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항상 “법대로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법대로 살았는데, 억울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흔히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법에 의해 억울한 삶을 사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정말 법대로 살면 정의가 이루어질까요? 우리 사회는 법을 이용하여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율법이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19절에서처럼 유대인들은 율법대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여 율법대로 살지 않는 것에 대해 정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 때문에 억울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율법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에게 죄인으로 살아가야했습니다.
사실 율법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율법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악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하니까 사람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사랑과는 먼 율법이 되어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20절 말씀에 사도바울이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없다”라고 말한 이유는, 그 법으로는 언제나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와 ‘사랑’의 가치가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사랑의 표현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지만 정의는 지켜져야 하기때문에 예수님 자신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안식일 법을 주신 이유는 주일에도 노동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스스로 쉴 수 없는 사람의 주인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너의 종을 쉬게 하라. 쉴 수 없는 자들에게 쉼을 주어라.”고 하는 것이 안식일법인데, 배고파서 이삭을 먹는 자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바리새인들을 보며 예수님은 가슴이 아프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자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람들을 사랑하고 품어주라고 율법을 주셨는데 우리는 오히려 반대로 그 율법으로 사람들을 정죄하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대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법으로 정죄하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사람들에게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 목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