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침수 피해 지역 현지 지도 과정에서 “건달뱅이들이 무책임한 일본새(일하는 태도)로 국가 경제 사업을 다 말아먹고 있다”면서 김덕훈 내각 총리에게 막말을 퍼부었다. ‘총리의 해이함’을 비난한 김 위원장은 “정치적 미숙아들, 지적 저능아들, 책무에 불성실한 자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면서 대대적 숙청을 예고했다. 자신이 잘못 해 놓고 다른 희생양을 만드는 것은 김정은이 자주 쓰는 통치술이다.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후계자 역할을 하던 2009년, 김정은은 돈주(신흥 부자)들이 장롱에 숨겨둔 돈을 끌어 낸다며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현금을 100대1로 교환해 주면서, 1가구당 15만원으로 한도를 묶었다. 설익은 정책은 대참사를 낳았다. 전국 장 마당이 마비되고, 기업, 국가기관 운영이 줄줄이 중단됐다. 민심이 험악해지자 노동당 재정계획부장 박남기를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지주의 외손자 출신으로 자본주의를 이식하려 한 간첩이었다”면서 그를 공개 처형했다.
▶김정은의 무자비한 제왕학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다. 김정일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 수십만 명의 아사자가 생기자, 미제의 간첩으로 포섭된 노동당 농업비서 서관희의 농단 탓이라면서 그를 공개 처형했다. 또 6·25전쟁 때 행적을 조사해보니 간첩 혐의가 있다며 당 간부 등 2000여 명을 숙청했다. 희생자가 너무 많아 민심이 흉흉해지자 간첩단 사건을 조사한 간부들을 “당과 대중을 이간시켰다”면서 또 처형했다.
▶김정은이 국정 실패를 인정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2021년 조선노동당 8차 대회에서 김정은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이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유엔의 고강도 제재, 코로나 사태 과잉 대응에 따른 북·중 무역 중단, 여름철 수해 등 3중고가 겹쳐 비참한 현실을 감추려야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2013년 김정은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표방한 순간, 북한 경제의 추락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북한이 핵 개발에 쓴 비용만 185억달러(약 24조원)에 이른다. 15억달러는 핵 실험·탄두 개발 등 직접 비용, 170억달러는 그 돈을 경제 분야에 투자했으면 얻을 수 있었던 소득, 즉 기회비용이다. 둘을 합하면 북한의 한 해 GDP에 육박한다. 외화가 바닥난 북한은 핵 개발 자금을 구하느라 가상 화폐 해킹에 목을 매는 현대판 해적 국가로 전락했다. 북한 경제를 말아먹은 장본인이 누군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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