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우리나라 畵壇

혜원 신윤복(申潤福)

鶴山 徐 仁 2008. 11. 14. 14:30

작가 : 신윤복(申潤福)
아호 : 혜원(蕙園)
제목 : 쌍검대무(雙劍對舞)
언제 : 18세기 중엽 ~ 19세기 초
재료 : 화첩 종이에 채색
규격 : 28.2 x 35.3cm
소장 : 간송미술관

해설 : 신윤복은 자를 입부(笠父), 호를 혜원(蕙園)이라 하며. 화원으로서 첨사(僉使)를 지냈다. 檀園 金弘道와 더불어 조선 후기의 풍속화를 대성시킨 인물로. 특히 기녀(妓女)와 한량 등을 등장시키고 남녀간의 애정을 곧잘 소재로 택하여. 섬세하고 세련된 필치로 능숙하게 묘사하였다. 이 그림은 세력있는 귀족이 장악원(掌樂院)의 악공(樂工)들과 가무(歌舞)에 능한 기생을 불러다가 즐기는 장면이다. 악공과 기생의 수로 보아 이 놀이가 보통 규모는 아닌데. 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오직 주인대감과 그의 자제낭관(子弟廊官)인 듯하니, 일가의 세도가 어지간한 모양이다. 혹시 혜원 신윤복을 키워준 어느 풍류 재상집에서의 한때인지도 모르겠다. 화면구성에 있어서 일체의 배경을 무시하고 검무하는 장면만가득채운 대담성을 보였으나. 주제표현에 조금도 군색함이 나타나지 않으나. 이는 인물의 포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시각의 초점이 되는 검무기생들은. 의상에서 청홍의 강렬한 대조를 보이면서 화면을 압도하는데. 주인을 비롯한 관객들과 악공들이 이를 중심으로 포열(布列)함으로서 화면의 비중은 평형을 이룬다. 그런데 검무기생의 날렵한 동작에서 오는 율동감은, 관객들의 도취된 몸짓과 악공들의 신바람나는 연주에 혼연일치를 보여 아연 활기를 띤다. 이렇게 놀이에 참석한 인물들의 심리를 꿰뚫어 순간적인 동작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 놓을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화가의 예리한 안목이라 하더라도 그리 쉽지않을 일이다. 따라서 작가 신윤복이 이런 세계에 얼마나 익숙하였던가를 짐작할수 있는데. 인물들이 하나같이 극도로 세련된 차림을 보이는 것도 그의 주변을 보는듯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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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신윤복(申潤福)
아호 : 혜원(蕙園)
제목 : 청금상련(聽琴賞蓮)
언제 : 18세기 중엽 ~ 19세기 초
재료 : 화첩 종이에 채색
규격 : 28.2 x 35.3cm
소장 : 간송미술관

해설 : 후원에 연당(蓮塘)이 있고, 고목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며, 잔디가 가득 깔린 크나큰 저택을 가진 주인이, 연꽃이 필무렵에 맘에 맞는 친구들을 청하여, 연꽃감상의 즐거움을 함께하는 모양이다. 연당을 거치는 선들바람이 청향(淸香)을 실어오고. 가야금의 청아한 선율이 이 위에 어리는데. 의관을 파탈할 정도로 자유롭게 연꽃과 여인을 즐기고 있다. 이렇게 격의없이 놀수 있는 사이라면 어지간히 무던한 사이일 것이고. 의복 차림으로 보면 벌써 당상(堂上)의 품계를 넘어 있어서. 나이도 그리 젊지는 않을 듯 하니 정말 허물없는 오랜친구들인 모양이다. 모두들 준수하게 빼어났지만 차림새가 빈틈없이 세련되어 귀족의 몸에 밴 기품을 대하는 듯하다. 이는 화원이었던 혜원 신윤복이, 궁정 주변에서 이들 귀족생활을 남김없이 눈에 익히고 살아온 때문에. 그 진면목을 이와 같이 실감나게 표현할수 있었을 것이다. 가리마를 쓴 기생의 모습에서나 갓끈을 귀밑에 잡아 맨 귀인의 관(冠)차림에서 당시의 남녀관식(冠飾)을 알수 있으며. 운치있게 둘러진 석축과 고목의 표현에서는 왕조시대의 격조높은 조원(造園)환경을 실감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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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신윤복(申潤福)
아호 : 혜원(蕙園)
제목 : 월야밀회(月夜密會)
언제 : 18세기 중엽 ~ 19세기 초
재료 : 화첩 종이에 채색
규격 : 28.2 x 35.3cm
소장 : 간송미술관

해설 : 장안의 인적이 끊어지고 보름달만 휘영청 밝게 비치는 야밤중에. 골목길 후미진 담그늘 아래에서. 남녀가 어우러져 깊은 정을 나누고 있다. 남자의 차림새가 전립(氈笠)을 쓰고, 전복(戰服)에 남전대(藍纏帶)을 매었으며. 지휘봉 비슷한 방망이를 들었으니, 어느 영문(營門)의 장교일시 분명한데. 이렇듯 노상에서 체면없이 여인에게 허겁지겁하는 것은, 필시 잠깐밖에는 만나볼수 없는 사이인 때문일 것이다.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버린 옛 정인(情人)을 연연히 못 잊어, 줄이 닿을 만한 여인에게 구구히 사정하여 겨우 불러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지만. 여기서 이렇게 다시 헤어져야만 하는 듯하다. 이쪽 담모퉁이를 도는 곳에 비켜서서, 동정어린 눈길로 이들을 지켜보는 여인은, 밀회를 성사시킨 장본인인 것 같다. 차림새가 여염의 여인은 아닌듯 하여, 장교를 만나고 있는 여자의 전력(前歷)도 대강 짐작이 간다. 조선시대의 화류계를 주름답던 사람들이, 대개 각영문의 군교(軍校)나 무예청(武藝廳)의 별감(別監)같은 하급 무관들로서, 이들이 기생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을 상기할 때. 군교 차림의 이런 애틋한 밀회는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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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신윤복(申潤福)
아호 : 혜원(蕙園)
제목 : 연소답청(年少踏靑)
언제 : 18세기 중엽 ~ 19세기 초
재료 : 화첩 종이에 채색
규격 : 28.2 x 35.3cm
소장 : 간송미술관

해설 : 조선조의 후기문화가 황금기를 이루고 있던 시대에. 서울 장안의 귀족생활은 아마 가장 호사가 극치를 이루었을 것이다. 따라서 귀문(貴門)자제들의 행락도 어지간히 극성스러웠을 듯한데. 이 그림은 그 시대를 산 신윤복의 붓을 통하여 그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수 있겠다. 진달래꽃 피는 봄철이 되자 협기 만만한 반가(班家)의 자제들이 장안의 기녀들을 대동하고 간화답청(看花踏靑)의 봄나들이에 나섰는데. 이들의 옷차림은 장안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멋을 부리고 있다. 보라색과 옥색 천으로 발 굵게 누빈 저고리에 향낭(香囊)을 달아 차고, 홍록의 갖은 주머니를 긴 띠매어 치레하며. 행전은 짧게 치고, 중치막의 앞 두 폭을 뒤로 잡아매어서 뒤폭만 꼬리로 늘이어 걸음마다 나풀거리게 하고 있다. 장안 명기들의 미태(美態)에 홀딱 빠진 양반자제들은 체면불구하고. 말탄 기생에게 시중드느라 담뱃불을 붙여 대령하며. 구종되기를 자원하여 갓을 벗어 마부 주고, 마부 벙거지를 제가 쓰고서 검은띠를 허벅대님으로 매고, 말고삐를 잡고있다. 한 친구는 시간에 늦었는지. 갓을 벗어 짊어지고 옷자락에 바람 일며, 동자 구종을 몰아 급히 달려오는데. 나귀탄 기생의 초록 장옷도 깃발처럼 나부낀다. 암벽에는 진달래나무인 듯 분홍꽃을 가득 피운 나무들이 군데군데 있고. 구름 같은 기생의 트레머리에도 그 꽃가지가 꽂혀있다. 물빛으로 갈라 놓은 삼거리 주변의 청태점(靑苔點)이 분분하여 답청이 실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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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신윤복(申潤福)
아호 : 혜원(蕙園)
제목 : 단오풍정(端午風情)
언제 : 18세기 중엽 ~ 19세기 초
재료 : 화첩 종이에 채색
규격 : 28.2 x 35.3cm
소장 : 간송미술관

해설 : 음력으로 5월 초닷샛날은 단오(端午)라 하여 중국에서는 한대(漢代)이래로 명절을 삼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부터 큰 명절의 하나로 지켜왔다. 이날이 되면 남자들은 씨름판을 별여서 힘내기를 하며 즐기고. 여인들은 창포물에 머리 감고 그네를 뛰며 노는 것이 우리네의 전래풍속이었다. 이 그림은 단오날 추천놀이를 나온 한떼의 여인네들이, 시냇가에 그네를 매고 냇물에 몸 씻으며. 즐기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지금의 정릉이나 성북동 골짜기는 물론이고. 삼청동이나 인왕산 계곡을 비롯하여. 남산이나 낙산주변의 여러 골짜기들이 모두 이런 놀이에 적합하였을 것이다. 인적이 끊긴 후미진 곳이기에 마음놓고 저고리를 훌훌벗어 던졌지만. 미처 산에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몰랐던가. 바위틈에 숨어든 상좌중 둘이서 기막힌 진경에 희희낙락 즐거워 어쩔줄을 모르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그래서 혜원은 짐짓 화면의 초점을 딴곳으로 옮기려고. 그네 뛰는 여인에게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히고, 머리손질을 하는 여인에게는 엄청나게 큰 트레머리를 모두 풀어 놓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네 뛰는 여인의 다홍치마에 반회장 노랑저고리만으로도, 지극히 선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백설 같은 속옷이 반 넘어 내보이는 것은, 반라의 여인들에게서 훨씬 더 짙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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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신윤복(申潤福)
아호 : 혜원(蕙園)
제목 : 주유청강(舟遊淸江)
언제 : 18세기 중엽 ~ 19세기 초
재료 : 화첩 종이에 채색
규격 : 28.2 x 35.3cm
소장 : 간송미술관

해설 : 왕도(王都)의 화려한 문물은 여유있는 귀족생활의 격조 놓은 운치에서 찾아볼수 있다. 녹음이 우거지고 강심에 훈풍이 일어나자, 몇몇 자제들이 한강에 놀이배를 띄우고 여가를 즐기는 것 같다. 외형적인 호사를 금기로 여기던 조선시대 귀족들이니, 호화선을 꾸밀 리 없고 다만 일엽편주에 차일을 드리우고, 풍류를 아는 기생들과 젓대잡이 총각 하나를 태웠을 뿐이다. 신록이 그늘진 절벽 밑을 감돌아 나가는 뱃전에서는, 유량한 생황소리와 동랑(洞朗)한 젓대소리가 섞바뀌어 일어나서 강심에 메아리 지고, 일렁이는 잔물결은 뱃전을 두드리니. 여기에 詩情이 흐르는 사랑이 무르익는다. 뱃전에 엎디어 스치는 물살에 손을 담가 보는 여인이나, 이를 정겹게 턱을 고이고 지켜보는 선비의 모습에서도 그렇거니와. 어깨를 감싸고 담뱃대를 물려주는 한쌍의 남녀에게서는, 시샘이 날 만큼 농밀한 사랑이 엿보인다. 이런 중에서도 남의 일에는 아랑곳없이 망연히 뒤짐지고, 시상에 잠기는 여유를보이는 것은 역시 왕조귀족의 몸에 밴 교양이라 할수 있겠는데, 삿대질에 열심인 뱃사공도 자기일에 충실하고 있어서. 음악을 연두주하는 두사람의 모습과 함께 질서있는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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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신윤복(申潤福)
아호 : 혜원(蕙園)
제목 : 미인도(美人圖)
언제 : 18세기 중엽 ~ 19세기 초
재료 : 족자 비단에 채색
규격 : 114.2 x 45.7cm
소장 : 간송미술관

해설 : 혜원 신윤복이 활동하던 시기는 조선 후기문화가 난숙기에 접어들면서 왕도귀족들이 향락적인 생활 분위기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그는 세습화원가문 출신으로 궁정귀족들과 연계된 생활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을 터이므로 그들의 취향과 속내를 속속들이 잘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언저리에 놀면서 여체미(女體美)에도 일가를 이룰 만큼 통달해 있었기에. 귀족들의 향락적인 감상안을 춘족시킬 수 있는 농도 짙은 여속도(女俗圖)를 타고난 예리한 솜씨를 발휘하여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남긴 여속도 중에서 이렇듯 한 인물을 대상으로 그려낸 것은 유일한 것이어서. 쥐면 부서질 듯한 이 그림의 주인공은 아마도 혜원의 사람이었던 듯하다. 깃과 고름. 곁바대는 자주빛으로 하고. 끝동만은 옥색 천을 대어 멋을 부린 회장저고리는. 당시 유행의 첨단이었을 것이고. 윗단을 잣주름으로 촘촘히 주름잡고 허리밑을 불룩 키워서 숨막힐 듯 잘록한 세요(細腰)와, 탐스러운 둔부를 강조한 스란치마와. 곁바대 밑으로 살짝흘린 연지빛 속고름도 일류 멋장이가 아니면 부릴수 없는 색태(色態)였을 것이다.삼단같이 윤기있는 커다란 트레머리를 귀밑머리 하늘거리는 갸날픈 목으로 다소곳이 받쳐이고, 옥색 끝동 밖으로 내민 상아빛 손으로는, 연자주빛 수마노 노리개와 진자주빛 고름을 수줍은듯 매만지며.옥색 스란치마 밖으로 외씨 같은 버선발을 상큼하니 내민 모습은, 장안 한량들의 애간장을 남김없이 녹여 내었을 것이다. 갸날픈 이목구비에서는 야산에 홀로 핀 제비꽃처럼 청초한 맛이 있는가 하면. 겨드랑이 밑으로 흘린 속고름과 치마 밖으로 살그머니 내어민 외씨버선은. 선정적인 요염미를 물씬 풍기고 있어. 관연 어째서 수많은 장안 여인중 유독 이 이인을 화폭에 남겨 놓았는지 수긍이 갈 만하다.


 
은행나무 침대 OST "Main Titles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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