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학 칼럼 노무현의 장인, 한명숙의 남편, 김근태의 형제들
이계성 2024.10.23 09:41
노무현의 장인, 한명숙의 남편, 김근태의 형제들
(이 글은 노무현 정권 때, 널리 읽혀지던 어떤 네티즌의 글입니다. 이 글을 좌파들이 아직도 횡행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옮겨봅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비극은 이 셋으로 부터 비롯한다! 거기다가 북한의 핵도발로 이어진 노무현 정권의 親北행태 이면에는 정권 내 소위 主思派(金日成주의자)들이 도사리고 있다.
프리존미디어 강길모 부사장은 지난 9월20일 자유민주주의학회 증언을 통해 "과거 나는 金日成주의 혁명조직인 '反美청년회'를 통해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기도를
해왔다"며 "주사파들은 확실한, 확고한 사상적 이념을 가지고 법조계`언론계`정치판에 들어가 대한민국을 얼치기 좌파세상으로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盧무현 정권 내의 우상호·오영식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문용욱 청와대 제1부속실장, 이은희 前 청와대 제2부속실장, 김만수 前 청와대 대변인, 여택수 前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 등이 교양의 대상이었다"며, "우리는 위대한 수령 金日成 동지를 찬양했었다"고 증언했다.
청와대 제1부속실과 제2부속실은 각각 대통령과 영부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 보좌하는 최측근에 해당한다. 강 부사장 증언대로라면 대통령과 영부인이 모두 주사파 출신들에 의해 둘러 싸여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중 그 누구도 사상적으로 전향했다거나, 자신의 사상을 수정했다고 한 인간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현제 진행형 "김일성 동지 찬양 숭배주의자" 라는 것이다.
이만하면 대한민국 정부 수뇌부와 집권 열우당에, 붉은 물결이 출렁이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몸사리느라 자제하고 있어서 우리가 느끼는 그 强度강도가 예상보다 약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의 장인이나, 김근태의 형과 숙부는 어쩌면 현실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지 모릅니다. 즉 내재(內在)된 숨겨진 위험요소이지만, 그렇지만 한명숙의 남편 박성준씨의 건은, 분명한 현재 진행형이고, 그 복역으로 형기를 마쳤다고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행적에 대한 단죄일 뿐, 현재도 반정부 일선에서 총리인 자신의 아내와 대립각을 세우고 버티는 것은 전연 별개의 문제입니다.
나라가 하는 일을 일일이 반대하면서 그 나라가 제공하는 국민세금으로 아내를 따라 외국순방에 나서는 그 파렴치에 이르면 참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이쯤되니, 이 노무현 정부가 어째서 국 내외적으로, 그 갖은 비난과 구설수를 무릅쓰고, 북한을 감싸고 도는지 알만하지 않습니까?
국민 여러분, 유권자 여러분, 이러한 자들을 국정에서 손떼게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가진 그 한표의 위력에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을 정치의 장에서 몰아내는 것은 여러분들의 투표권에 의해서만 결정지어집니다.
내년의 대선, 그리고 그 다음의 총선에서 우리는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잉태시키지 않도록 우리의 소중한 권리인, 한표를 신중하게, 바르게 행사합시다. 뽑아놓고 후회한들 그 무슨 소용입니까!!
여기서 그들의 면면을 한번 살펴 보실까요?
A) 노무현의 장인 권오석
권오석의 양민학살(良民虐殺)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권오석(權五晳) 당시 29세: 전 진전면 서기? 피해자 집안 머슴?
*알콜 탄 술 잘못먹고 48년 실명상태(부인의 부축받으며 인민위 원회 출퇴근)
*인민군이 당시 창원군 진전면 점령하자 창원군노동당 부위원장,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반동자조사위원회 부위원장(위원장 金克五) 지냄.
*창원양민학살 최고책임자로 소위 반동분자들 잡아다가 진전면 일암리 대방마을, 치안대본부( 許景九집 )에 강금, 손바닥을 만져보고 프로레탈리아와 브루조아를 가려(이북 공산당의 전형적 신분파악 수법) 처형했다.
*학살은 치안대본부근처에서 50년 8월 중순에 자행
*희생자 수 12명 명단 (사건명: 진전면 치안대사건)
변백섭 43세 농업 창원군 진전면 양촌리
변선섭 34 농업 일암리
변증섭 33 농업 양촌리
김옥갑 53 농업 일암리
김만조 32 농업 사락리
김성갑 46 농업 창포리
주정호 28 군인 봉암리
박종수 51 구장 오서리
박주한 47 농업 오서리
정봉주 32 농업 광촌리
권오건 28 군인 오서리
오구이 33 농업
권오석은 6.25공산치하 때 지방 OOO로서 소위 인민재판을 주재, 함께살아 온 이웃 주민들을 저들의 반동분자로 몰아 무참히 학살한 자로, <비상사태하 범죄처벌특별법>과 <국가보안법>위반 양민학살범으로써 1950년 수감, 56년 8뤌 양안 실명과 폐결핵 사유로 형집행정지되었다가 61년 3월 장면정권 때 잔형집행으로 재수감 된 10년후인 71년에 죽었다.
사건의 진상은 누구보다도 생존중인 노무현의 장모가 진솔하게 밝혀야한다. 피해자 유족들의 증언은 부분적이나마 이미 확보되어있다. 다음은 국회가 판단할 일이다.
( 월간조선 2002년 5월호 참조 )
B) 한명숙의 남편 박성준
이름 : 박성준
출생 : 1941년
가족관계 : 아내 총리 한명숙
학력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일본 릿쿄대학교 대학원
직업 : 대학교수
소속 :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교수
경력 : 시민단체 비폭력평화물결, 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 한백교회 설립
참 희한한 부창부수(夫唱婦隨)도 다 있다. 국무총리 한명숙씨 내외이야기다. 올해 67세인 총리의 남편은 다 알려졌다시피 전력이 파란만장한 인사다. 현재는 성공회대 겸임교수로 있다지만, 1960년대 후반 통일혁명당사건에 연루돼 무려 13년 수개월동안 옥살이를 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우리나라 자생(自生)공산주의자 제 1호라 지칭되는 열렬 공산주의자다.
이 통혁당 사건으로 주범 김종태를 비롯해 4명이 처형당했고, 당시 북한의 김일성은 “김종태만한 통일 일꾼이 흔치않다. 그 같은 통일 일꾼이 많이 나와 하루빨리 남조선을 해방시켜야 한다”
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통일영웅’인지 뭔지 하는 칭호를 사후에 하사했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해선지 김일성은 해주사범대학을 ‘김종태대학’으로 개명하라고 지시했고, 평양전기기관차 공장은 ‘김종태 공장’으로 바꿨고, 평양시내에는 ‘김종태 거리’까지 생겨났으니 그의 ‘사상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같다.
한 총리의 남편은 이렇게 김일성이 아끼고 아끼는 ‘통일 일꾼’과 함께 일하다 발각돼 옥살이를 한 것이다.
요즘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맹활약중이어서 조금만 억울한 케이스라면 금세 그 ‘누명’을 벗을 수 있지만, 이 통혁당 사건만은 "체가 분명한 소위 죄질이 나쁜 빨 갱 이 사건" 이어서 총리의 남편이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소리는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튼 1981년인가 박성준 씨가 출소할 당시 그는 해방이후 ‘최장기수’로 감옥문을 나선 ‘진기록’의 소유자였다. 그는 절대로 전향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는 골수 공산주의자다. 그런 그가 요 며칠 새 또 자신의 ‘과거’ 를 떠올리게 하는 ‘묘한 활동’을 하다가 신문에 ‘대서특필’로 등장한 것이다.
“韓총리 남편, 평택 범대위 활동했다”는 제목아래 나온 기사에 따르면, 박성준씨는 지난 몇 달 동안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했던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에 활발히 참여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박씨는 ‘비폭력 평화물결’이라는 단체의 대표로 4년여 활동해오면서 부인인 한명숙씨가 국무총리로 임명돼 공무를 시작한 이후에도 ‘범대위’단체들과 함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보장 위한 평택지역 강제수용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는 “미군기지 이전 협상은 총체적인 부실로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며 “평택기지 확장은 헌법과 한·미 상호 방위조약에도 저촉되는 것으로 공권력을 발동할 적법한 근거가 없다”고 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지난 5월 ‘범대위’의 폭력행사가 극에 달했을 때, 한 총리는 시위대와 경찰 모두가 한 걸음씩 물러나서 냉정을 되찾자는 ‘요상한 성명서’를 낭독해 나라를 걱정하는 많은 인사들로부터 걱정을 들어야 했다.
어떻게 ‘범법자’들과 그를 막는 경찰 공권력을 동일선상에 놓고, 범대위를 드러내놓고 그렇게 두둔할 수 있는가라는 비난의 화살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녀는 ‘유순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이택순 경찰청장마저 시위대의 집회를 원천봉쇄해야 한다는 ‘진언’을 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총리의 ‘현실 인식’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역군인과 전투경찰들이 시위대가 휘두른 폭력에 중상을 입거나 말거나 그녀는 ‘양비론’을 들먹거려 양식 있는 인사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미국 같은 ‘선진’자유국가에서도 ‘공권력’에 대항하는 시위대는 엄중 처벌하는데, 대한민국의 ‘관용 넘치는’ 여성총리는 시위대를 두둔함으로써 그녀의 ‘전력’에 대해 새삼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어제 오늘 신문을 보니 그녀가 그렇게 ‘따스한 모성애’로 시위대를 감싼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남편이 ‘시위대’에 앞장서서 활동하고 있었으니 오죽했겠는가.
그녀는 “젊은 시절, 남편을 통해 사회문제와 조국의 현실에 눈을 떠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 자신도 70년대 후반 ‘친북활동 혐의’로 3년 가까이 감옥생활을 한 전력이 있는데, 이 또한 당시 장기수로 복역 중이던 남편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어쨌거나 ‘운동권출신 부부’로는 현 정부에서 최고로 출세한 한명숙씨 내외가 그리 좋지도 않은 ‘사상활동’으로 또 매스컴의 ‘각광’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적지 않은 인사들이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그들 부부는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총리 남편에 대한 기사가 처음 보도된 날, 총리실 관계자는 “총리 취임 후에는 그런 활동을 접었다”는 해명을 했었다. 그러나 총리 남편은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후속 기사가 그 다음날 더 크게 나왔다.
두 달 전쯤인 7월 27일에 총리 남편은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행사를 주관했다. 한강하구가 분단 해방구 같은 곳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 ‘해방구’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섬뜩해지는 ‘운동권 용어’가 아닌가.
더구나 그는 국방부에 북한까지 큰 배를 띄우겠다는 공문서를 직접 작성해 보냈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도 어지간히 난처했을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이 그런 서한을 보냈으면 그냥 무시해 버리기라도 할 텐데... 현역 국무총리의 ‘사부님’이 보냈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배를 북한까지 띄운다는 그의 ‘원대한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요 근래 보기 드문 해프닝이었던 것 같다.
그가 주관했던 이 행사에는 인근 지역주민 모임과 전교조, 민주노총, 환경운동연합 등 이른바 ‘잘 나가는’ 시민단체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물론 그들도 ‘박성준’이라는 사람이 ‘총리 남편’이라는 걸 다 알고 있었을 것이고, 오히려 그 점이 ‘든든한 배경’으로 여겨졌을 지도 모르겠다.
박씨는 자신이 이끌고 있는 ‘비폭력 평화물결’이라는 단체의 홈페이지에 “그 어떤 강대국도 폭탄 따위를 던지지 못하도록 한반도를 감싸자” 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밖에도 그 홈페이지에는 이러저러한 행사와 단체 설립 취지 같은 것이 나와 있는데, 읽어 내려가다 보면 왠지 ‘북한스러운’ 이미지가 읽혀져 석연치 않은 기분을 갖게 된다.
자신을 ‘맑시스트 크리스천’이라고 소개하는 현직 총리 남편의 ‘사상 활동’에 대해 사상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러쿵저러쿵 논평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 ‘활동’이 ‘반정부적’으로 확산될 염려가 있을 경우에는 예의주시하며 ‘총리아내’의 공무와 연관 지어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총리남편은 그의 주요 활동무대인 ‘비폭력평화물결’의 홈페이지에 반미·반정부적 외부기고를싣거나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서해교전은 북한의 도발이 아니라 남한 해군의 독자적 혹은 미국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외부기고도 실었고, 한미정상회담 시 미국에 대북제재 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서도 게재했다. 이쯤 되면 그의 활동을 마냥 수수방관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세상에서 나의 아내 한명숙을 가장 존경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총리의 남편이 그 아내가 국무총리라는 막강 고위공무원으로 일하는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엇박자를 내고 있는 이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래도 그 남편은 아내가 총리 취임 한 달 만에 떠난 유럽 출장에 동행해 ‘최고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국비지출이다.
더구나 9월 18일부터 열흘 동안 있을 총리의 2차 해외순방 때도‘총리의 남편자격’으로 따라 나선다고 한다.
우리네 상식으론 좀 남사스럽지 않나? ‘총리아내’의 공무출장에 왜 ‘민간인 남편’이 따라 나서나! 더구나 ‘민중’을 위해 일하는 ‘사상적 활동가’의 입장에서라면 자신의 동행으로 인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혈세낭비’는 자진해서 사양해야 하는 거 아닐까.
어쨌든 금슬 좋은 이 부부는 ‘부부일심동체’를 실천하는 뜻에서라도 늘 ‘동행’을 할 모양이다. 동행하는 것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워낙 순종적인 ‘총리아내’라서 행여 ‘부창부수’를 따르다가 대한민국에 누가 될 일이 생길 지 그게 못내 걱정스럽다.
총리남편은 그의 홈페이지에 이런 말을 쓰고 있다.
“예전에는 꿈도 못 꿨던 일들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고,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꿈조차 꿀 수 없었고,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게 말이야. 정말 예전 같으면 이런 일들은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 아닌가. 현역총리의 배우자가 ‘간첩죄’로 장기 복역했던 전과자 출신에 여전히 ‘반정부’ 활동을 버젓이 한다는 건 정말로 꿈조차 꿀 수 없던 일 아니겠는가.
대한민국 현직 국무총리라는 여성과 그 남편의 행태가 아무리 생각해도 희한 것 같아서 이 스산한 가을 날씨처럼 마음이 씁쓸해진다. ‘부창부수’도 이 정도라면 가히 기네스북에 올릴 법도 한 것 같다.
(Yahoo Skyview Blog. 뉴요커 (mj24578 ) 님의 글에서 펌.)
C) 김근태의 세 형은 북한에 있다.
그의 숙부와 숙모는 자진 월북했다. 열린당 원내 대표 金槿泰 의원의 아버지는 교장선생이었다. 그는 5·16 군사혁명 후 강제로 교직을 떠났는데 그 충격으로 심장판막증에 걸려 사망했다. 김근태 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그의 약력과 경력, 그리고 교장선생이었던 아버지의 삶이 소개돼 있는데, 유독 형제들 이야기는 빠져 있다. 형제들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하자, 김근태는 『알아서 쓰라』며 고사했다.
정부 기관에서 작성한 「김근태 신원 및 배후 사상관계」 파일에 따르면, 그의 큰형은 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6·25 당시 김일성 초상화를 제작한 후 월북했다. 둘째 형 역시 월북 후 평성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고등중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셋째 형은 의용군으로 월북해 교육성 장학사를 거쳐 통일전선부 대남 공작원으로 선발되었다고 한다.
그의 숙부는 월북 후 인민경제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성 부국장을 역임했으며, 숙모는 6·25 때 월북했다고 적혀 있다.
金대표도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아 1988년 가석방되었고, 1990년에는 전민련(全民聯) 결성 선언문 작성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 파일에 따르면, 1973년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 교육성 장학사로 있던 김대표의 셋째 형을 남파시키려 했으나 김정일이 중지시켰다는 첩보가 실려 있었다.
(월간조선 2004년 3월호에 실린 기사 "노무현 정부의 레프트 코드" 에서 펌)
이상, 이 내용을 처음 접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싶다. 이것이 이 나라 대한민국의 진실이다. 널리 알리고 읽혀졌으면 한다. 그리하여 우리 사는 세상이 맑아졌으면 얼마나 좋을까나.
2024. 10. 23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Free Opin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 대통령 시정연설은 국민에 대한 의무, 野도 예의 지켜야 (1) | 2024.10.29 |
---|---|
[스크랩] 적영웅(anti-hero)을 적시하라. (1) | 2024.10.28 |
[스크랩] 이 바보 등신들아!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아, 일좀해라 일 (3) | 2024.10.26 |
[스크랩] MZ세대을 논하다. (1) | 2024.10.26 |
“진짜 전쟁 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손효주 기자의 국방이야기] (2) | 2024.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