕겠다고 한동훈이 나서야 한다.
이유는 첫째, 정부 견제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을 믿을 수 없어서다. 한동훈이 27일 동아일보에 밝혔듯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공공선을 추구하는 당이라 하기 어렵다. 이에 비하면 적어도 방탄 걱정 없는 한동훈이 여당 속 야당 역할을 자임하면, 차라리 믿고 정부 견제를 맡길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브라질도 7대 경제 강국이었다가 사법독재와 검찰독재 때문에 갑자기 추락했다”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주장은 야당 대표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브라질에 빗대 윤석열 정부의 검찰독재를 비판하려는 건 이해한다. 그러나 이재명이 2년 전 대선 후보 시절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에 관해 했던 말을 또 했다는 것은 2년간 어떤 발전도, 배움도 없었다는 의미다. 그 나라 두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남미 최대 건설사 오데브레시로부터 정치자금 33억9000만 달러(약 3조9000억 원)를 받아 국내외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뿌린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 연방법원은 해외부패방지법 위반으로 오데브레시에 35억 달러 벌금을 선고했다. 무엇보다 대장동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재명이 할 소리는 아니다.
혈세가 제 돈인 양 퍼준다고 외치는 식견은 더 불길하다. 2016년 탄핵당한 지우마 호세프는 첫 임기 때 재정회계법을 위반하며 예산을 헤프게 써 재선 1년 후인 2015년 국가부채 등급을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뜨린 전력이 있다. 검찰독재 때문에 그 나라가 돌연 추락한 게 아니란 말이다.
한동훈이 여당 속 야당을 자임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고려공사삼일’이라는 우리 성정 때문이다. 당장은 조국혁신당의 돌풍이 불고 있지만 조국은 나라의 ‘도덕적 안전망’을 무너뜨린 인사였다. 지지자들이 “같은 잣대를 윤석열 정부에 들이댄다면 과연 떳떳한가” 묻는 건 안다. 그러나 총선 뒤면 손가락 자를 유권자가 적지 않을 터다. 한동훈이 여당 속 야당으로서 그 질문을 정부에 하고, 또 답변도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
한동훈은 ‘의대 정원 사태’ 중재에 나섬으로써 과연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지 보여줄 시험대에 섰다. 윤 대통령은 전두환의 4·13호헌 선언처럼 ‘의대 정원 2000명 고수’를 밝힌 바 있다. 류성룡에게는 선조의 마음을 눅이면서 경청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한동훈이 제2의 6·29선언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그리하여 정부 견제론을 흡수하고 총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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