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가 (Edgar Degas 1834∼1917)
파리 출생. 부유한 은행가 집안의 장남으로,
처음에는 가업을 계승하기 위하여 법률을 배웠으나,
화가를 지망하여 1855년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거기서 J.A.D.앵그르의 제자 L.라모트에게 사사(師事)했고,
앵그르로부터도 직접 가르침을 받아, 평생토록
이 고전파의 거장에 대한 경의를 품게 되었다.
1856∼1860년에 나폴리 등 이탈리아 여러 곳을 여행, 르네상스 미술에 심취했다.
드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초기부터의 스케치북을 남기고 있는데,
이 작품들을 통해서 보면 그가 받은 영향은 르네상스나 앵그르의 고전주의적
경향뿐만 아니라 F. 들라크루아·H. 도미에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다.
그는 경마·오케스트라·발레 등의 주제를 동물·인체의 움직임이나
전경·후경을 대비시키는 색다른 구도와 대상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점 등 그 당시 유행한 풍속판화에서 익힌
기법을 구사해 참신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1860년대 말부터 마네, 세잔등 인상파 화가들과도 교류하였으나
드가 자신은 인상파 예술의 중심적 방법인 옥외의 햇빛 아래에서
대상을 직접 잡아가는 제작방법을 취하지 않고,
늘 아틀리에에서 구성, 제작하고 풍경화도 기억이나
상상력 외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인상파전이라 불린 그룹전을 높이 평가하고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인상파전에 제7회를 제외한 8회
그룹전까지 참가했으나 그 후로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1880년대부터는 위의 주제 외에 나부(裸婦)의 다양한 포즈며
무희의 군상을 이룬 동작 등을 주목한 작품을 제작했다.
말년에는 눈병을 앓아 거의 실명에 이르렀으나 파스텔·조각 등을 계속 제작하였다.
파리 인상파미술관에 소장된 대표작 '압생트'(1876) '대야'(1886)를 비롯하여
3명의 무희(1873), 개의 노래(1875∼76), 두사람의 세탁녀(1876∼78)등
많은 작품과 파스텔, 판화등 시력이 극도로 떨어진 뒤에 손댄 조각에까지
더없는 걸작을 만들어 냈다.
괴팍하고 고집이 세지만 총명하고 순수한 인격이었다고 발레리는 전한다.
자의식(自意識)이 강한 성격 때문에 독신으로 보냈고, 그의 인간 혐오증은
늙어갈수록 더하여 고독한 가운데 파리에서 83년의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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