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머신 같은 기계 위에서 시속 220㎞로 달리는 자동차의 후드 위에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놓은
샴페인 잔 15개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미국에서 내보낸 렉서스 광고 내용이다.
믿기 어려운 장면이지만 조작이 아니라 실제 실험 결과다. 도요타가 렉서스 출시와 함께
단숨에 최고급 승용차 시장의 강자로 올라선 것은 기술력에서 경쟁업체들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 그런 렉서스도 일본 시장에선 고전을 면치 못했다. 렉서스는 1989년 미국에서 먼저 선을 보였다.
도요타는 렉서스가 세계적인 고급 승용차로 자리를 굳힌 뒤인
2005년 여름 뒤늦게 일본 시판에 나섰다. 그러나 출시 첫해 판매량은 목표치 2만대의 절반에 머물렀고,
2006년에도 벤츠나 BMW보다 적은 3만대에 그쳤다.
렉서스가 해외시장에서 철저한 검증을 받고 성공했음에도 일본 소비자들은 선뜻 마음을 열지 않았다.
▶ 일본 자동차 시장은 흔히 외국차의 '무덤'으로 불린다.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자동차 시장이지만 외국차 점유율은 4~5%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본 국내 업체들이 마음 편하게 장사하는 것도 아니다.
렉서스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국내시장 점유율 45%가 넘는 최대 자동차업체 도요타도
요구 수준이 높고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들의 구미를 맞추는 데 애를 먹는다.
▶ 현대차가 연말까지 일본 승용차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2001년 일본 시장 진출 이후 8년 만이다.
현대차의 일본 판매량은 2004년 2574대를 정점으로 2005년 2295대, 2006년 1651대, 2007년 1223대로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올해도 10월까지 판매량이 764대에 지나지 않는다. 한 해 20여만대 수준인 일본 수입차 시장에서 현대차 비중은 1%도 안 된다. 전 차종 10년·10만㎞ 보증 등 안간힘을 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 현대차의 부진은 결국 품질, 가격, 기술력에서 일본 소비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골목길이 많고 주차장이 협소한 일본 특성에 맞는 소형차와 경차를 내놓지 못한 탓이 크다.
작년 금융위기 이후 일본 자동차업계가 엔고(高)로 고전하는 동안 현대차는 사상 최대 이익을 내며
선전해왔다. '일본 업체들이 현대차의 위협에 떨고 있다'는 식의 해외 언론 보도가 잇따르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차 일본 시장 철수는 한국차가 일본차를 따라가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고개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김기천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