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 해변
태양의 해안과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Málaga)
오후 7시30분에 도착한 말라가(Málaga)는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 즉, 태양의 해안 의 중심도시이다. 태양의 해안이란 스페인의 남부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지중해 연안으로 그라나다 남부의 모토릴(Motoril)에서 지브롤터 해협의 타리파(Tarifa)까지 약 300km에 이르는 해안선을 말한다.
이 곳은 기후가 온화하고 맑은 날이 많은 지중해성 기후로 1년 내내 남국의 태양이 내려 쪼이고 있어서 해수욕이 가능하여 유럽의 피한과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햇빛을 보기 어려운 북유럽 사람들의 동경의 땅이기도 하다.
그 중심도인 말라가는 BC 12세기에 페니키아 사람들이 세운 곳으로 시가지 북동쪽 언덕 위에는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요새가 있는데 이슬람교도의 성채인 알카사바의 폐허까지 이어져있다.
시가지에는 16세기에 지은 르네상스 양식의 대성당이 있고, 근교에서는 오렌지·레몬 등의 열대과일과 특산품인 포도가 많이 생산되어서 건포도와·말라가 술로 유명한 도시이다.
프랑코 총독은 1960년대부터 외국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이곳에 공항을 건설하고 호텔을 지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곳이 가장 많은 외국인들이 와서 즐기다 가는 곳이 되었지만 아직은 철이 일러서 그런지 호텔만 붐빌 뿐이고 바닷가는 비교적 한산하다.
바닷가 사장을 걷는다. 새카만 모래밭에는 지중해의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고 갈매기들이 하늘에서 한가롭게 춤을 추고 있다.
조약돌을 줍는다. 지중해 바닷가 검은 사장에 늘려있는 하얀 조약돌은 참으로 예쁘다. 조개껍질도 줍는다. 오래전에 살다간 조개의 껍데기가 파도에 깎인 것이 백옥처럼 빛이 난다.
키가 큰 야지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바닷가에는 군데군데 방갈로와 노천카페가 자리하고 있고 거기에는 북유럽에서 휴양 온 사람들이 모여앉아 환담을 나누고 있다. 저만치 바다위에는 젊은이들이 윈드서핑을 즐기고 있고, 참으로 평화로운 해안풍경이다.
유럽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이곳 해변에는 산책을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거리는 활기가 넘쳐흐르고 있다. 작열하는 태양아래서 팬티를 입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젊음이 그를 수없이 부럽다.
게르니카
그리고 이곳은 P. 피카소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 말라가 출생의 피카소는 회화뿐 아니라 조각,·석판화,·도자기,·소묘,·무대장치,·벽화,·태피스트리 등도 제작하였으며 미술사상 작품 제작양이 가장 많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세기 조형에 가장 큰 변혁을 일으켰던 입체파의 창시자이며, 양식은 사실주의에서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다. 그의 회화역사는 기법과 주제가 다양하게 변화하며, 그 주제의 중심은 전쟁과 사랑·빈곤과 절망·노여움과 기쁨·사랑과 성(性) 등이었다.
그는 독일 공군에 의한 바스크 지방 게르니카의 폭격을 그린 대작 《게르니카(1937)》로 절정에 이르렀으며, 1930년대 유럽의 불안과 전쟁에 대한 노여움을 표현하였다. 제2차세계대전중 파리에 머물렀고, 파리 해방 뒤 공산당에 입당하여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학살
2차대전 후에는 도자기를 많이 제작하였으며 만년에도 판화 등을 포함해 하루에 여러 점을 제작하는 다작을 보였다. 또 그는 6·25를 주제로 한 《학살(1951)》, 발로리스성당의 《전쟁과 평화(1952)》, 유채·판화를 포함하여 <화가와 모델> 연작 등 약 5만 여점의 작품을 남겼으며 바르셀로나와 남 프랑스 앙티브에는 피카소미술관이 있다
바닷가 사장을 거닐면서 혼자 낭만을 즐기고 있는데 비스가 출발 신호를 보낸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곳에 온 기념으로 피카소의 도자기랑 그림을 샀는데 나만 바닷가를 거닐면서 낭만을 줍고 있었다.
피카소의 고향에 온 기념으로 피카소의 복사그림이라도 한점 사야 했는데 참으로 아쉽다. 하지만 이번여행의 종착점이 피카소가 말년에 작품 활동을 하던 바르셀로나이고 보니 그곳에 가면 그의 작품을 사겠노라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해본다.
말라가 근교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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