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버라드 칼럼
쿠바의 오늘은 북한의 미래?
중앙일보 입력 2022.12.30 00:38 업데이트 2022.12.30 02:15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
세습독재, 경제난, 반미 등 공통점
새해 쿠바 공산당의 선택에 주목
북, 도발 그치고 쿠바의 길 따르길
2주 전, 어쩌면 북한의 미래 모습일 수도 있는 쿠바를 방문했다. 쿠바는 흔히 북한과 비교되진 않는다. 지리적으로 멀고 문화, 사람, 나라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상당히 비슷하다.
쿠바, 북한 모두 자유 없는 일당 독재 체제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가 나라를 세우고 정권을 세습했다. 온 거리에 정권의 프로파간다가 넘친다. 미국엔 심히 적대적이다. 최근 겪는 문제도 비슷하다. 개인의 삶에 깊이 개입하는 통치 체제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균열하고 있다. 식량 배급 시스템도 실패했다. 쿠바인은 배급센터에서 8시간 줄을 서야 식량을 얻는다. “쿠바 국민 스포츠는 줄서기”라고 자조할 정도다.
구소련 붕괴로 북한은 기근을 겪었고, 쿠바는 연 50억 달러의 구소련발 지원금이 끊어졌다. 코로나 충격으로 북한은 교역이, 쿠바는 경제의 대동맥인 관광산업이 중단됐다. 위기 대응 방식도 정적 탄압, 사상교육 강화 등으로 비슷하다. 흥미로운 건 수년 전 쿠바가 오늘날 북한과 비슷하다는 점. 바꿔 말하면 쿠바의 현재는 북한의 미래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간부들에게 사상 교육 부족과 부패를 질타한 쿠바 지도자들의 5년 전 연설은 올해 김정은 위원장의 연설과 같다. 2020년 후반부터 김정은은 경제위기에 대해 전례 없이 탄식했는데, 쿠바 지도자들이 10년 전에 그랬다. 주민 탈북을 막으려는 북한의 국경 경비 강화 노력도 판박이다. 2016년 3월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 때 핵심 의제는 쿠바인의 미국 불법 이주였다. 뾰족한 해결책을 못 내놓는 건 북한이나 쿠바 공산당이나 마찬가지다. 경제개혁(정치개혁은 만무하고) 제도적 역량이 없다.
2016년 3월 21일 쿠바를 전격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라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과 수도 하바나 대통령궁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함께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이날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는 쿠바 국민의 미국으로의 불법 이주 문제였다. [AP=연합뉴스]
쿠바의 어제와 오늘을 보자. 첫째, 쿠바는 경제위기를 직시하지 못한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 쿠바 공산당은 심각한 경제 침체 속, 페소화 가치가 하락하며 달러와 유로화의 병용을 인정해야 했다. 국민은 월급으로 생계유지가 안 돼 해외에서 일하는 가족의 송금에 크게 의존한다. 2021년엔 급기야 반정부 소요가 있었다. 필자와 만난 쿠바인은 모두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쿠바 공산당은 민심을 완전히 잃었다. 2022년 인구의 3%가 해외로 떠났다. 대부분 젊은이다.
둘째, 쿠바를 돕는 나라가 없다. 지난 11월 쿠바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찾아 지원을 호소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중국과 베네수엘라도 추가 원조를 거부했다. 셋째, 쿠바 공산당은 곧 붕괴하리라는 예측에도 권력을 유지 중이지만 영향력은 크게 위축했다. 쿠바 당국의 노력에도 엄청난 수의 쿠바인이 해외로 떠난다. 수도 아바나의 아파트 벽에 성조기를 걸어도 경찰, 정보 당국은 못 본 체한다. 넷째, 경제가 더 위축할 것을 우려해 관광객 대상 숙박업과 택시업, 개인의 영농 등을 허용한다. 세금은 받고 통제하진 않는다.
북한은 쿠바의 선례를 어느 정도 따를까. 경제·정치적 양보를 얻어 내기 위해 한국과 미국을 핵미사일로 압박하느냐 여부에 달렸다. 쿠바는 핵무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지 않았다. 쿠바를 지켜주던 구소련 붕괴 후 미국은 손쉽게 쿠바군을 무력화할 수 있었지만, 1961년 4월 피그스만 침공 이후 한 번도 침공을 시도하지 않았다. 북한이 미국의 침공에 맞선다며 값비싼 핵무기 개발에 열 올리고 있는 점은 정말 안타깝다.
북한이 핵무기 실험과 호전적 언사를 지속하면 경제난과 국제사회 고립은 더 심해질 것이다. 경제위기, 국제적 고립은 쿠바를 비참하게 만든 두 요인이었다. 이는 북한의 미래에도 중요한 변수다.
쿠바에서 일어난 일은 북한에서도 있었다. 2009년 내부 소요 사태로 경제정책을 되돌린 바 있고, 유로화와 중국 위안화가 북한 화폐와 병용됐다. 당국에 대한 충성도는 쇠락하고 있다. 경제난과 국제 고립, 당국에 대한 주민들의 환멸이 지속하면 쿠바의 전철을 밟을 공산이 크다. 다른 가능성도 크지만, 가장 개연성이 큰 북한의 미래다.
전문가들은 쿠바 공산당에 2023년은 특히 어려운 해가 될 것이며 몇 년 전엔 상상도 못 했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북한이 이를 보고 배우길 희망해보자.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며 북한이 올해보다 우리를 덜 머리 아프게 하길 기대해 본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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