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구원얻는 믿음 외 3

鶴山 徐 仁 2016. 5. 25. 14:40
5월 24일 (화)
구원얻는 믿음 약 2:17-24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짝사랑이 실패하는 이유는 적극적인 표현과 고백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랑은 표현될 때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말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냄으로 표현하셨고, 십자가를 죽으심으로 그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 사랑에 감사하고 고백하며 표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도 행함으로 표현되어야 진짜 믿음입니다(14-20).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고, 가짜이며, 아무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지만, 살아있는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따르고, 사랑의 수고와 함께 역사하는 일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라면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 성장하며 성숙한 행동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성경의 두 인물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21-23). 인간적 관점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식을 죽이려는 것은 망령된 모습이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아름다운 행위로 받으셨으며,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시면서 기쁘게 받아 주셨습니다(창22:9).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도 정탐꾼들을 보호해 주는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됩니다. 상식적으로는 동족을 배신하는 행위였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믿음이 없으면 행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 결과로 가족의 구원과 함께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으면 헛일과 허송세월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치 기준과 관점을 이해하고 잘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며 성령의 이끄심과 다스림 가운데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이 행해야 될 모습이 무엇일까요?(15-16). 야고보 기자는 이웃이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말로만 걱정해주고 쓸 것을 주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관심을 갖는다면 아픔과 고통으로 신음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칭찬과 격려가 필요한 자에게 따뜻한 말로 위로해 주며, 실질적 도움으로 선을 베풀어 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하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고, 자전거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한 바퀴가 움직일 때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믿음이 있을 때 행함도 같이 일어납니다. 믿음은 행함의 근거가 되고, 행함이 믿음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은 나무와 같고, 행위는 그 나무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온전한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은 신분과 지위가 극단적인 대상이지만, 공통점은 믿음이 행함으로 입증되었고, 하나님이 그것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각자 위치에서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행함으로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게 되시기 바랍니다.

 
   
   
 

- 나의 믿음은 지식적인 믿음인지, 구원 얻는 믿음인지 점검해 봅시다.
- 나의 가치 기준과 하나님의 가치기준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정리해 봅시다.
- 최근 이웃을 생각하고 함께 나눈 일들을 점검해 보고 주님 앞에 결단합시다.

 
   
   
 

영광의 주 하나님, 믿음을 주셔서 주님을 고백하게 하시어 자녀 삼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믿음의 사람답게 이웃을 향한 선행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이 되기 원합니다. 상식에 의존하는 삶에서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제대로 된 설교자라면

예수 믿으면 어거스틴의 말대로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신자 안에 거듭난 생명과 성품, 그리고 성령이 내주하기에
죄를 이길 수 있는 충분한 은혜와 가능성이 있다.
제대로 성경과 신학을 공부한 설교자라면
그리스도 안의 풍성한 은혜와 능력을 의존해서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라고 항상 말해야한다.
신자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패배주의를 조장하는 설교를 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의 은혜의 풍성을 무시하고 값싸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설교자라면 그렇게 어리석게 설교하지 않아야한다 .
-박영돈 목사의 ‘패배주의와 승리주의 사이에서’에서-

 
     
 
   
 


설교자는 은혜의 충족성과 함께
성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신자의 연약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거듭난 신자라 할지라도 죄를 이길 수 있는
충분한 자유와 은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헛되게 함으로
자주 쓰러지는 신자의 현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화는 이미와 아직도의 구도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는
이미 죄에서 자유 했고 죄를 이길 수 있지만
아직도 완전 성화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신자의 탄식과 회개의 눈물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For I know the plans I have for you," declares the LORD, "plans to prosper you and not to harm you, plans to give you hope and a future.

 
       
 
   
  비전교회 채이석 목사
  비전교회 채이석 목사
   
   



5월 23일 (월)
가정, 넘치는 행복 잠언 15:13-17
   
 

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14.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15.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현대인들은 행복한 삶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된 행복이 무엇이며, 어디로부터 오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만드신 기관은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행복하지 못하다면 어디에 서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온 가족이 화목하고 행복하면 자연적으로 행복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은 행복의 근원지요, ‘행복 발전소’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창조해야 합니다. 호시탐탐 가정의 행복을 허무는 사탄으로부터 가정을 지키기 위해 깨어 기도하고 믿음으로 싸워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아내야 합니다(아가2:15). 행복이 넘치는 가정을 세워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봅시다.
먼저 가족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13). 13절에서는 마음이 두 번이나 언급되어 있고, 오늘 본문의 다른 구절에서도 마음은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가족들의 마음의 상태가 가정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알 수 있습니다. 가족들은 서로의 약점은 이해해주고, 장점은 지속적으로 칭찬하고 격려해주어야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그렇지 않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며 극단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심령을 상하게 하여 영혼과 정신세계를 피폐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서로를 잘 아는 가족들이 서로 선하고 지혜로운 말을 주고받으면 삶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을 풍요롭게 하여 행복을 창조하게 되는 것입니다(잠16:24). 그러한 가정은 항상 잔치집 같은 즐거움과 행복이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15).
또한 가족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야 합니다(16). 가정의 행복은 소유에, 명예에 혹은 권력에 있지 않습니다. 가족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자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 결과 높은 자존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열등감이 있는 가족이 있다면 예수님 안에서 서로 돕고 높여주어야 합니다. 가족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면 강력한 믿음과 희망과 비전이 생기게 되어 열등감을 털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가족들이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능력 있는 멋진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내 삶에 간섭하시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나를 보면 연약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그 분 안에서 나와 가족들을 바라본다면 이 시대와 역사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 간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17). 오늘날 많은 가정들이 왜 화목하지 못합니까? 물질이 적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으로도 화목할 수 있습니다(잠17:1) 문제는 대화의 빈곤과 단절 때문입니다. 우리는 각자 너무 바쁘고 피곤하게 살아갑니다. 집에 와서도 TV나 스마트폰에 시선과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래서 가족임에도 서로의 사정에 대해 잘 모르고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현실입니다.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대화를 시작할 때 사랑이 시작됩니다. 가족들 간에 참된 사랑으로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이 가정을 화목하게 만드는 비결입니다. 행복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발전소가 멈춰있다면 연료를 투입하고 다시 가동해야합니다. 그래야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행복발전소인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 있어야 할 행복의 불이 꺼져 있다면 중단되어 있는 행복발전소를 재가동하고 풀가동해야 합니다. 그러면 부정적인 환경이 바뀌게 되고 가족 모두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나의 가정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점검해 봅시다.
- 가족의 마음이 즐겁기 위해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언어를 하면 좋을까요?
- 나의 가족들이 주님을 경외하기 위해 지금부터 기도하기로 결단하십시다.

 
   
   
 

가정을 허락하신 하나님, 저의 가정이 믿음안에서 하나되게 하시고, 은혜로 살아가는 가족들 되게 하시옵소서. 식구들 모두가 긍정적인 자아상을 확립함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쓰임 받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혼구령의 도구


대장장이가 여러 종류의 말(horses)과 편자에 대해 정통한 것처럼,
우리도 영혼과 구령에 관한한 정통해야 한다.
지혜로운 일군은 자기가 맡은 임무를 성취하기 위해서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확실히 위대하신 하나님, 모든 일군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은
특히 영혼 구령의 아름다운 역사 속에서
하나님 자신의 특별한 도구를 갖기를 기뻐하셨다.
옛 창조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도구를 사용하셨다.
"그가 말씀하시니 그것이 이루어졌고.."(시 33:9).
더군다나 새 창조에 있어서도 가장 강력한 도구는
여전히 그분의 능력 있는 말씀이다.
-찰스 스펄전의 ‘영혼 구령을 위한 복음 전도자의 특성’에서-

 
     
 
   
 


우리의 주요 임무는 영혼을 구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혼구령의 방법으로
자신의 종들의 전도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구가 되기에 합당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으로
사람의 귀와 마음에 말씀하시도록 하는
도구가 되기에 온전해야 합니다.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합당한 도구로 준비되었는지.

 
     
       
 

사도행전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They replied,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you and your household."

 
       
 
   
  비전교회 채이석 목사
  비전교회 채이석 목사
   
   




5월 21일 (토)
빈들에 겔 39:1-10
   
 

1.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곡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2. 너를 돌이켜서 이끌고 북쪽 끝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
3. 네 활을 쳐서 네 왼손에서 떨어뜨리고 네 화살을 네 오른손에서 떨어뜨리리니
4. 너와 네 모든 무리와 너와 함께 있는 백성이 다 이스라엘 산 위에 엎드러지리라 내가 너를 각종 사나운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 먹게 하리니
5. 네가 빈 들에 엎드러지리라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 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주하는 자에게 내리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7.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을 민족들이 알리라 하라
8.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볼지어다 그 날이 와서 이루어지리니 내가 말한 그 날이 이 날이라
9. 이스라엘 성읍들에 거주하는 자가 나가서 그들의 무기를 불태워 사르되 큰 방패와 작은 방패와 활과 화살과 몽둥이와 창을 가지고 일곱 해 동안 불태우리라
10. 이같이 그 무기로 불을 피울 것이므로 그들이 들에서 나무를 주워 오지 아니하며 숲에서 벌목하지 아니하겠고 전에 자기에게서 약탈하던 자의 것을 약탈하며 전에 자기에게서 늑탈하던 자의 것을 늑탈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침략자 곡의 멸망에 대한 예언입니다. <너와 네 모든 무리와 너와 함께 있는 백성이 다 이스라엘 산 위에 엎드러지리라 내가 너를 각종 사나운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 먹게 하리니 네가 빈들에 엎드러지리라>(4-5절).

아무리 서로 힘을 뭉치고 연합하여 진 칠지라도, 아무리 강력한 화력과 군비로 중무장 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적할 군대는 없습니다. 최근 미국 정가와 우리나라 일각에서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분위기가 급속히 조성되고 있어서 많이 우려스럽습니다. 무기를 파는 군수업자들은 그 총칼에 누가 죽든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악마적 사고를 거침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악의 뿌리를 근절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더욱 실감케 하는 요즘입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영혼 속에 자리한 사탄의 세력을 몰아내지 않고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봅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바로 그런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죄의 반복을 아무런 여과도 없이 적나라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굳이 민족 단위가 아닌 한 개인의 삶 속에서도 그대로 증명됩니다. 그 심령 속에 자리잡고 있는 원초적인 죄악에 대한 청산 없이는 과거의 잘못된 습성과 악습이 결코 극복되지 않고 끈질긴 관성을 가지고 계속 생존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메시지는 언제나 악의 외양보다는 그것을 열매로 내어놓는 뿌리를 향해 가차없이 진격해 들어갑니다. 율법주의자들이 인간 행동의 외면적 방식에 주목했다면 주님은 그런 것들이 내포할 수 있는 위선을 과감히 폭로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악한 세력과의 대결에서 이기는 길은 현실과 자신을 단절시키고 자기 내면에 영혼의 도피처를 만들어 내는 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탄의 힘에 굴복하는 결과만을 가져올 뿐입니다.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는>(벧전5:9) 것입니다. 본문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 네 활을 쳐서 떨어뜨리고 ... 내가 너를 빈들에 엎드러지게 하리라>(1-5절). 곡과 벌이실 종말론적 전쟁에서 하나님이 완승하신다는 예언이야 말로 오늘 우리들에게도 큰 소망이 되고 힘이 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볼지어다 그 날이 와서 이루어지리니 내가 말한 그 날이 이 날이라>(8절).

 
   
   
 

-곡의 멸망을 통해 곧 <내가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을 민족들이 알리라>(7절)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인간 내면에 자리한 사탄의 영향력을 근절하지 않고서는 현실 속의 여러 악들을 제거하기 어렵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곡과의 최후 전쟁에서 결국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는 사실이 어째서 오늘 우리들에게 큰 소망이 될까요?

 
   
   
 

주님, 이 시대에 횡행하는 인간 개인의 죄, 사회와 집단과 국가의 죄가 실은 다 그 안에 역사하는 사탄의 악한 의지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세상 모든 악과 죄의 진정한 주범은 사탄이요 마귀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아무리 무장을 하고 연합전선을 편다 해도 결코 하나님을 이길 수 없으며 오히려 마지막 곡과 마곡의 전쟁에서 하나님께 완전히 궤멸되고 빈들에 엎드러져 멸망할 것임을 확신하오니 저희들 더욱 담대하게 이 영적인 싸움에 임하도록 격려해 주시옵소서.

 
   
     
 

깊은 배려와 이해가 있는 설교자

설교자는 결코 신자는 죄를 이길 수 없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식의 패배주의와 방종을
조장하는 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 안의 은혜의 풍성함과
신자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죄를 충분히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으며
그런 삶을 살라고 끊임없이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그는 성화 과정에서 많은 쓰러짐의 아픔과
낭패를 거듭하는 신자의 실존적인 연약함에 대한
깊은 배려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신자는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길 수 있다.
-박영돈 목사의 ‘패배주의와 승리주의 사이에서’에서-

 
     
 
   
 


성화 과정에서 신자가 겪는 많은 실패와 좌절과 곤경에
깊이 공감하는 실존적인 깊이를 담아내지 못한 채
예수 믿으면 죄를 짓지 않는데 왜 당신들은
그런 식으로 사느냐고 밀어붙이는 것보다
그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설교자는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유모가 갓난아이를 양육하듯이,
오래 참음과 온유와 눈물로
지난하고 힘겨운 성화의 노정에서 허우적대는
연약한 신자들의 길벗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8,9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Though you have not seen him, you love him; and even though you do not see him now, you believe in him and are filled with an inexpressible and glorious joy, for you are receiving the goal of your faith, the salvation of your souls.

 
       
 
   
  비전교회 채이석 목사
  비전교회 채이석 목사
   
   




5월 20일 (금)
그 날에 겔 38:17-23
   
 

1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옛적에 내 종 이스라엘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한 사람이 네가 아니냐 그들이 그 때에 여러 해 동안 예언하기를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그들을 치게 하리라
18. 그 날에 곡이 이스라엘 땅을 치러 오면 내 노여움이 내 얼굴에 나타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9. 내가 질투와 맹렬한 노여움으로 말하였거니와 그 날에 큰 지진이 이스라엘 땅에 일어나서
20. 바다의 고기들과 공중의 새들과 들의 짐승들과 땅에 기는 모든 벌레와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 앞에서 떨 것이며 모든 산이 무너지며 절벽이 떨어지며 모든 성벽이 땅에 무너지리라
2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내 모든 산 중에서 그를 칠 칼을 부르리니 각 사람이 칼로 그 형제를 칠 것이며
22. 내가 또 전염병과 피로 그를 심판하며 쏟아지는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와 그 모든 무리와 그와 함께 있는 많은 백성에게 비를 내리듯 하리라
23. 이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위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그 날>(18, 19절)이란 <곡이 이스라엘 땅을 치러> 오는 날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로 <그 날>, <내 노여움이 내 얼굴에 나타나리라>고 하셨고, <큰 지진이 일어나서 바다의 고기들과 공중의 새들과 들의 짐승들과 땅에 기는 모든 벌레와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 앞에서 떨 것이며 모든 산이 무너지며 절벽이 떨어지며 모든 성벽이 무너지리라(19-20절)고 하셨습니다. 또한 <내가 질투와 맹렬한 노여움으로> 곡의 군대를 칠 <칼을 부르시리라>(21절)고도 하셨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전염병과 피로 그들을 심판하며 쏟아지는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와 그 모든 무리에게 비를 내리듯 하리라>(22절)고도 하셨습니다. 이것은 다 곡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이요 무고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자행한 그들의 침략과 살육과 탈취에 대한 징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날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심이 아니라 <그분의 의로우심과 공정하심, 사랑과 성령의 힘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다 불리해질 것 같다 하여 그 길을 철회하고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자신을 더욱 굳게 붙드는 전폭적인 신뢰입니다. <그 날>은 꼭 있습니다. 하나님도 분명 그 날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위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라>(23절)고 하셨습니다. 이런 찬양도 있지 않습니까?

<그 날에 온 땅과 열방이 경배하며 주의 이름 높이리 / 외치세 왕의 왕 예수님 할렐루야 주의 영광 영원하리라 / 왕의 왕 되신 주 예수님 전능하신 구주 예수님 / 사망 권세 이기신 어린 양 주의 영광 영원하리라>

종말에 닥칠 그 날을 잊지 맙시다. 믿음으로 무장하며 예비하되 겁먹지는 맙시다. 그 날은 악한 세력의 총궐기의 날이자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과 심판의 날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시고 전쟁의 진정한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확신하시며 더욱 담대하십시오.

 
   
   
 

-<그 날>이란 어두움의 세력들에게는 최후의 일전이지만 하나님께는 사탄의 무리들에 대한 응징과 심판의 날임을 믿으십시오.
-<그 날>에 하나님이 악한 곡의 무리를 단죄하시며 응징하실 때 큰 지진과 전염병, 폭우, 우박 같은 자연 재난도 함께 동반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축복과 은혜 뿐 아니라 공의와 심판을 통해서도 당신의 여호와 되심을 스스로 검증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 <그 날>은 사탄의 세력들이 총공세를 펼치는 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저희를 지키시고 저희를 대신해 그들을 대적하시며 심판하신다고 하셨사오니 저희는 다만 하나님의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승리를 확신하며 감사하며 늘 근신하는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마귀가 아무리 굶주린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저희를 위협해도 주님이 저희를 보호하고 계시므로 결코 해칠 수 없음을 조금도 의심치 않게 하사 큰 확신과 담력으로 당당하게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설교자는 결코 신자는 죄를 이길 수 없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식의 패배주의와 방종을
조장하는 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 안의 은혜의 풍성함과
신자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죄를 충분히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으며
그런 삶을 살라고 끊임없이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그는 성화 과정에서 많은 쓰러짐의 아픔과
낭패를 거듭하는 신자의 실존적인 연약함에 대한
깊은 배려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신자는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길 수 있다.
-박영돈 목사의 ‘패배주의와 승리주의 사이에서’에서-

 
     
 
   
 


성화 과정에서 신자가 겪는 많은 실패와 좌절과 곤경에
깊이 공감하는 실존적인 깊이를 담아내지 못한 채
예수 믿으면 죄를 짓지 않는데 왜 당신들은
그런 식으로 사느냐고 밀어붙이는 것보다
그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설교자는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유모가 갓난아이를 양육하듯이,
오래 참음과 온유와 눈물로
지난하고 힘겨운 성화의 노정에서 허우적대는
연약한 신자들의 길벗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금성교회 김호성 목사
  금성교회 김호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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