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유럽 아프리카

남프랑스 코트다쥐르 지방의 보석

鶴山 徐 仁 2009. 10. 26. 11:17

ㆍ남프랑스 코트다쥐르 지방의 보석

미술평론가 이재언이 보내온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사진을 받아본 뒤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니스를 돌아본 그의 기행문은 어느 때보다 촉촉하고 감성적이다. 바로 함께한 아내와 딸 덕분이 아닐까. (편집자 주)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짙푸른 하늘, 남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지중해, 평화로움과 안락함이 느껴지는 붉은 기와집, 풍요로워 보이는 아름드리 열대수들과 형형색색의 꽃들, 이글거리면서도 쾌적함을 주는 한낮의 태양…. 이 모든 것으로도 모자라 날씨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지중해의 여름 날씨다. 남프랑스의 바닷가에 오면 모든 시름을 다 잊는다.

장 콕토의 그림을 직접 만나다

학창 때 뜻도 모르면서 멜로디를 흥얼거리곤 했던 칸초네 명곡들의 고향, 산레모의 아름다운 경치와 맑은 공기를 즐기며 달리던 자동차가 그리말디를 거쳐 어느새 프랑스 망통에 다다랐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아무런 절차도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우리에겐 적잖이 흥미로운 경험이다. 아침 일찍 밀라노에서 렌트해 몰기 시작한 자동차로 남프랑스의 환상적인 바다를 꿈꾸며 한나절을 꼬박 달리다가 산레모를 거쳐 드디어 망통에 도착한 것이다. 산록에 얹혀 바다를 바라보는 주황빛 지붕들의 구성이 매혹적인 리구리아 해안 도시들의 공통점을 그대로 간직한 망통은 그 어느 곳보다 수려하고 세련됐다.

해변 요새를 개조한 장 콕토 미술관.

우리에게 망통은 지중해의 유명 휴양지라거나 장 콕토의 시와 그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에 앞서 보다 각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우리 화단의 거목 남관(南寬)이 1966년 피카소, 타피에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가운데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 '망통 비엔날레'의 도시로 기억된다. 그곳에서 당시의 그런 기록이나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으면 얼마나 반가울까 하고 내심 기대를 했다. 망통 비엔날레가 언제 종료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난 10~20년 사이 들어본 바가 없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열리지 않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남프랑스의 해안 도시들은 역사적으로 예술의 거장들과 인연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그곳에서 개최하는 예술 행사들은 대부분 흥행 면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던 것 같다.

장 콕토 미술관 근처에 정차해 자전거를 꺼낸 뒤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1시간 후 장 콕토 미술관에서 만나기로 하고 난 자전거에 몸을 싣고 시청사를 향해 내달았다. 시, 미술, 영화 등 다방면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장 콕토가 시청사 결혼식장을 꾸민 모습을 보고 싶어서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천재 예술가 장 콕토의 감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언젠가는 연인에게 가장 귀한 존재가 될 수 없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고민.' 결혼식장을 꾸미는 순간에도 자신의 시(사랑) 구절과 같은 탄식을 했던 것일까.

명사를 낳은 어느 도시나 그렇지만 망통 역시 장 콕토와의 인연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조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밉지 않아 보인다. 그러한 좋은 문화자산이 있는데도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溯?후 가족과 만나기로 한 장 콕토 미술관에 다다랐다. 항구와 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요새를 미술관으로 개조한 것으로 앙티브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과도 분위기가 닮은 데가 많다. 일찍이 지난 세기 초 파리에서 피카소 등의 예술가들과 교우했으며, 그림 재능은 오히려 피카소의 질투를 사기까지 했단다. 천재적 재능에 미남형이기까지 했으니, 그의 삶 자체가 언제나 파리 예술계의 화젯거리였을 것은 당연하다. 그림과 조각 등이 입체파 양식으로 제작됐는데 정말이지 상상력 면에서는 오히려 피카소를 능가할 만한 재능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그에게 팔방미인의 재능을 준 신도 심오한 예술 세계까지는 허용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많은 예술가의 사랑을 받은 곳, 니스

오후 4시경, 다시 차를 몰아 니스를 향해 달렸다. 말이 달리는 것이지 2차선 국도는 가는 곳마다 붐볐다. 니스로 가는 길에 모나코 몬테카를로는 으레 들르는 곳이지만 주마간산 격으로 차에서 풍경만 보며 지나쳤다. 그곳보다는 '에즈'에서의 시간이 더 소중할 것 같아서였다. 그곳에 가면 철학자 니체의 자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니스로 가는 길에 몬테카를로를 지나다 보면 바닷가에 유난히 높이 솟은 봉우리가 하나 보이는데, 제비집처럼 벼랑에 지어진 요새화된 마을이 있다. 멀쩡한 평지를 두고 400m가 넘는 비탈진 봉우리에 마을이 형성된 상세한 사연은 알 길이 없다. 다만 피난처 목적이 분명해 보이는데, 고풍스러운 요새 마을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바로 그곳에서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집필의 영감을 얻고, 일부 집필을 했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나이 서른의 초인이 입산했다는 차라투스트라 서곡 첫 구절도 바로 이 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아니었을까. 니체가 산책을 즐겼다는 가파른 산책로, 그리고 높은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의 모습은 코트다쥐르에서도 으뜸가는 절경이다. 19세기 최대의 철학자, 디오니소스에 대한 독창적 해석으로 21세기 들어 그 위대함이 더 돋보이는 니체를 여행 중에 떠올릴 줄은 몰랐다.

그로부터 불과 8km 남짓 더 가니 내비게이션은 이미 니스에 당도했음을 알렸다. 숙소는 니스를 내려다볼 수 있는 몽브롱 언덕에 있는 호스텔이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바로 몽브롱 정상으로 달려가니 거대한 요새가 버티고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니스의 바다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호스텔에서 만난 캐나다 꼬마 아이 하나가 영어로 '나이스'라 읽는 것을 보았다. 정말이지 니스(NICE)는 군말이 필요 없는 '나이스한 곳'이다.

니스에서는 2박이 예정되어 있다. 유명한 미술관이 즐비한 니스를 이틀 동안 둘러보기는 쉽지 않은 일정이다. 피카소, 샤갈, 마티스, 레제, 르누아르 등의 거장들이 니스와 인연을 맺어 미술관이나 기념관이 워낙 많다. 바다로 유명한 세계적 휴양도시, 고대 로마의 식민지이자 주둔지로서 수많은 유적이 묻혀 있는 곳, 그러면서도 많은 예술가에게 사랑받고 또 영감을 주는 곳이 니스다.

호스텔에서 간단히 취사를 해 식사를 마친 후, 시내 지도를 챙겨 바람을 쐬러 나갔다. 마침 호스텔 바로 앞에 시내와 맞닿은 해수욕장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 아내와 딸은 그 버스를 타고 가고, 나는 자전거로 출발했다. 마세나 광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몽브롱에서부터 신나는 내리막길 질주를 하니 종일 자동차 운전으로 시달려 저려오는 온몸의 근육들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세상 모든 시름을 잊은 듯한 사람들

니스 현대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광장이 하나 나오는데, 지도에서는 이름을 찾을 수 없는 광장이었다. 광장 중앙에 가리발디 동상이 서 있었다. 가리발디라면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인데 그의 동상이 프랑스 땅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묘하게도 가리발디가 니스 태생이라 한다. 남의 나라지만 근대사의 위인을 배출했다는 것에 대해 일말의 자부심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니스에 많이 거주하는 이탈리아계 주민들이 그 뜻을 기리기로 뜻을 모은 것일까.

그 광장에서 불과 몇 걸음만 옮기면 니스 현대미술관이 보인다. 이미 문이 닫혔기 때문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건물이 특이해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며 살펴보았다. 미술관 건물은 묘하게도 도로를 가로지르며 대칭 구조로 지어졌다. 건물 가운데로 도로가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소음을 가급적 피하는 것이 미술관 건축의 상식일 텐데 오히려 역발상의 묘를 발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들러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일정이 쉽게 따라주지를 않았다.

드디어 칸까지 끝없이 펼쳐진 해변에 도착했다. 마세나 광장에서 들려오는 밴드 음악은 바닷가의 흥취를 더했다. 일몰의 비경을 보려고 모인 선남선녀의 잘 그을린 얼굴들에 비치는 붉은 노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보이게 한다. 행복감에 젖어 있는 수없이 많은 사람의 얼굴을 보노라니 나의 시름도 사라져간다. 사람의 얼굴이 이렇게 좋은 구경거리인지는 미처 몰랐다. 어둠이 찾아오지만 어느 누구도 꿈결같이 달콤한 그곳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떠올린다. '니스'는 '나이스한 곳'이라고….

다음날 아침, 아내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보호를 받으며, 비오의 레제 미술관, 카뉴쉬르메르의 르누아르 아틀리에, 앙티브의 피카소 미술관, 니스 시내에 있는 샤갈의 성서 미술관, 마티스 미술관 등을 관람할 수 있었다. 하루에 다섯 개 이상의 미술관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강행군이다. 그것도 한 군데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멀게는 20km 이상 이동해야 하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해변의 산책로를 달릴 수 있는 그 여정은 마냥 행복한 시간이다. 니스의 마지막 밤 풍경을 렌즈에 담기 위해 찾은 몽브롱 언덕에는 연인들의 달콤한 속삭임이 바닷바람을 타고 맴돌고 있다. 보석을 뿌려놓은 듯한 니스의 야경. 이젠 나도 니스를 나이스로 부르는 데 익숙하다.

필자 이재언은
1958년생. 강원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상명대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선갤러리 아트디렉터 및 한국공예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1989년부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는 한편 2006년부터 인천-서울, 일산-서울 장거리 '자전거 출근'과 함께 자전거 문화와 미술을 접목한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해오고 있다. 역서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책세상)

■글 & 사진 / 이재언(미술평론가) ■취재 협조 / 울프 라운치(WOLF LAUNCH)


[레이디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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