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죽서문화제를 통해 선보이는 남근깎기대회는
삼척시 근덕면 신남리 해신당제에 그 근원을 두고있다.
남근(男根)은 무속과 민속신앙의 대상이 되어 생식과 풍요를 상징한다.
삼척 신남리는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남근 봉헌제를 올리는 곳이다.
주민들은 사백여년 전부터 해마다 정월보름 해신당의 처녀신에게
나무로 깎아 만든 남근을 바쳐왔다.
삼척시내에서 남쪽 울진방향으로 30분 정도 내려가면
신남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 있는 해산이라는 山에 해신당 (또는 해랑당)이 있는데,
해마다 정월 대보름과 시월 첫 축일 (丑日)에 치성을 올린다.
이 해신당에는 총각 처녀의 애틋한 전설이 서려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전 조선왕조 제14대 선조 무렵,
임진왜란의 병화가 이 땅을 할퀴고 지나간 후라서
조선의 산천은 헐벗고 굶주림으로 가득 찼다.
이때 신남리 마을에 아름다운 한 처녀는
혼례를 올릴 나이였지만 속절없이 노처녀가 되었다.
이웃집의 건장한 총각과 눈만 맞추고 지냈다.
이른 봄날 처녀는 총각에게 애바위에 미역을 따러 가려고하니
배로 실어다 달라고 부탁했다.
총각은 애바위에 처녀를 실어다 주고
한낮이 되면 데리러 다시 오기로 약속을 했다.
해가 중천에 솟았을 때,갑자기 바람이 거칠어 지면서
풍랑이 크게 일어 총각은 도저히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한낮이 지나고 저녁이 지나고 밤이 왔다.
풍랑은 그치지 않았고, 허기와 추위에 지친 처녀는
마침내 파도에 휩쓸려 갔다.
처녀가 애바위에서 죽은 후부터
신남리 마을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가던 마을에
고기가 잡히지 않는 것은 참으로 큰 변괴가 아닐 수 없었다.
바다에 나간 어부들도 풍랑을 만나 돌아 오지 못하는
괴변도 자주 생겨 동네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총각의 꿈에 처녀가 나타나
원혼을 달래 달라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총각은 해산에 있는 향나무 가지에 남근을 큼지막하게 깎아 매달고
처녀의 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렸다.
신기하게도 그 후부터 총각은 배를 타고 나갈때마다
고기가 무진장 잡혔다.
그러나 여전히 고기가 잡히지 않고 있던 동네 사람들이
총각에게 그 연유를 물어 본 다음,
너도 나도 남근을 깎아 매달고 제사를 올렸다.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에게도 고기가 잘 잡혔다.
마을 사람들은 의논하여 음력 정월 대보름과 시월 초축일에
공동으로 남근을 깎아 해신당 신목에 매달고 치성을 올리게 되었다.
그 후부터 신남리 마을의 해신당제사는 마을의 큰 연중행사가 되었다.
해신당 안에는 처녀의 신위가 모셔져 있고
그 옆에 큰 향나무가 있는데,
해마다 주민들이 향나무 가지로
여러개의 남근을 깎아 매달고 제를 올리고 있다.
정월 대보름에 제를 올리는 것은
한해의 풍어와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이고,
시월 초축일에 제를 올리는 것은
이때가 숫말의 정력이 가장 왕성해지는 시기를 고려하여
십이간지에 말이 없는지라,
말과 유사한 소(丑)를 지목하여
일진에 丑(소)자가 가장 먼저 오는 날에 제사를 지내,
처녀의 원혼을 달래려고 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1998년 죽서문화제부터 남근깎기 행사가 실시되고 있다.
(자료제공: 삼척시청 공보실 김태수 씨)
(작품전시 장소안내 - 삼척시 근덕면 신남리 해신당 앞)
(1999년 대상작품 환희 (金海一 作) - 자료출처 : 강원도민일보)
(1999년 수로부인상 - 자료출처 : 강원도민일보)
(1999년 감투상 - 자료출처 : 강원도민일보)
(1999년 소복상 - 자료출처 : 강원도민일보)
(자연의 신비 - 백령동굴 : 男根石 - 자료출처 : 강원도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