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어: 박용진 대변인 홈페이지 |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전북 장수군 태생으로 성균관대 재학시절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과 연계된 서총련 산하 북부총련(서울지역 총학생회연합 북부지구총련) 의장을 지냈다.
1993년 5월27일 조직된 한총련은 북한 정권의 전위대 역할을 자처했던 학생운동권 단체로 ▲국보법 폐지연대 참여단체이며 ▲이라크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 ▲2004탄핵무효범국민행동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광우병 위험 미국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긴급대책회의 등에 참여해왔다.
한총련은 국보법 철폐, 주한미군철수, 연방제 통일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다 1998년 7월 대법원에 의해 利敵단체로 규정됐다. 이적단체란 反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선전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단체를 의미한다.
출처: 박용진 대변인 트위터 캡쳐 |
박용진 대변인은 대학졸업 후 국내 左派 단체의 연합체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에서 정치부장으로 활동했다. 전국연합은 1991년 출범 이래 줄곧 국보법 철폐, 주한미군철수, 6·15공동선언 2항의 실현인 ‘낮은 단계의 연방제’구현 및 자주적 민주정부(인민민주주의 정권)수립 후 1민족1국가2제도2체제의 ‘연방통일조국건설’을 지향했던 단체이다.
전국연합은 2001년 9월22~23일 충북보람원수련원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에서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 건설하자>는 이른바 ‘9월 테제’(별칭 ‘군자산의 약속’)를 채택한 바 있다.
당시 전국연합의 오종렬(現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상임의장은 “연방통일조국을 실현하는 힘은 우리 위대한 민중들에게 있지만 그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굳건한 민족민주전선이다...(중략) 식민지 지배질서가 온전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全(전) 민중의 전면적 항쟁은 미국의 식민지배와 분단장벽을 허물고 자주와 민주, 통일의 새 세상을 안아올 수 있는 지름길”이라며 소위 식민 지배 상태에 있는 남한을 해방, 남북연방제로 통일하자고 주장했다.
박용진 대변인은 1997년 권영길 대선후보 캠프에서 정치활동을 시작, 2000년 민주노동당(민노당) 창당에 참여했다. 2001년 3월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민중대회 연설로 구속되어 2년여 동안 감옥살이를 했으며, 이후 민노당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조직된 左派세력 통합 추진모임인 ‘혁신과 통합’에 2011년 합류, 상임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변신을 시도했다. 이후 그는 ‘혁신과 통합’이 舊민주당과의 합당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시민통합당의 지도위원으로 민주당에 합류했다. 2012년 1.15전당대회에 출마해 민주당 지도부 입성을 시도했으나 낙선, 같은 해 3월 黨 대변인이 됐다.
朴 대변인의 홈페이지(http://www.parkyongjin.com/161)에는 민주당 前 대표인 한명숙 의원이 그를 칭찬하는 글이 게재되어 있다. 韓 의원은 <한명숙이 기호 5번 박용진 후보를 칭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朴 대변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민주노동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깔끔한 일처리와 촌철살인의 논평으로 돋보이는 활동을 이어나갈 때, 탐나는 젊은 일꾼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학생운동 이후 항상 진보적 가치를 견지하며 사회운동 노동운동에 앞장서는 모습은 젊은 운동가들에게 귀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朴 대변인은 6.25전쟁영웅인 백선엽 장군을 “민족의 반역자”로 폄하했던 민주당 김광진 의원의 국정감사 발언에 대해 2012년 10월30일 트위터를 통해 “기죽지 마라, 김광진! 당신 잘못은 친일파를 친일파라 했을 뿐”이라며 적극 옹호했다.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