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 옆 우리 집
우리 집은 큰길 옆에 붙어있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차들이 많이 다니는 큰 길가에 있는 집을 샀어요?’ 하고 묻곤 한다. 우리는 이 집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으니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나, 조용한 주택가에 익숙한 사람들은 우리 집이 한길 바로 옆에 붙어있다는 사실이 꽤 불편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가 큰길과 집 사이에 있는 좁은 드라이브를 통해 차를 몰고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것을 보고 놀라워하기도 한다.
40년이 되어가는 옛날이야기다. 우리는 몇 년 토론토 시내에 살다가 캐나다 이주 초기에 수년 동안 살면서 정이 들었던 이 외곽 지역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작은아들은 학교를 옮겨야 한다는 데 별 이견이 없었는데, 한창 학교 생활에 재미를 느끼던 큰아들은 우리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더라도 자기는 옛 친구들과 지금 다니는 학교를 계속 다니고 싶다고 했다. 나는 부동산 중개인에게 우리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더라도 아들은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에 통학할 수 있게 전철이나 버스를 금방 탈 수 있는 한길 가에 붙어있는 집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요구하는, ‘바로 집 앞에서 버스를 탈 수 있는 한길 가에 있는 집’을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교롭게 그 당시는 토론토의 집값이 급격하게 오르는 때라서 팔려고 내어놓은 집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조건에 딱 맞는 그런 집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은 인도 계통의 마음씨 착한 사람이었는데, 좀처럼 그런 집을 찾을 수 없다고 하더니 한번은 좋은 소식이 있다고 하면서, ‘버스 정거장에서 골목길만 돌면 바로 있는 집’이 있는데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나 우리가 집 창문을 통해서 아이가 버스 정거장에서 차를 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어야 되겠다고 하자 그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중, 어느 날 저녁 먹는 시간에 중개인으로부터 당신이 말하는 조건에 꼭 맞는 집이 나타났으니 혼자라도 지금 당장 가보는 게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주소를 받아적고 곧장 출발했지만, 그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때였다. 그래도 그냥 돌아갈 수는 없어 문을 두드리니 현관 등이 켜지면서 백인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방문한 목적을 밝히고 저녁 시간에 와서 대단히 미안하지만 집을 잠시 보여줄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깐깐한 인상의 집주인은 지금은 늦은 시간이니까 밝은 날에 오라고 했다.
나는 집안은 들여다보지 못한 대신 그 집 주변을 돌아보았다. 집 바로 앞은 아니지만, 두세 집 지나면 바로 버스 정거장이 있어 정말 그 집 창문에서 버스 정거장이 빤히 보이는 것이었다. 그 무렵은 집이 하나 시장에 나오면 여러 사람이 경쟁적으로 구매신청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때라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곧장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 집을 당장 사겠다고 했다. 중개인은 내가 집안을 돌아보지도 않고 집을 사겠다고 하니 정말이냐고 몇 번 다짐을 하고 다음 날에 구매계약서를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그 다음 날 우리 집을 찾아온 중개인 앞에서 나는 매매청구서에 서명했더니, 그다음 날 계약이 성립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집주인은 사려는 사람이 얼마나 집이 마음에 들었으면 집안도 보지 않고 계약을 할까 의아했을 것이다. 나는 집매매가 성립되고 난 후에 중개인이 그래도 한번 보라고 가져다 준 그 집을 소개하는 몇 장의 내부 사진을 보았을 뿐 이사하는 날까지 그 집을 찾아가본 적이 없었다.
이 집을 사게 된 연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이런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사람들은 집을 사면서 어떻게 집안도 들여다보지 않고 샀느냐고 놀라워한다. 집을 사고 난 다음에 별 하자가 발견되지 않아서 다행이지, 상점에 가서 물건 사듯이 집을 사는 것을 보면 참 생활 감각이 없는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문제는 힘들게 조건에 맞는 이 집을 샀는데, 아들은 서너 달도 지나지 않아 아무래도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게 좋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나도 아무리 바로 집 앞에 정거장이 있어도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러시아워에 시내 한복판에 있는 학교를 오가는 일은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당장 찬성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집 앞에 버스 정거장이 보이는 한길 가 집’을 구하던 일이 하루아침에 헛일이 되고 만 셈이다.
자식 때문에 집의 위치를 고르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 좋은 환경을 고르느라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옛 고사가 떠오른다. 나는 그런 교육적 명분도 없이 한길 가에 있는 이 집을 구하느라 애를 썼지만, 금방 그 이유가 사라지는 바람에 ‘한길 가에 있는 집’은 싱거운 에피소드로 남았다.
그러나 그렇게 구한 집에서 반평생을 살았으니, 우연한 일이 우리의 인생을 지배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정말 인생은 우연한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된 우연은 엄중한 삶의 현장이 되기 일쑤가 아닌가.
‘산 자’와 ‘죽은 자’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이기느냐 지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한 그런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코흘리개들이 골목길에서 여러가지 놀이를 할 때도 그랬고, 학교에 가서도 그랬다. 언제나 누가 더 잘하느냐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끝없는 경쟁이 강요되던 우리의 교육 환경은 승자와 패자의 느낌을 하루도 잊지 않게 만들었고,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라는 것도 승자와 패자가 나누어지는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이긴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갈채와 부러움을 받는다는 것이었고, 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경멸과 동정을 받는다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던 소년시절에는 간혹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했다. ‘너는 복싱 경기를 구경할 때 때리는 놈을 보냐? 얻어 맞는 놈을 보냐?’‘때리는 놈에게만 시선이 가면 넌 아직 철이 덜든 거야’. 그렇게 조금씩 철이 들어갔다고 할까.
어른이 되어서도‘이기느냐, 지느냐?’에만 모든 노력과 관심을 집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최대 관심사는 모든 수단을 다해서 ‘승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학교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했던 것처럼, 사회에서도 ‘승리자’가 되어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지 저 세상에 가서도 ‘승리자'가 되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젊은 시절에 사회의식을 키우면서 세상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자연스럽게 나누어졌다. 부(富)나 권력을 가진 자들은 위세를 부리며 호기롭게 살고 있었고, 그 다른 한쪽에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궁핍과 무력함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젊음의 순수한 열정 때문이었을까. 가진 자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이라고 매도하려고 했고 못가진 자는 착하고 불운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진 자는 관념적으로 타기(唾棄)하고 투쟁해야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들은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즐기고 음미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의식적으로 못 가진 자들 쪽에 서려고 했지만, 그것은 고통스럽고 또 불편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편’과 ‘저 편’을 많이 생각하던 시절이라고 할까.
일흔이 넘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드니 주위에 아는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난다. 가까운 친구나 그들의 배우자가 세상을 떠난다. 그들이 살아있을 때, 갈망하고, 애를 태우고, 또 때로는 몸부림치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 절절(切切)한 삶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생각하며 그들이 살아있을 때 쏟아붓던 모든 노고의 허망함을 느낀다.
사람들은 삶의 허망함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죽음의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죽음에 대한 느낌과 이해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산 사람들의 몫이다. 죽음 저쪽에서는 아무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넘나드는 길이 없어 어느 인간도 죽음에서 되돌아와 그 죽음의 본질을 이야기해준 적이 없다.
인류역사 이래로 수많은 지아비와 지어미가 눈을 감으면서, ‘내가 죽으면 저 자식들을 어떻게 하느냐’고 애를 태웠지만, 그 자식들은 굳건하게 살아남아 인류의 맥을 이었다. 뒤에 남은 사람들은 슬픔의 순간을 넘기고 그 죽은 사람들이 살아있을 때와 다름없이 또 열심히 산다. 그래서 ‘죽은 사람은 죽고 산 사람은 산다.’고 했던가.
살다가 보면 ‘이긴 자’와 ‘진 자’의 구분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분도 퇴색해지고, 결국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구분만이 남는다.
* 글쓴이: 캐나다 토론토대/ 워털루대 김영곤 박사(언어학)
(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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