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야쿠자의 아들, 불륜男, 윤락街 포주들의 변호사… 망언꾼 하시모토
입력 : 2013.06.01 03:11 | 수정 : 2013.06.01 11:20
日서도 조롱당하는 하시모토
日매스컴이 3년간 밝힌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정체
노랑머리 '궤변 변호사' - 大阪 포주조합 고문변호사… 여성 르포작가가 2년전 폭로
"요리조합일 뿐" 변명에 "중학생도 아는 거짓말" 비판
그를 지도한 인권변호사도 "그는 돈만 밝힌 천박한 사람"
작년 '코스프레 불륜' 발각 - 베스트 파더賞 받은 2006년… 호스티스와 변태적 불륜
스튜어디스 제복 입혀 발리風 러브호텔서 밀회… 때때로 사디스트적 행각도
필로폰 맞고 자살한 부친 - 賤民지역이던 '부라쿠' 출신… 형제가 함께 야쿠자에 가담
온몸에 龍문신… 도쿄 피신중 하시모토 출산 "여자와 약에 미쳐 숨졌다"
폭로되는 출생의 비밀 - 평생 출신 배경을 감추다 사실 확인되자 "血脈주의냐"
감성에 호소해 역공 성공… 오히려 지지율 끌어올려 동물적 생존 본능 과시
- 일본군위안부의 역사를 조롱한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이야말로 개인사(史)로 인해 일본 국내에서 끝없이 조롱당한 인물이다. 그가 살아오면서 조금이라도 남을 배려했다면 그의 불행한 개인사 역시 조롱당하지 않고 보호받았을 것이다. / 블룸버그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조롱해 자기 무덤을 파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44) 일본 오사카 시장은 저돌적 추진력으로 "일본의 구세주"로 불렸다. 이 구세주는 어떤 얼굴을 가진 인물일까?
지난달 27일 도쿄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의 한 장면. 이탈리아 기자가 하시모토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비타 조합'이라고, '풍속(風俗·성매매 업종)'인가요. '매춘'이란 말을 사용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 조합의 고문변호사를 하셨다는 말이 있어요. 매춘은 일본에서 불법인데, 시장이 그런 곳의 고문변호사라니…. 스스로 어떻게 납득하나요?"
'도비타 조합'은 오사카 윤락가인 도비타신치(飛田新地)의 포주 조합을 말한다. 도비타는 일본 최대의 윤락가였고 지금도 매매춘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탈리아 기자가 질문의 의도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면, 이런 질문에 가까웠을 것이다. "윤락가 포주들의 고문변호사 출신이기 때문에 '일본군위안부가 당시에 필요했고 지금 미군들도 풍속업을 활용해 달라'는 망언을 하셨나요?"
한때 하시모토의 불륜 상대였던 30대 호스티스는 하시모토의 본성을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한 일이 있다. 이번에도 그런 성향이 엿보였다. "도비타 조합의 고문변호사를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요리(料理)조합이라 위법은 아니지요." 1958년 매춘방지법 시행 이후 도비타 조합은 매춘업 간판을 감추기 위해 이름만 '도비타 요리조합'으로 바꿨다.
쓴웃음 소리가 들렸다. 동석(同席)한 일본의 유명 논픽션작가 다나카 류사쿠(田中龍作)가 하시모토에게 반문했다. "도비타에선 가게 2층에서 돈만 내면 매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오사카의 '약간 까진' 중학생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죠. 중학생이 '하시모토씨가 거짓말을 하네!' 하고 생각할 수준의 궤변을 늘어놓다니. 정치가로서 부끄럽지 않나요?"
일본군위안부의 역사를 조롱한 하시모토야말로 불투명한 개인사(史)로 인해 일본에서 줄기차게 조롱당해온 인물이다. 안에서 당한 스트레스를 이번에 밖으로 풀려 했던 것일까? 뜻대로 안 되는 듯하다. 위안부 할머니를 향한 그의 조롱은 근거 없는 망언이지만, 자신을 향한 세상의 조롱은 '팩트'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본에서 밝혀진 망언꾼 하시모토의 정체를 정리했다.
- 하시모토가 포주 조합의 변호사였다는 사실을 폭로한 여성 르포작가의 저서 ‘마지막 홍등가 도비타’. / 출판사 제공
◇윤락가 포주들이 고용한 노랑머리 변호사
오사카 도비타는 1층에서 술을 마시고 2층에서 '15분당 1만2000엔' 정찰제로 매춘하는 일본 전통의 윤락 코스를 고수하고 있다. 하시모토가 도비타 포주들의 고문변호사였다는 사실은 여성 르포작가 이노우에 리쓰코(井上理津子)가 이 지역을 12년 동안 취재해 엮은 책 '최후의 홍등가(色街) 도비타(2011년 10월 22일 발간)'를 통해 알려졌다.
2009년 가을 취재를 위해 도비타 조합회관을 방문했을 때 이노우에는 응접실 액자에 걸린 사진 한 장 앞에서 "앗" 하고 멈췄다. 당시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하시모토가 조합장과 나란히 찍은 모습이었다. "하시모토 지사? '줄 서는 법률사무소(일본 지상파방송의 법률 프로그램)'에 출연할 무렵의 하시모토 지사 아닌가요?" 하시모토가 방송에 출연한 것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였고, 2009년 당시 하시모토는 오사카부(府)의 지사였다. 조합 간부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조합의 고문변호사이지요. 일전에 조합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이노우에는 이렇게 기술했다. "도비타는 당초 조직폭력단 '기토구미(鬼頭組)'의 지역이었다. 이 지역을 '살인 군단'이란 악명을 떨치던 '야나가와구미(柳川組)'가 접수했다. 조합에 조폭 관계자가 개입했다. 하시모토씨는 이 조합의 고문변호사였다." 하시모토가 얼마나 오랫동안 포주들을 위해 어떤 업무를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시모토는 기자회견에서 변호사의 비밀 유지 의무를 내세우면서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피해갔다.
하시모토의 변호사 행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현재 그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이 1996년 법률사무소에서 하시모토의 '오야벤(親辯·지도 변호사)'이던 인권변호사 가바시마 마사노리(樺島正法)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다음은 가바시마가 일본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가 발행하는 잡지 'G2'에서 하시모토를 회고한 대목. "하시모토는 '부라쿠(部落·과거 일본의 천민 거주지)' 출신이 아니라며 관련 소송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돈에 집착했다. '이대론 먹고살 수 없다'며 국선(國選) 형사사건을 피하고 돈을 찾아다녔다. 변호사로서 천박한 이미지였다."
1998년 법률사무소를 그만두고 독립한 그는 뛰어난 수완으로 연간 3억엔을 벌었다. 초기의 수익 창출원은 잠적한 교통사고 가해자를 찾아내 손해배상금을 받아내는 업무였다고 한다. 그가 노랑머리에 명품으로 몸을 치장하고 포르셰와 할리데이비슨을 몰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그 후 그는 파산자를 양산한 고리대 금융회사의 고문변호사를 6년 동안 맡았다.
- 변호사 시절의 하시모토. 염색 머리와 선글라스가 트레이드마크였다. 그 당시 그는 윤락가 포주의 고문 변호사로 일했다.
2012년 7월 주간분�(文春)은 '하시모토는 스튜어디스 옷을 입은 나와 잤다'는 제목의 폭로 기사를 게재했다. 2006년 오사카 고급클럽(한국의 룸살롱과 비슷)에서 하시모토를 만나 불륜 관계를 맺은 호스티스(불륜 당시 20대 후반)를 인터뷰한 기사였다. 일곱 자녀를 둔 하시모토가 일본 '아버지의 날' 위원회로부터 베스트파더(Best Father)상을 받은 바로 그 해였다.
인터뷰는 큰 화제를 모았다. '코스프레(만화·영화 등 특정 캐릭터의 옷을 입고 노는 것) 불륜'이란 낯뜨거운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지면에 옮기기 민망하지만, 하시모토란 인물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해 내용을 압축해 소개한다.
"네 번째 데이트부터 '식사 후 섹스'가 코스로 자리 잡았다. 하시모토는 이타미(伊丹)공항 근처의 발리풍(風) 러브호텔을 좋아했다. 이 호텔은 손님에게 코스프레용 옷을 빌려줬다. 하시모토는 스튜어디스와 OL(직장여성)의 제복을 빌려 나에게 '이거 입어봐, 저거 입어봐' 하면서 건넸다. 입으면 '귀여워! 아주 잘 어울려' 하면서 무지 기뻐했다… 하시모토는 성욕이 강했다. 종종 피임기구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때 그가 '나는 적중률이 높다(섹스를 하면 아이가 잘 생긴다는 뜻)'는 소리를 해 체외(體外) 사정을 요구했다… 사디스트 성향도 있었다. 하는 도중 갑자기 '변태는 말이지, 범죄자의 심리는 말이지, 팬티를 뒤집어쓰고 범할 때도 있다'며 내 팬티를 가져다 뒤집어쓰는 흉내까지 냈다."
◇'출생의 비밀' 둘러싼 주간지와의 血戰
일본 주간지가 하시모토를 정조준한 것은 2011년이다. 하시모토가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가출해 테니스부 여자친구와 살림을 꾸린 불량청소년 시절의 팩트까지 들춰냈다. 하지만 최종 과녁은 '하시모토 출생의 비밀'이었다. 하시모토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사망한 아버지, 본명 '하시시타 유키미네(橋下之峯)'의 정체였다.(그는 하시모토를 낳을 무렵 "다리 밑이란 뜻이 싫다"며 성(姓)의 독음(讀音)을 '하시모토'로 바꿨다.)
하시모토 아버지의 부라쿠(部落·과거 천민이 거주하던 피차별 지역) 출신설과 자살설을 처음 거론한 것은 논픽션 작가 모리 이사오(森功)가 2010년 12월 'G2'에 게재한 '도와(同和·피차별 지역인 부라쿠를 뜻함)와 하시모토 도루'란 제목의 기사였다. 모리는 죽은 소와 말에서 젤라틴을 뽑아내 연명하던 부라쿠 지역인 야오(八尾)시 야스나카(安中)에 하시모토의 아버지가 거주했다는 팩트를 확인했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부라쿠민(民)이었다는 사실 확인엔 실패했다. "남편은 때때로 그곳에 살았지만 선대(先代)부터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는 하시모토 어머니의 인터뷰가 과녁을 흔든 것이다.
주간신쵸(新潮)와 신쵸45(월간지), 주간분�(文春)이 이례적으로 같은 내용의 폭로 기사를 낸 것은 1년 후인 2011년 10월. '독재자 하시모토 출생의 비밀'(주간신쵸) '하시모토 42세 쓰이지 않은 혈맥'(주간분�)…. 하지만 논픽션 작가인 우에하라 요시히로(上原善�)가 신쵸45에 기고한 '가장 위험한 정치가 하시모토 연구, 고독한 포퓰리스트의 원점'이 가장 자세했다.
그는 현장 르포를 통해 "야스나카(安中)에 있는 (하시모토 아버지의) 묘소에는 하시모토 증조부 이름까지 새겨져 있었다"고 썼다. "대대로 살지 않았다"는 어머니의 인터뷰를 뒤집은 것이다. 결정적 증언은 하시모토의 숙부(아버지의 친동생) 하시시타 히로토시(橋下博 )에게서 나왔다. 민머리를 한 토건업자 숙부는 부라쿠(部落) 사업의 이권을 따내는 야쿠자 출신였다. 그의 아들(하시모토의 사촌)은 금속 야구 방망이로 사람을 때려죽여 살인죄로 복역한 전력이 있다.
"나와 형은 폭력단인 '도이구미(土井組)'의 야쿠자였다. 야스나카에서 태어난 '부라쿠' 출신이다."
◇필로폰 맞고 자살한 야쿠자 아버지
우에하라의 기사에 따르면, 1960년대 말 형사사건을 일으킨 하시모토의 아버지는 시효가 끝날 때까지 도쿄로 피신했다. 이때 군인의 딸을 만나 하시모토를 낳았다. 하시모토의 출생지가 오사카가 아니라 도쿄인 것은 이 때문이다. 얼마 후 아버지는 홀로 오사카로 돌아갔고 아내와 이혼했다. 그러곤 몇 년 후 가스관을 입에 물고 자살했다. 우에하라는 "'여자와 약(필로폰)에 미쳐 숨졌다'고 증언하는 사람도 있다"고 썼다.
2012년 10월 발간돼 일본 언론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주간아사히의 폭로 기사(제목 '하시시타 녀석의 본성')는 좀 더 구체적이다. '논픽션의 거인'으로 불리던 사노 신이치(佐野眞一)는 한 인척의 증언을 이렇게 기술했다.
"하시모토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싸움을 잘하고 포악해서 나라(奈良)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자라서 도이구미 계열 '쓰다구미(津田組)' 소속 야쿠자가 됐다. 어깨엔 미키마우스 모양의 문신이 있었다. 그런데 자살하기 10일 전에 목욕탕에서 만났더니 몸 전체가 용 문신으로 덮여 있었다. '어찌 된 일이오?' 하고 물으니, '돈을 갚지 못한 문신업자에게 돈 대신 시술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죽기 다섯 시간 전에도 만났는데, 그는 절반은 미쳐 있었다. 필로폰을 맞은 사람은 보면 안다. (하시모토의 아버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와 헤어진 뒤) 얼마 후 전화를 받았다. '그가 가스관을 물고 죽었다'고."
전 남편이 죽은 뒤 3년 후 하시모토의 어머니는 뜻밖의 선택을 한다. 하시모토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전 남편의 고향인 야스나카 인근으로 이주한 것이다. 역시 '부라쿠' 지역이던 아스카(飛鳥)였다. 하지만 부라쿠민을 위한 아파트가 아니라 일반 아파트에 입주했기 때문에 부라쿠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 하시모토는 그동안 '보조금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그동안 자신의 가계가 '부라쿠' 출신이란 소문을 부정해 왔다.
지금까지 하시모토는 일본 주간지의 공격을 능란하게 넘겼다. 인정할 것과 무시할 것, 반격할 것을 교묘하게 선별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하단 박스 기사에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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