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신병철 기자]
우리나라에는 절이 많다. 일본에도 많다. 그러나 일본 절과 우리 절은 많이 다르다. 우리 절은 지금도 스님들이 정진하는 도량이다. 일본 절에는
정진하는 스님들이 없다. 우리의 절은 살아 있지만, 일본의 절은 죽었다. 죽어있지만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고 멋있어 부럽기까지 한 절은 오사카
부근 나라의 호류지이다.
금당의 구조는 특이하다. 지붕은 3층이나 내부는 2층으로 된 듯하다.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아랫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상층 기단을 올렸는데, 상층 기단은 기와지붕처럼 만들었다. 그 위에 2층 지붕을 올렸다. 공포가 매우 고식이다. 서까래와 평행한 부재로 도리에 지붕의 무게를 받치고 있다. 우리의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까지 존재했던 하앙식 구조이다. 1층과 2층 사이에 난간을 둘렀는데, 이 난간은 실상사 백장암 3층석탑의 난간 모습과 동일하다.
금당과 5층탑을 회랑이 빙 둘러싸고 있다. 우리의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 사찰에 회랑이 있었다. 회랑은 내부의 통로이면서 안과 밖을 구분짓는 담장이기도 했다. 평지의 사찰에서는 이런 회랑이 필요했다. 그러나 점차 산지가람이 되면서 경사에 의해 안과 밖에 자연스럽게 구분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졌던 것이다. 이 회랑의 남쪽문이 중문이다. 중문의 위용도 대단하다. 양쪽에 인왕역사 두 분이 서로 마주보면서 사찰을 보호하고 있다. 건축 양식은 모두 금당과 5층탑의 양식과 동일하다. 남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갈 때 사찰의 제대로 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텐데, 통행을 제한하고 있어 안타까웠다.
좌우의 협시보살의 모습은 상당히 눈에 익은 모습이다. 허벅지에서 X자로 교차하는 옷자락하며 왼팔에 걸치고 있는 옷자락이 우리나라 보살상들과 매우 닮았다. 길쭉한 얼굴은 중국 북위식이다. 고구려도 북위식 길쭉한 얼굴 불상이 나타나는데, 이런 고구려 백제의 불상이 일본에까지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광배의 연꽃과 화염무늬들도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약사여래좌상의 모습은 석가삼존상의 본존불좌상과 거의 같다. 통인의 손모양에 대좌를 가득 덮은 가사자락, 양 어깨를 덮고 내려온 윗옷이 가슴 앞에서 큰 U자를 만들고 있다. 석가삼존상에 쇼토쿠태자를 위하여 623년에 일본사람 도리가 만들었다는 명문이 있다. 일본에서는 이 명문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명문은 후대에 첨기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나머지 부처님 권속들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과는 차이가 좀 나는 듯하다. 아마도 제작 시기가 늦어, 일본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금강역사나 사천왕상들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하더라도 어딘가 부드럽고 인자한 모습이 있는데, 일본풍이 가미된 천왕이나 역사들은 대단히 험상궂다. 인자한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백제가 538년부터 일본에 불교를 전파했다. 삼국간의 치열한 경쟁에서 일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친밀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었다. 일본의 야마토 조정은 고대국가 체제를 구축하는데 그 이념으로 불교가 필요했던 것 같다. 백제 위덕왕은 588년에 사찰 건축하는데 필요한 수십 명의 인원을 일본에 파견하여 절간을 짓고 법흥사라 불렀다. 법흥사는 탑을 중심에 두고 3개의 금당이 둘러싸고 있는 배치를 지녔다. 고구려 가람배치에 이와 같은 모습이 보인다. 지금 법흥사는 사라지고 그 곳에 아스카테라라는 조그만 절이 들어서 있고, 백제의 지원 아래 지은 호코지(법흥사)는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창건 법륭사는 일본에서는 약초가람(若草伽藍 와카쿠사가람)이라 부르는데, 호류지 남대문 바로 오른쪽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한 창건법륭사의 가람은 1탑 1금당 양식인데,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가람배치와 같다. 부여 정림사터의 배치와도 같은데, 백제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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