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12 14:19
친노 구심점 역할 문재인, 우클릭 행보 안희정
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30년 친구’다. 다른 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업자’라 불린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과 안희정 충남지사는 친노(親盧·친노무현)라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그것도 둘다 친노 핵심이다. 두 사람이 노무현을 매개로 같이 한 세월의 무게를 따진다면 정치적으로 다른 길을 가기가 힘들다.
그런데 두 사람의 색깔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최근 들어 달라지는 속도와 강도도 더해 가는 느낌이다. ‘같은 듯 다른’ 사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친노가 ‘친문재인’과 ‘친안희정’으로 분화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2017년 차기 대선 국면에서 문재인과 안희정 두 사람은 경쟁자가 돼,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인가.
그런데 두 사람의 색깔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최근 들어 달라지는 속도와 강도도 더해 가는 느낌이다. ‘같은 듯 다른’ 사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친노가 ‘친문재인’과 ‘친안희정’으로 분화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2017년 차기 대선 국면에서 문재인과 안희정 두 사람은 경쟁자가 돼,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인가.
- 문재인 의원(왼쪽)과 안희정 충남지사가 2012년 11월19일 국회에서 열린 지방분권 정책토론회에서 나란히 앉아 박수를 치고 있다. 조선일보 DB
두 사람은 최근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책을 냈다. 그것도 각자에게 꽤 큰 의미를 지니는 책이다. 문 의원은 대선 패배 이후 1년여만에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을 내고 정치 활동을 본격 재개했다. 지난 대선을 성찰하고 차기 대선에 대한 구상을 담았다. 그는 책 출간을 계기로 11월29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차기 대선 재출마 의사도 밝혔다. “2017년 정권교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대선 재출마를) 회피할 생각도 없다”는 말이었다. 문 의원의 이런 모습을 두고 주변에서는 ‘지난 대선때도 보여주지 않았던 권력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그가 차기 대선을 머리속에 두고 ‘자기 정치’를 하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11월23일 있었던 안 지사 출판기념회는 인상적이었다. 충남 천안 단국대 천안캠퍼스 체육관에서 열린 그의 책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출판기념회에는 야권의 주요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3000여명이 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당시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축사에서 “전당대회 하는 줄 알았다. 대선 후보 출정식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권노갑 민주당 고문은 “40대 기수인 안 지사에게서 1970년대 40대 기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는 느낌을 받았다”고 추켜세웠다. 그냥 말만은 아닌 것 같다. 안 지사가 만약 내년 지방선거에서 충남지사 재선에 성공한다면 그는 야권의 유력 차기주자 반열에 오른다. 아마 안 지사 머리 속에는 그런 큰 그림이 들어 있을 것이다.
친노라는 같은 뿌리, 하지만 다른 태생
문 의원과 안 지사는 같은 친노 핵심이지만 태생은 조금 다르다. 안 지사는 199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든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사무국장으로 참여하면서 노 전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광재 전 민주당 의원과 함께였다. 이후 쭉 노 전 대통령을 보좌하던 안 지사는 2002년 대선 승리를 계기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정무팀장을 맡으며 핵심 실세로 부각됐다. ‘좌(左)희정 우(右)광재’라는 말도 이때부터 얻었다.
하지만 대선 캠프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다가 2003년 불법 정치자금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정작 노 전 대통령 재임때는 아무런 공직도 맡지 못했다. 노무현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었지만 참여정부 내내 외곽으로 돌아야 했다. 노 전 대통령이 2008년 1월 안 지사의 출판기념회에 보낸 동영상 메시지에서 “나는 안희정씨에게 엄청난 빚을 졌다”고 말하다가 눈물을 쏟아낸 일화는 유명하다. 이 동영상은 안 지사가 당시엔 공개하지 않았고, 나중에 공개했다. 안 지사는 2007년 대선 패배 뒤 ‘친노 폐족(廢族)’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쓰기도 했다. 안 지사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충남지사로 당선돼 재기에 성공했다.
반면 문 의원은 참여정부 내내 청와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등을 지내며 참모로서 노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문 의원은 1982년 부산에서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며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두 사람은 각종 시국 사건 관련 변호를 맡으며 부산에서 이름을 얻었다. 노 전 대통령이 1988년 총선에서 당선되며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 이후에도 문 의원은 부산에서 변호사를 계속했다. 그러다 2002년 대선에서 문 의원이 노무현 후보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았고, 참여정부 출범 후에는 청와대로 들어가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그는 ‘부산 친노’의 좌장 격인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부산선대본부 출범식에서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했다. 문 의원은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직접 서거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브리핑을 했고, 국민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실질적 ‘상주’ 역할을 한 것이다. 두 사람은 평생의 친구이자 동지라 할 수 있다.
-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11월23일 안희정 충남지사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 의원과 안 지사 두 사람간 직접적 인연은 어떨까. 사실 두 사람의 직접 인연은 별로 찾기 어렵다. 둘이 같이 일을 한 적도 없다. 참여정부 출범 이전에 문 의원은 부산에서 활동했고, 안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의 참모로서 서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특별히 만날 일도 없었다. 때문에 서로가 알고 있는 사이이긴 했지만 본격적 인연은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이후부터다. 그런데 그 인연의 출발은 ‘아픈 추억’이었다.
두 사람을 다 잘 아는 친노 핵심 인사의 말이다. “참여정부 출범 후 2003년 안 지사가 불법정치자금 문제로 검찰수사를 받고 구속될 당시 문 의원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당시 문 의원이 안 지사를 도와주고 싶어도 검찰을 핸들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던 문 의원은 이후 안 지사에게 ‘미안하고 애틋하고 애잔한’ 마음을 갖게 됐다.”
이 때 일로 안 지사가 문 의원에게 섭섭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주변인들은 그런 관계는 아니라고 전한다. 이후 안 지사가 당 최고위원에 도전하고 충남지사에 출마할 때 문 의원은 도움을 주려고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 지난 대선 때 안 지사는 문 의원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지금도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조언을 주고 받는 사이다.
친노 구심점 문재인, 우클릭 안희정
문 의원과 안 지사는 최근 들어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 사람은 이른바 친노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고, 한 사람은 친노의 색깔을 탈피하려는 행보를 하고 있다. 현안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낼때도 많다.
가장 최근 두 사람이 박근혜정부에 대한 평가를 한 대목을 보면 결이 다른 것을 확 느낄 수 있다. 문 의원은 기자간담회와 자신의 책을 통해 박근혜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보다 더 절망적인 퇴행(退行)을 보이고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실패를 면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안정치를 이끄는 무서운 대통령이 됐다. 박근혜정부의 행태에서 때 이른 권력의 폭주를 느낀다”고 했다. 상당히 날선 언어로 정면 비판한 것이다.
반면 안 지사의 뉘앙스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 “각 진영의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역사와 시련이 어우러진 토양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밑바탕으로 작용했다”고 했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치러진 대선에서 졌다면 더 이상의 변명은 필요가 없다”는 말도 했다. 안 지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당장 ‘안 지사의 우클릭’이라는 말이 나왔다.
안 지사는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 12월 기자간담회에서 “젊은 세대가 정권의 주역이 된 것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40년만이다. 그때는 군인들이 총칼 들고 한강을 건너 정권을 장악했지만 우리는 노사모와 노란목도리를 매고 한강을 건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때 발언과 비교하면 안 지사의 최근 발언은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 안희정 충남지사가 11월23일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대선 후보였던 문 의원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을 때 재협상을 공약했다. 반면 안 지사는 “야당의 한미FTA 반대 논리에 반대한다”고 다른 입장을 보였다.
문, “안 지사 성장 반긴다” VS 안, “영광이다”
두 사람의 이런 차이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잠재적 경쟁자’ 구도를 만들고 있다. 2017년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면 어쩔 수 없이 경쟁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미 두 사람을 구심점으로 한 ‘친노의 분화(分化)’를 점치는 시각도 많다.
이런 시각에 대해 양측 관계자들에게 물어봤다. 문 의원의 대변인격인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차기 대선 얘기는 아직 먼 훗날 얘기다. 가상의 얘기일 뿐이다”고 했다. 문 의원의 다른 측근은 “문 의원은 안 지사가 정치적으로 더 성장하길 바라고 있다. 굉장히 반길 것이다. 만약 정말 대선 국면에서 경쟁하는 상황이 온다면 서로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안 지사 측 조승래 비서실장은 “4년이나 남은 얘기를 지금 시점에서 미리 말하는 게 의미 없다”고 했다. 안 지사의 다른 측근은 “안 지사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영광이지만 그건 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고 답을 한다. 안 지사에게는 지금 내년 지방선거가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