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황혼 일기

鶴山 徐 仁 2013. 11. 11. 10:59

 

 

 

 

 

 

황혼 일기

 

고정희 詩人 

 

뉘엿뉘엿 저무는 시간에, 나는 차분하지 못하여

그 집의 너른 유리창가에 앉으면

바람부는 창밖은 딴 세상의 풍경처럼 아름다왔다

잔조롭게 흔들리는 산목련 줄기 사이로

휙 가로지르는 새도 새려니와

불그레불그레 물드는

찔레꽃 이파리들 무심히 바라다보면

울컥하고 치미는 눈물 또한 어쩌지 못했다

후르르후르르 산목련 줄기에서 흔들리는 건

산목련잎이 아니라 외줄기 내 영혼이었기

기댈 곳 그리운 우리 정신이었기

오래오래 나는 울었다

 

어둠이 완전히 창을 지워 버렸을 땐

넋장이 무너지듯 내 아픔도 깊어져

하염없는 슬픔으로 어깨기침을 했다

누군들 왜 모르랴

어두워지는 건 밤이 아니라

속수무책의 한 생애

무방비 상태의 우리 희망이거니

그 집의 주인은 조용히 다가와

너른 창에 커튼을 내리고

내 좁은 어깨를 따뜻이 감쌌다

(새도 날기 위해 날개를 접는 거란다. 빛과 어둠이 하나이듯 말야!)

문득, 신경통에 좋다는 골담초 꽃망울이

건들건들 흔들리는 고향집이 그리웠다

 

 

* 출전:『이 時代의 아벨』,고정희 지음,(문학과 지성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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