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스크랩] 단편소설, 산 그림자(월간문학 게재)

鶴山 徐 仁 2014. 8. 1. 16:55

산 그늘

정소성

푸르다 못해 거무스레하게 변한 산과 산들의 끝없는 행열이 진행되고 있는 곳, 내 고향 하호리이다. 오늘 따라 더욱 짙어진 검으스레한 산의 행열 사이로 귀청을 찢는듯한 산정적이 드리워져 있다.

나는 이 첩첩산중에서 일생을 살았다. 여기서 태어나서 이제 환갑을 맞게 되었으니 나는 진짜로 여기 태백산맥의 한 마을 골수 하호리 사람이다.

여기서 태어나서 지금껏 살고 있는 사람은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집사람도 이곳 태생은 아니다. 제 할미하고 어디선가 흘러들어와 하호리에서 정착했을 뿐이다.

그래도 한 스무 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황폐해져서 일곱 가구밖에 살지 않는다.

나는 하호리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린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싶지는 않다.

나는 다만 나와 함께 재 너머 읍네 국민학교에 같이 다녔던 광호, 상섭이, 숙자,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는 살지 않고 읍내에 살았던 영구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볼까 한다.

짧지 않은 내 인생에서 광호는 그나마 뚜렷한 추억을 남긴 아이다.

우리 둘이 인생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맞짱뜰 수밖에 없었던 것은 태백산맥 속 이 두메산골이 같은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 산골마을은 하호리(下湖里)라고 불렸는데, 골짜기에 박힌 마을의 북쪽 산발치에 꽤 큰 호수가 있어서 였다. 호수가 넓고 깊어 태백산줄기의 산그림자가 수면에 드리워졌다. 하호리에는 한 이십여호가 모여서 살고 있었으니 산골마을치고는 꽤 큰 편이었다. 광호네는 원래가 이 마을에서 조상 대대로 농짝을 만들어 팔아서 가계를 꾸려온 집안이었다.

광호네가 농짝을 만들어서 소달구지에 싣고 태백이나 영월 5일장에 나가는 것을 나는 국민학교에 다닐 적에 여러번 본 기억이 있다.

경상도 영주나 부석 봉화장터까지도 간다는 말을 들은 것같았다.

국민학교 3학년에 다닐 무렵 광호가 자기네 소달구지가 태백 장터에 농짝을 싣고 가는데 함께 타고 가자고 나를 꼬득인 적이 있었다.

태백이라는 데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대단한 곳인 듯했다.

서당 훈장과 하호리 리장 노릇을 하던 아버지조차도 아직 태백에 가 보신 적이 없다고 하셨다. 동네 전체가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지게를 메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보면 심심찮게 녹쓴 철모며 곰팡이 핀 군화가 수풀더미 속에서 발견되곤 했다.

아마도 6.25라는 전쟁이 끝난지 아직 10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도 산골짝 동네라 논다운 논이 없었다. 자기 땅으로 논 다섯마지기를 부치면 부자 소리를 들었으니 얼마나 빈촌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자니 밥은 언제나 새카만 잡곡밥이었고 일년 가야 밥상에 고기반찬 오르는 법이 거의 없었다. 동네사람들은 대부분 화전을 일구어 곡식을 구하거나, 아니면 영월이나 태백사람들의 땅을 도지로 얻어 경작했다.

“순달아, 니 이번 태백 장에 가는 기제? 확실히 말해라마. 달구지에 자리 많지 않다. 먼저 말해 도고.”

“내가 안 가마 갈 아가 또 있나? 영구는 안갈낀데...”

영구는 읍네에 있는 지서의 주임 아들이었다. 영구는 아버지하고만 둘이서 살고 있었다. 영구엄마와 누나가 지서 뒷마당에 재워져 있던 흙투성이 폭탄을 잘못 건드려 폭발하는 통에 죽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영구부자는 장터 입구에 있는 국밥집에서 식사를 대놓고 먹고 있었다. 영구 아버지는 순경 대장이면서도 죽은 아내와 딸이 불쌍타고 국밥을 먹다가도 운다고 한다. 영구는 하얀 얼굴에 공부를 잘해서 학급에서 반장노릇을 하고 있었다. 영구가 덜커덩거리는 달구지를 타고 태백장에 갈 것같지가 않았다.

“영구는 아이다. 니도 안가고 영구도 안 가도 갈라카는 아가 또 있다...”

“혹시 숙자가?”

“그래, 숙자다 와! 구리분 사준다카마 영락없다!”

숙자는 아비와 어미가 없고, 할미하고 둘이서 동네 구석지 외딴 집에 사는 계집아이다. 그런데 숙자의 할미는 무당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이 무당할미를 귀신할미라고 불렀다. 이 무당할미는 직업은 없고 동네 사람들 굿을 해주고 약간의 복채와 굿음식 남은 것으로 살고 있었다. 우리의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두 세 시간 숙자보다 늦어서 같이 고개를 넘어서 우리 동네로 하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아무리 하교시간이 틀린다고 하더라도 왕복 삼십리가 되는 우리들의 긴 통학거리이고 보면 우리가 숙자를 만나는 기회는 자주 있었다.

우리는 숙자가 귀신할미와 같이 살아서 기분나쁜 아이라고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문제는 숙자가 나날이 예뻐진다는 사실이었다.

어느날 영구가 이런 소리를 했다.

“순달아, 내 너거 하호리에 한분 가마 안되겠나?”

“우리 동네는 뭐 할라꼬? 볼 거 아무것도 없다 아이가. 절간도 없고 물레방아간도 읎다...”

“그래도 구신 할매는 있잖나.”

“구신 할매 봐서 뭐 할라고? 어떤 때는 무섭데이. 머리가 구신처럼 허옇고 어떤 때는 두 눈에서 불이 번쩍거린데이. 머리만 허옇지 낯짝이 빤질거린다고.”

“순달아, 니 공부만 잘 했지 와 그리 눈치가 없노, 자식아. 서당 훈장 아들이마 다가?”

광호가 끼어 들었다. 광호와 나는 우리 아버지가 하는 서당의 학생이었다. 우리는 천자문을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지게 호, 봉할 봉, 윤달 윤, 남을 여까지 외어서 천자문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었으나 광호는 겨우 백 자 정도를 외울 수 있었다. 그래서 광호는 언제나 나보고 머리가 좋다고 한다.

“서당 훈장어른 아들이 한문 조금 더 잘하는 거는 당연하지. 그거 가지고 머리가 조타카마 안된데이...그래 영구가 와 우리 동네 와서 구신할매를 볼라카노? 니 아는 게 있나?”

“그라마, 영구가 볼라카는 사람은 구신할매가 아이라, 구신할매 손녀 숙자다!”

“숙자라이? 그 냄새나는 쪼꼬만 가시나를 뭐할라고 볼라고 여기까지 올라카노? 학교에서도 볼 수 있는데? 누가 그러는데 손녀가 아이라 딸이라 카더라.”

“순달아, 니 눈에는 숙자가 냄새나는 쪼꼬만 가시나로 보이나?”

“그라마, 그 가시나가 옆에 오마 재수없다는 생각밖에 없다. 무신 귀신가시나같이 으스한 생각밖에 안들더라.”

“바로 그기다. 숙자가 알라 때 숙자 아이다. 으스스 한기도는 기이 귀신같아서가 아이고 가시나가 너무 이뻐서 그런 기다 아이가! 영구가 홀린기라! 아부지하고 혼자만 사니께롱 외로울 거 아이가!”

나는 혀를 찼지만, 사실 나도 광호가 하는 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숙자는 초등학교 1학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말 귀신같은 귀기를 거느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미태를 띄어 갔다. 그녀의 심상찮은 귀기는 아무래도 할미의 그것에서 유전된 듯했다. 귀신할미는 머리털만 혀옇지 낯짝의 피부가 대리석같다고들 한다. 간혹 숙자가 할미의 손녀가 아니라 딸같다는 사람도 있었다. 손녀도 아니고 딸도 아니고 어디서 줏은 아이라는 말도 돌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다. 귀신 할미가 소천네를 빼고는 동네 누구하고도 상종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귀신 할매가 동네로 흘러들어올 때만 해도 숙자는 걸음마를 하지 못하는 울보아기였다. 외딴집이던 소천네 집으로 우연하게 제일 먼저 들렸고, 마침 비어 있던 옆 집으로 소천에게 이끌려 인도 되었다.

상섭이는 동네 사람들 머리를 일년 동안 깎아주고 가을에 이발료를 쌀로 받아서 살고 있는 홀아비 소천의 아들이었다.

상섭이도 우리 집에 와서 한문을 읽었는데, 읍내 학교에서는 숙자와 동급생이었다. 우리는 녀석을 한 수 낮게 보고 어려운 일을 부려먹는데 이용하기가 일수였다. 상섭이는 언제나 귀에서 고름이 흘러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래도 상섭이에게 잘못 보이면 머리를 깎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내색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상섭이가 심사가 틀어지면 지 아비에게 고자질을 한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래서 머리 깎을 때 소천어른이 바리깡으로 맨 머리를 밀다가,

“니 재 너머 학교가다가 우리 상섭이 엉딩이를 발로 찼제....”

하면 우리는 무조건

“잘못했습니더. 다시는 안그럴께예.”

해야했다. 그렇다고 상섭이가 심술덩어리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녀석은 우리의 꼬봉이어서 우리 심부름을 군말없이 수행하였다.

찬란한 햇살이 안개를 머금고 동네 골짜기에 퍼져 있던 날 영구가 재를 넘어 하호리로 왔다. 이 산동네에 유난스레 자주 짙은 안개가 끼는 이유는 물론 동네의 위쪽 산 아래 펼쳐진 호수 탓이었다. 호수에는 산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서 얼핏 보면 신비스러웠다.

우리는 영구를 우선 못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낚시를 하면 모래무지 한 소쿠리는 잡을 수 있고, 그걸 고추장초장에 찍어 먹을 작정이었다.

“야 못이 드럽게 크다야-”

영구가 소리쳤다.

“이쪽은 모래무지나 잉어가 안잡힌다. 저쪽 좀 얕은 데로 가마 잘 잡힌다. 요 새끼들이 물이 얕아야 쳐묵을라꼬 떠오린다 아이가-”

광호가 말했다.

우리 세 산골 녀석들은 잠방이를 걷어 부치고 못의 얕은 데를 돌면서 낚시줄을 던졌다. 하늘에 금방 금방 은색의 섬광이 번쩍였다. 살 오른 잉어 놈들이 낚시밥을 지 밥상 반찬인 줄 알고 덥썩 덥썩 물어댄 것이다.

상섭이는 형들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낚시밥을 새것으로 대기가 바빴다. 그리고는 잡힌 잉어와 모래무지들을 커다란 대나무 통에 주워 담았다. 통 속에 갇힌 물고기들은 은빛색채를 번득이며 퍼득거렸다.

“상섭아, 숙자한테 가서 초고추장 좀 갖고 오라 캐라.”

광호가 말했다. 어느 새 대나무통 안에는 물고기들이 절반이나 차올랐다. 상섭이는 고기를 모으기 위해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짜석아, 그거는 내가 할끼이까네 니노마는 구신할매집에 가서 가시나한테 초고추장 좀 달라캐라. 너거 둘이는 같은 반이니까네 같이 학교 가고 같이 재 넘고 같이 집으로 온다 아이가. 집도 딱 들어붙어 있으민시로 그것도 좀 못하나!”

“숙자가 내 말을...내 말을...들어쳐묵겠나...”

상섭이는 투덜거리면서 대나무통을 내려놓고 귀신할머니집 쪽으로 걸어갔다.

“숙자야--”

돼지 목따는 목소리였다. 흙집 담벼락에 난 문이 뽈쫌히 열리더니 콧날이 오똑 서고 푸른 눈매를 가진 소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빙신아, 니 와 왔노?”

“순달이하고 광호 영구가 잡은 모래무지 쳐먹는다고 초고추장 좀 달래. 재 너머 읍네에서 영구가 왔다카이...”

“...”

숙자는 아무 말도 안하고 물을 닿아 버렸다. 그리고는 침묵이었다. 한참만에 다시 문이 열리더니 숙자가 이런 소리를 했다.

“별노무 자슥들이 다 있다. 저거가 3학년이라고 우리를 부려쳐묵나! 그래도 잉어를 쳐묵을라카마 초고추장은 있어야제. 가 있거라. 내가 만들어갖고 갈게. 할매가 오늘은 집에 없을끼다. 그래서 내가 해줄라칸다. 어서 꺼지거라.”

“다음에 홍수지마 재 너머 도랑 건널 때 또 업어주마.”

상섭이는 숙자의 아픈 데를 찔렀다. 홍수 져서 재 아래 도랑물이 불어나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상섭이가 업어주지 않으면 건너갈 수가 없다. 홍수지는 날이 상섭이가 숙자한테 대접받는 마당쇠가 되는 날이었다.

“듣기 싫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마 니는 내 손에 죽일끼다. 알았제! 이 빙신아!”

상섭이가 못 가로 오고나서 한참만에 과연 숙자가 주전자에 초고추장을 해가지고 나타났다.

“찌린내 나는 가시나가 증말 잘 생겼다. 비단 옷만 입으마 태백시장에 갖다놔도 안빠질 끼다마!”

영구는 숙자한테 혹해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리고는 숙자의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영구야, 너거 아부지 지서주임한테 말해서 재 밑에 흐르는 도랑에 나무다리 좀 놓아달라캐라. 우리는 다리 걷고 건느마되지만, 숙자는 치마를 입은데다 다리가 짧아갖고 안된다 아이가. 학교를 못가거나 아이마 상섭이가 숙자를 업고 건넌다카드라.”

“울 아부지가 너거 아부지 리장 시키갖고 금방 나무다리 놓아줄끼다. 내일 아이마 모래다.”

영구는 큰 소리를 쳤다.

산골 아이들은 금방 잡아올린 잉어와 모래무지를 초고추장에 찍어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는 누구부터인지도 모르게 여기 저기 틱 틱 자빠져서 잠이 들었다. 초여름의 나른한 날씨에 초고추장을 찍어 물고기들을 마구 먹은 탓이었다. 숙자는 주전자를 챙겨 자기의 집으로 사라졌다.

잠을 깬 아이들은 홀라당벗고 못 속으로 뛰어들어가 헤엄을 쳤다.

몸에 묻은 물을 닦아내고 옷을 주워 입었을 때, 광호가 쓰윽 나섰다.

“너거 놀라지 말거래이. 내가 숙자를 꼬셔갖고 점심 묵고 숙자네 집에서 신랑각시 놀이를 하기로 했다!”

“니가 운제?”

영구가 놀랍다는 투로 말했다.

“너거 초고추장 쳐묵고 나가 자빠졌을 때 내가 다 가시나를 꼬셔놨다. 지도 가시난데 무서운 할매하고만 사는 것보다는 우리같은 잘 생긴 머스마들하고 놀이하마 조을 거 아이가!”

광호는 한수 높았다. 우리보다 한발 앞 서서 걷고 있음에 틀림이 없었다.

“그 집에 창하고 칼, 그라고 구신들이 득시글거리지 않나! 무서버서 우째 그 집에서 하노?”

내가 말했다.

“훈장선상님 아들은 좀 다리다카이. 그거 다 가짜다. 어디 귀신이 있고 어디 천왕님이 있노? 백지로 그런거 만들어서 겁 줄라카는 기다. 그런데서 신랑각시 놀이하마 더 재미있을끼다. 무서버서 손에 땀도 나고!”

광호가 대꾸했다.

“신랑각시놀이가 뭐하는 기고?”

“순경대장 아들이 그것도 모리나! 신랑하고 각시가 끌어안고 자는 기다! 다른 아아 들은 문밖에서 망을 보고!”

“그라마 누가 각시고 누가 신랑이고?”

“순달아, 그기 걱정이가? 걱정 말거라. 물론 각시는 숙자지만, 신랑은 누가 정해진 기이 없다. 전부가 신랑이다. 그러이까네 오래 못 잔다. 잠시 잠시 자고 나오라카마 나와야 한다.”

“상섭이는?”

“상섭이는 신랑이 될 수 없다. 그노마는 마당쇠다. 마당에서 빗자루 가지고 마당 쓰다가 주인이 부르마 대가리 조아리고 네에- 하는 놈이 우째 신랑이 될 수 있노?”

산골 사내아이들은 광호에게 이끌려 숙자네 집으로 몰려갔다.

광호가 시키는대로 상섭이가 마당에서 빗자루를 들고 왔다 갔다 했고, 신랑으로 뽑히지 않는 두 사내아이들은 섬돌 위에 마주보고 서서 지시를 기다렸다. 그리고 신랑으로 뽑힌 사내아이는 방안으로 들어가 아랫목에 깔아놓은 보료 위에서 신부인 숙자와 맞절을 하고 잠을 자는 척했다.

제일 먼저 신랑으로 뽑힌 광호가 신방으로 들어갔다. 나와 영구가 방 앞 섬돌 위에서 허리를 굽히고 서 있었고, 상섭이가 빗자루를 들고 마당에서 어슬렁거렸다.

숙자의 주장으로 신방을 용왕님과 천상님을 모신 건너방 신당에 설치했기 때문에 사실 나에게는 으스스했다. 이런 대장 귀신들의 그림 옆으로는 귀신할매가 굿거리를 할 때 마구 휘두르는 칼이나 창이 꽂혀 있어서 한결 무서웠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신방에서 숙자가 터뜨리는 까르르하는 웃음소리가 났다. 광호가 그 까다로운 새촘데기 숙자를 어떻게든 웃긴 것이 틀림없었다. 그 무서운 방에서 그 까탈스러운 숙자를 웃기다니 그것은 보통의 솜씨가 아니었다.

“신랑 각시 놀이는 끝났다. 광호야 어서 나오너라.”

광호가 건너방과 안방 사이의 마루로 걸어나왔다. 그러면서 그는 영구를 보고서는 들어가라는 시늉을 했다.

영구가 신방으로 들어간 이후 잠시 시간이 흘렀다. 뜻밖에도 신방에서는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들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일까, 아마도 영구가 숙자더러 자기의 여자친구가 되어달라고 애걸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간이 다 되었어. 영구야 어서 나와.”

영구가 나왔다. 그 다음은 나의 차례였다.

내가 방안으로 들어갔더니 숙자는 보료 위에 누워 있었다. 꽤 괜찮는 비단 요잇이 깔린 무명 요 위 한 귀퉁이에 기워져 있었다. 숙자는 방안으로 들어온 나를 거들떠도 안보고 옆으로 누워 있었고 한쪽 팔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숙자는 바시시 일어나 두 손을 이마에 붙이고 절을 하고자 했다. 나도 덩달아 숙자를 따라 넙죽히 절을 했다.

나는 요 위로 올라가 숙자 옆에 누웠다. 숙자가 머리를 감쌌던 팔로 내 머리를 감쌌다. 신랑각시 놀이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고 가르쳐주는 듯했다. 나는 갑자가 속이 욱하고 토할 것만 같았다. 숙자에게서 정말 알 수 없이 역겨운 냄새가 풍겨져 왔기 때문이었다. 숙자가 입고 있는 옷에서 피어오르는 냄새이기도 했고, 아니면 머리채에서 피어오르는 것이기도 했다. 아니면 숙자의 몸, 어쩌면 사타구니에서 솟구치는 냄새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숙자를 밀쳐내려고 했더니 내 머리통을 감싸고 있던 숙자의 한쪽 팔이 내 몸통을 꽉 죄었다.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숙자가 하는대로 버려두었다. 그 순간 어쩐 노릇인지 그 무지했던 악취가 알 수 없이 그윽한 냄새로 바뀌는 듯했다. 적어도 향취는 아니지만 견딜만 했고, 내가 숨을 크게 빨아당기고 싶을 정도로 기분 나쁘지 않은 냄새로 바뀌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숙자의 몸을 끌어당겼다.

“나는 오라버니만 좋다아...”

분명 이런 소리가 들렸는데, 누가 하는 소리인지 금방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숙자의 목소리였지만, 숙자가 한쪽 팔로 자기의 얼굴을 감싸고 있어서 분간할 수 없었다.나는 주변에 둘러서 있는 무시무시한 귀신형상들이 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광호 오라버니도 싫지 않다...”

나는 분명히 이 말이 숙자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순달아, 신랑각시 놀이 끝났다. 어서 나오거라. 니 오래 있으마 안된데이.”

나는 어서 이 고약한 냄새 풍기는 여자아이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얼른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아이 몸둥이 위에 다시금 픽 스러졌다. 그 구역질 나는 냄새를 다시 맡아보고 싶은 욕구가 나를 아래로 잡아당겼기 때문이었다. 내 작은 몸둥아리는 숙자의 몸통 위에 픽 스러졌다. 나는 그만 혼절하다시피 코가 꽉 막혀오는 호흡곤란을 느꼈다. 악취가 너무나 심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방바닥으로 굴러 콧구멍을 숙자의 몸통으로부터 떼어놓았다. 그제서야 나는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귀신할매가 없는 틈을 타서 밤새 숙자네 집에서 놀았다. 신방에 늘어선 귀신형상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광호는 귀신형상들에게 보자기같은 천을 덮어씌어 버렸다. 어쩐지 조금은 무섭고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온 방을 키득거리면서 술래잡기도 하고 말등 타기도 하면서 놀았다. 숙자를 가장 많이 차지한 아이는 광호였다. 숙자도 언제나 광호를 선호하는 눈치였다. 영구는 광호가 양보해야만 숙자를 차지하고 팔을 걸기도 하고 안기도 했다. 광호는 가끔가다가는 나에게도 숙자를 양보하곤 했다.

우리는 주로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순서를 정하거나, 아니면 팔씨름, 아니면 두 다리를 앞뒤로 벌리고 오른 손을 마주잡고 상대방 쓰러뜨리기를 해서 숙자를 차지할 순서를 정하는 놀이를 했다. 얌전한 신랑각시 놀이는, 이제는 힘과 재주로 겨루어서 순서를 차지하는 놀이로 변했던 것이다.

우리는 새벽 첫 닭 우는 소리까지 놀았다. 그리고는 어둠이 장막처럼 드리워진 산간의 공간 속으로 삵괭이처럼 흩어졌다. 영구는 잘 데가 없어서 우리 집으로 내가 데리고 갔다.

새벽에 영구가 나를 깨웠다. 죽은 엄마와 누나 보고싶어서 아버지가 운다고 했다. 다음날이 마침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고 싶었으나 영구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저 멀리 산귀퉁이에 있는 숙자네 집과 그 옆집 상섭이네 집에서는 아침 밥 짓는 연기도 오르지 않았다. 숙자도 피곤해서 뻗은 모양이었다. 상섭이가 아침밥을 지어서 숙자에게로 가지고 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상섭이는 유난스레 숙자에게서 괄시를 받으면서도 수시로 무당집을 드나든다는 소문이 동네에 돌고 있었다. 지 아버지 소천의 심부름을 한다고들 한다.

평소에 병신으로 보이던 상섭이가 암팡쟁이 숙자가 초고추장을 만들어 오게 하는 것을 보고부터는 나는 은근히 상섭이가 좀 뭔가 남다른 데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새벽 흐린 시야 속의 숙자네 집을 지나 동네를 돌아서 재를 향해 방향을 틀던 우리들은 멀리 숙자네 집 담벼락에 붙어서 꾸물적거리는 광호를 보았다.

우리를 알아본 광호는 조금 놀라는 눈치더니 이윽고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니 집에 가서 안자고 거기거 뭐했노?”

영구가 물었다.

“나도 집에 가서 잤다와. 그라고 숙자한테 뭘 줄 게 있어서 다시 왔다 아이가!”“뭘 줄라고? 부지런도하네! 그래 뭘 좃노?”

“숙자가 머리 숱이 많은데 쬐꼬만 가시나가 머리통에서 그런 지독한 냄새가 나는기라. 그기이 머리가 짚북데기지! 그래서 머리핀 하나 좃다와! 그걸 담벼락구멍에 넣어놨다와!”

나와 영구는 넋을 잃고 광호가 하는 말을 들었다. 얼굴이 유난스레 거므레한 광호녀석은 어둠에 먹혀 낯짝은 보이지도 않았고 미끈거리는 목소리만 들렸다. 녀석은 뭔가 한발짝 앞서 있는 것같았다.

다음 날인가, 다음 다음 날인가, 읍내 지서에서 순경이 와서 리장인 아버지와 머리깎아주는

상섭이아버지 소천어른 그리고 염소수염을 한 영달이 어른, 조금 절뚝거리는 오록어른 등 동네 어른 서너명을 불러서 재를 넘어가 도랑에 나무다리를 놓았다. 다리는 튼튼했다.

나무 다리를 놓고나서부터 숙자는 상섭이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학교에 갈 때나 올 때 숙자는 상섭이를 고름냄새 난다고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학교로 가져갈 무거운 물건숙제나 비가 세게 올 때는 숙자는 언제나 광호를 불렀다. 그 때는 참나무 등걸이나 잔디 등 산과 들에서 거두어들인 것을 학교에 제출해야하는 시절이었다. 그러면 나도 덩달아 광호를 따라서 숙자와 같이 학교에 다녔다.

상섭이는 숙자가 노골적으로 괄시를 해도 아무런 불평도 안하고 묵묵히 우리를 따라다녔다.그러면 숙자는 상섭이가 불쌍하다는듯이 가끔 말 한 마디를 건네주곤 했다.

나는 광호가 숙자와 함께 학교 가는 길에 나를 붙여주지 않을까봐 우리집 뒷마당에 서 있는 밤나무에서 추수한 밤이나, 찐살같은 것을 늘상 녀석에게 주었다.

“순달이 니도 영구만큼이나 숙자를 좋아하는구나. 너거 그래싸도 소용없다. 숙자는 나만 좋아한다카이..그기이 무슨 수로 그런지 아나? 다아 수가 있다 아이가! 순달아 내한테 좀 배우거라. 그래 날 따라와라. 내가 그걸 가리치줄끼다마. 사실은 가르쳐주마 안되는데...”

나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쉬어빠진 행주냄새같기도하고, 썩은 고구마 냄새 같기도 한 숙자의 냄새를 더 맡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나는 늘상 하고 있었다. 그런 숙자를 꼬시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니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달빛마저 사그라진 어느날 밤, 우리집 사랑에서 천자문을 같이 읽던 광호가 아버지의 눈을 피해 이런 소리를 했다.

“오늘 가르쳐주까?”

“응”

나는 단번에 녀석이 하고파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공부가 끝나고 우리 둘은 내일 학교에 가지고 가야할 숙제가 있다고 아버지한테 거짓말을 하고서 집을 나왔다.

달빛마저 사그라진 캄캄한 밤의 공간이 산간에 빡빡하게 들어차 있었다. 넓고 넓은 암흑의 하늘에는 무수한 별빛만이 흩뿌려져 있었다.

광호는 한 손으로는 나의 손을 잡아 끌었고, 다른 한 손에는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나는 광호의 손에 끌려가다보니, 어느듯 숙자네 집 담벼락 맡에 와 있었다.

캄캄한 밤하늘의 별들이 연주하는 노래 소리가 춤을 추며 내려와 우리를 감싸는 것같았다.

광호는 담벼락 어디쯤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담벼락 구멍 속으로 쓰윽 집어넣었다.

지금 보니, 거기는 언젠가 새벽에 내가 영구를 우리집에서 재우고 재를 향해 가다가 여기 담벼락에 붙어 서 있던 광호를 보았을 때의 바로 그곳이었다.

“뭘 집어 넣었노?”

“세수비누다.”

“그라마 숙자가 아나?”

“내일 봐라, 숙자 낯짝이 깨끗해졌을 끼고 머리통에서 냄새도 덜 날 끼다.”

“그라마 머리빗하고 머리빈침하고 비누 등 등 전부 니가 좃나?”

“그라마, 책가방, 필통, 얼굴에 바르는 크림, 양말, 겨울철에 산바람 막는 목도리 등등 전부 내가 여기 담벼락 구멍 속에 넣은 기다.”

“니 어디서 그런 걸 구했노?”

“이노마야, 우리 아부지가 농짝 만들어 파는 거 모리나? 태백장에 가서 샀다왜!”

“허참! 그라마 숙자가 냄새가 덜 난다고...그라마 안돼는데...”

“순달아 니 무신 소리하노? 숙자 가시나 머리통이 코에 닿으마 구역질나서 뒤로 나자빠진데이! 이 가시나가 뒷간에서 가릴 것만 가리고 비누로 목욕하는 것도 모른다카이! ”

이런 일이 있고나서 숙자에게서는 그 구역질나는 고구마 썩는 냄새 대신에 코를 따갑게 하는 비누냄새가 났다. 이것이 광호가 나에게 가르쳐준다는 바로 특효의 숙자 꼬시는 방법이란 말인가.

그러던 어느날 여기 하호리 마을에 도무지 본 적이 없는 엿장수 한 사람이 찾아들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무렵 엿판을 멜빵을 해서 가슴팍에 메달고 키가 조그만 사내가 산악을 돌다가 우리 마음에 이른 것 같았다. 산악을 돌았으니 그가 엿구루마같은 것을 굴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그야말로 산간을 두 발로 헤집고 다니는 엿장수였다. 다들 없던 시절이라 이런 엿장수들이 수지가 좋다는 소문이 돌았다.

산간에 짙어져가는 땅거미를 헤치고, 찾아든 사내의 얼굴을 보니 세월의 물살이 짙게 밴 노인이었다. 아무리 후하게 쳐 주어도 회갑은 지난 사람 같았다. 그는 이 집 저 집을 돌면서 커다란 엿가위를 철겅거렸다. 사람들은 이 조그만 노인이 불쌍하다고 보리쌀이나 조를 주고서 엿을 조금씩 사는 것같았다. 그러나 그후 이 엿장수 할배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엿을 팔만큼 팔고 어디 다른 산마을로 갔으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한 일주일쯤 흐른 후에, 이 엿장수 할배를 귀신할머니집의 신당에서 본 적이 있다는 사람들이 더러 나타났다.

“할배와 할매가 둘 다 홀몸이니까 같이 살기로 했을끼다마.”

“두 사람이 늙어서 그기이 될까...?”

“무신 소리하노? 할매가 머리만 허옇지 갑년 전이라카이...”

“남자라카는 놈들은 문지방 넘어갈 힘만 있으마 그기이 된다 아이가!”

“그런데 무당이 서방 얻을 수 있노 말이다. 천왕님이 화낼낀데...”

“그라마, 아무 상관없다 아이가! 중들이 여편네 얻고, 신부가 파계하고 장가가는 세상이다. 무당이 시집 가는 거 아무 상관없다 아이가...”

“그런데 소천어른이 가마이 있을까...”

“소천이가 와 어때서?”“이 사람 모리고 하는 소리가! 소천이가 홀몸 된지가 벌써 육 칠 년이 넘었다. 상섭이란 놈이 피 빠지자말자 홀몸되었으니까네 조히 육 칠 년이 넘었고 말고...그 소천어른이 할매집에 얼씬 거린다는 소문이 있는 거 모르는가!”

“그런 뜬 소문이야 나도 들었지만 소천이도 점잖은 사람, 설마 무신 몹씰 짓이야 했을라고...”

“이 사람,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무신 일이 벌어져도 뚝별난 게 없다 하지를 않나! 조물주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럴! 그래야 인종이 씨가 마르지를 않을 거 아닌가베!”

태백산맥 깊숙이 들어앉은 산간 오지 마을에 엿장수 할배가 나타남으로써 심심하던 입들에 장날이 선 것이다.

할메에게 굿거리가 있는 날에는 아침 일찍 할배는 엿판을 가슴팍에 달고 동네를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둠이 깔리면 소리없이 무당할매집으로 스며들었다.

동네 사람들은 궁금증을 풀지 못해 숙자에게 무슨 말을 걸어보지만, 언제나처럼 이 아이는 된통스럽기만 했다. 원래가 싹싹하거나 친절하고는 거리가 먼 계집아이다.

“내가 어째 알겠능교! 궁금하마 직접 물어보이소와!”

말하는 낌새로 봐서 숙자도 심사가 틀어져 있는 것같았다.

그러다가 엿장수할배가 무당할매네 집에 스며든지 석 달쯤 흘렀을 때, 뜻밖으로 이 집에서 초상이 난 것이다. 엿장수의 의문의 죽음이었다.

노인이 죽던 바로 그날 새벽, 첫 닭도 울기 전이었다. 숙자가 우리집으로 뛰어온 것이었다.

“이장님요, 우리 할배가 죽었어예!”

“할배라이? 무신 소리하노 니? 니가 할배가 있나?”

“몰라예, 주무시다가 갑자기 죽었어예...어제밤에는 할메하고 한방에서 자지도 않았어예! 할메는 내하고 잤어예! 할메가 이장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어예...”

“그래 가보자! 순달아 니는 동네 어른들 좀 불러서 무당할망구집으로 오라캐라.”

“사람 죽었구마! 이장님이 귀신할매집으로 오시랍니더!”

나는 동네를 돌면서 계속 소리쳤다. 하도 소리를 세게 질러대서 목이 매케하게 다 잠겼다.

소천어른 댁에서는 상섭이가 막 잠에서 깨어나 눈꼽을 뜯으면서 나를 붙잡고

“성, 아부지 없어졌어잉! 아부지 없어서 혼자 잤어잉!”“없으마 할 수 없다마...이 밤중에 어디로 갔을꼬?”

“모린다. 없어진지 며칠 되었다카이!”

내가 상섭이를 데리고 무당집에 도착해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호롱불이 켜진 신당에 모여 있었다. 조용들했다. 뜨네기 할배가 죽었기 때문에 슬피 우는 사람도 없었다.

나도 머리를 디밀고 방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조그만 영감 하나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신당 한 구석에 뻗어 있었다. 귀 뒤로 깊은 상처가 생겨 피가 많이 흘렀는지, 내가 언젠가 신랑각시 놀이한다고 숙자와 함께 깔고 누웠던 무명 요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몸서리를 쳤다. 귀신할매만이 무슨 방울달린 작대기를 흔들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아무리 뜨네기 노인이지만 기냥 끌어묻을 수는 없고 지서에다 신고는 해야한데이...”

아버지의 결론이었다. 리장인 아버지의 말이었기에 누구든 반대하지 않았다.

“일부러 갈 필요는 없고 순달이 니하고 광호하고 학교가는 길에 지서에 들러 영구 아부지한테 말해라.”“야-”

나의 신고를 받고 영구 아버지인 지서장이 순경 하나를 데리고 오후에 하호리에 와서 무당집에 들렸다. 시신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귀신할매와 우리 아버지 그리고 영달이어른, 오록 어른, 구동할배와 물야어른을 지서로 데리고 갔다. 무슨 조사할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 하호리 사람들은 온종일 조사를 받았는데, 쉽게 풀려나지 못했다. 나와 광호 상섭이 그리고 숙자까지 지서로 몰려가 무슨 일이 있는지 영구를 잡고 물었다. 영구는 자기 아비한테 가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댔다.

“아부지예, 엿장수할배가 와 죽었는교? 숙자가 불쌍하구마! 저거 할매가 죄가 있을까봐서 마구 울어대구마!”

“니노마 자식은 숙자가 그리도 좋으나?”

“야! 세상에 숙자보다 더 이쁜 가시나는 없구마! 나무다리도 놔좃잖는교!”

“오냐...으음...”

하루가 더 지나고 엿장수 할배의 죽음은 복상사라는 지서주임의 결론이 내려졌다.

우리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하호리 우리 또래들 사이에도 커다란 변화가 왔다. 광호네가 농장 짜는 사업이 잘되어 영주로, 그리고 안동으로 나가더니 결국 대구로 진출했다. 그래서 광호는 우리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상섭이네도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하호리에서 사라졌다. 그 비슷한 시기에 무당할매도 사라졌는데 이상하게도 숙자는 혼자만이 그 신당집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영구는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부산으로 이사를 가 버렸다. 하호리에는 오직 나와 숙자만이 남게 되었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우리는 하호리를 떠나간 사람들을 점차로 잊어갔다. 그런 사람이 있었던가 하는 정도로밖에는 기억되지 않았다.

숙자도 할머니를 찾는다고 며달간 동네를 비우기도 하고, 직장을 얻어 몇 달씩 어떤 때는 일년이나 이년 정도 하호리를 떠나가 살기도 했으나, 결국은 다시금 하호리로 되돌아오곤했다. 숙자는 이런 식으로 수도 없이 탈향과 귀향을 되풀이했다. 밤에 그녀의 무당집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그녀는 귀향한 것이고, 불이 며칠째 꺼져 있으면 또 어디론가로 떠나간 것이었다.

탈향과 귀향을 되풀이 하던 숙자는 결국 하호리에 정착하는 것같았다. 나는 나에게로 다가오는 운명의 걸음을 알아차렸고 숙자와 결혼하였다.

그런데 첫딸이 피부가 까무잡잡하여 우리는 별종이라고 하면서 웃곤했다. 아내와 내가 흰 피부를 가지고 있는데 까무잡잡한 아이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유전학을 잘 모른다. 잘 알지도 못하는 유전을 따질 필요가 뭐가 있는가.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그 흐르는 세월은 나를 결국 갑년까지 끌고 온 것이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가끔 하호리에서 꼬맹이 시절을 보냈던 옛 동무들이 생각나지만 어디 한 사람 소식을 알아볼 데가 없다. 세월은 인간사를 무로 돌리는 것같다.

출처 : 경대사대 부중고1215회 동기회
글쓴이 : 정소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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