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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李白이 아내를 위해 쓴 시

鶴山 徐 仁 2014. 10. 18. 15:02

[李白이 아내를 위해 쓴 시]


贈 內  (아내에게 보냄)

三百六十日   일년 삼백육십일

日日醉如泥   매일같이 고주망태 되어있네.

雖爲李白婦   명색은 李白의 부인이라 하지만

何異太常妻   太常의 마누라와 무엇이 다를까.

 

일찌기 남부러워하던 皇室의 翰林學士 자리도 그의 성격에 맞지 않아  박차버리듯 나와서, 처자도 돌보지 않고 홀로 천하를 주유하며 술과 달, 그리고 옛날 미인만 생각하며 살던 風流客 이태백이 그래도 고생하는 마누라 생각은 하고 있었던 듯...

  자기 實名을 넣고 부인을 걱정하며 쓴 五言絶句

 

  태상(太常)이란 궁중에서 천자(天子)의 종묘(宗廟) 사직을 받드는 관직.    

<태상(太常)의 妻> 라는 이야기는 後漢 시절 太常 자리에 있던 주택(周澤)이란 사람의 故事에서 나온 말이다. 그가 太常 시절, 업무에 충실 하느라 1년 360일 거의 집에도 오지 않고 근무했었는데, 어느 때 病이 생겨서 종묘(宗廟)의 재궁(齋宮:여자 등 일반인의 출입제한구역) 안에 누워 있었다.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된 부인이 약을 갖고 그곳을 찾아 갔었는데, 그는 아내가 재계(齋戒)의 금기사항을 어겼다고 화를 내며 監獄으로 보내버렸다 한다.

   酒仙 이라 불릴 정도로 술을 좋아해서, 매일같이 술에 취하여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가 皇帝가 부른다 해도 일어나지 않고 버티던 李白 그도 역시 인간이었기 때문에 마누라 걱정도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불러주는 사람 많고 인기가 있을 때는 처자식 생각 별로 않더라도, 외로워지면 별수 없이 생각나는 게 조강지처 부인이었을 것이다.

  안사의 난 평정 때 숙종의 동생 永王 측에 가담했다가 역적으로 몰리는 바람에,  옛날 산동 제남의 역하정(歷下亭)에서 杜甫 등과 함께 어울리던 文友 고적(高適)이 이끄는 관군에 붙잡혀 죽음만 겨우 면한 채  머나먼 夜郞으로 귀양 보내 졌었는데,   그 야랑으로 가면서 또 부인 생각을 하며 <南流夜郞寄內> 라는 시를 지었다.


南流夜郞寄內 (남쪽 야랑 땅에 유배되어 아내에게 부침)

夜郞天外怨離居  하늘 끝 야랑 땅에 멀리 떨어져 원망스러운데

明月樓中音信疎  밝은 달 비추는 누각에 그대 소식 거의 들을 수 없네

北雁春歸看欲盡  봄 기러기가 북으로 돌아가 볼 수 없게 되려 하는데

南來不得豫章書  남행길에서도 그대 예장의 편지 받아볼 수 없구려.

 

** 夜郞 : 중국 서남부 貴州省 奧地에 있는 지명.

  ** 豫章 : 현재의 江西省 南昌市.  당시 李白은 자의반타의반 천하를 流浪 중이었고 그의 부인 宗氏는 친정 豫章에 머물고 있었다고 함.

  위 시는 언 듯 보면 야랑(夜郞)에서 지은 시 같고 그렇게 해설한 곳도 있지만, 李白이 귀양지 야랑으로 가는 도중에 지은 시이다. 

  이백이 중국의 서남쪽 끝에 있는 야랑으로 가는 것은 죽지 못해 가는 가기 싫은 길인데다가 험난한 장강 삼협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몇 개월인가 멀고 험한 길을 가다가 야랑(夜郞)에 도착하기 이전, 白帝城 근처에서 사면령을 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기쁜 마음에 천리 길 江陵을 바람 같이 달려서 하루 만에 갔다고 하는 유명한

<早發白帝城>이란 시를 쓴 것이다.

    朝辭白帝彩雲間  千里江陵一日還   兩岸猿聲啼不盡  輕舟已過萬重山

     ** 白帝城 : 長江 三峽의 하나인 瞿塘峽 위쪽 白帝山에 있는 城 이름. 蜀漢을 세운 劉備가 이곳에서 죽었다 함.

     ** 啼不盡 : 끊임없이 울어대는 모양.  啼不住로 된 책도 있음. 

출처 : 碧波 藝術村
글쓴이 : viv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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