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가 표현한 지독한 슬픔[김민의 그림이 있는 하루]
김민 기자 입력 2021-12-11 10:30 수정 2021-12-11 10:30
인상파의 시작을 알린 그림 ‘인상, 해돋이’로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의 화가 클로드 모네를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고정된 시점과 빛을 떠나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포착한 그림으로 모네는 잘 알려져 있는데요. 밝은 태양이 비쳐서 한 없이 푸른 잔디, 불그스름한 노을이 비춘 잔잔한 바다, 새벽빛에 신비로운 보라색으로 물든 건물. 이런 것들이 우리가 모네의 그림을 기억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평생 집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 개인적이고 내밀한 그림이 있었습니다. 모네의 침실에 있었다는 것으로 전해지는 이 그림에는 서명도 없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가족들이 표시를 위해 남긴 이름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뿐이죠. 1960년대 프랑스의 한 갤러리스트가 유족에게 사들여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기증하면서 비로소 존재가 알려진 그 작품을 오늘은 감상해보겠습니다.
○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그림 속 인물은 흰 시트 위에 누워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보랏빛이 감도는 푸른색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거칠게 난도질하듯 그어진 선들 위로 얼굴이 떠오르고 있는데요. 그 얼굴은 눈이 감겨 있고, 코는 힘든 숨을 내쉰 듯하며 입은 살짝 벌어져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 그림은 클로드 모네가 자신의 아내 카미유가 세상을 떠난 마지막 순간을 포착한 그림입니다.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인 머리와 입술 사이로 드러난 치아가 기력을 다한 그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또 얼굴 아래 손이 있을 위치에는 흐릿하게 놓여진 꽃이 보입니다.
카미유와 클로드 모네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보기 전에 그림부터 먼저 더 자세히 볼까요. 제가 이 그림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거친 붓 터치로 빳빳한 듯이 그려진 시트 속에 파묻혀버린 카미유의 모습입니다. 그녀의 눈, 코, 입이 간신히 그가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지만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치 카미유가 고목이나 화석이라도 된 것처럼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너무 적나라하게 그렸다는 느낌도 듭니다.
미술사의 전통을 봐도 죽음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린 작품은 흔치 않습니다. 뭉크의 ‘누이의 죽음’처럼 슬픔이 극대화된 순간으로 대신하거나, 대다수의 종교화나 역사화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죽음을 미화시키기도 하지요. 그런데 모네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영영 세상을 떠나버린 순간 느끼는 충격을 재연이라도 하려는 듯, 똑바로 대면하고 그리고 있네요. 카미유의 죽음은 모네에게 어떤 의미였던 걸까요.
○ 고통 속에 떠난 여인
모네는 1865년 모델 일을 했던 카미유를 만났고, 그녀를 그리다 연인이 됩니다. 위 그림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무렵 그려진 것으로 젊고 아름다운 카미유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사업을 돕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뜻을 꺾고 화가가 된 모네는 이 그림으로 처음 파리에서 인정을 받습니다. 1866년 파리 살롱전에 이 작품을 출품해 입선했고, 좋은 평가도 받았거든요. 그리고 이 그림을 팔아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난관에 부딪치게 됩니다. 바로 모네의 아버지가 이들의 만남을 반대한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노르망디의 부유한 도매상이었습니다. 가수였던 어머니의 지지로 모네는 화가가 되었지만 그가 17살 때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파리에 온 뒤로도 모네는 그림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아버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1867년 카미유가 모네의 아이를 낳았을 때도, 아버지는 “아이와 여자를 버리지 않으면 지원을 끊겠다”고 합니다. 모네는 결국 아버지로부터 아들 장과 카미유를 숨겼지만, 아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1870년 귀스타브 쿠르베를 증인으로 결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식에 모네의 가족은 참석하지 않았고, 경제적 도움도 끊기게 됩니다.
이 무렵 두 사람의 고통은 시작되었습니다. 카미유의 부모님은 돈이 없는 딸에게 미리 유산을 상속해주는데, 빚쟁이에 시달리는 모네에게 빼앗기지 않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프랑스에 전쟁이 일어나 모네가 입대해야 하는 위기에 처해, 영국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차가운 파리의 단칸방에서 카미유는 혼자 아이를 돌보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모네는 그림을 팔거나, 컬렉터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가족을 다시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합니다. 돈이 없어 여관에서 세 가족이 쫓겨난 적도 있다고 하네요. 이런 과정 속에서 카미유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하게 됩니다.
결국 카미유는 32살인 1879년, 둘째 아이를 낳은 뒤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미술사가들은 그녀가 골반 암을 앓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모네는 아내가 숨을 거두고 난 뒤 너무나 슬퍼하며 그녀가 좋아했던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고 합니다.
○ 본다는 것의 의미
모네가 아내의 죽음을 그렸다는 것은 그가 죽고 난 뒤에야 알려졌다고 말씀 드렸죠. 모네는 이 그림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카미유가 세상을 떠나고 40년 뒤 어느 날, 모네는 친한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조르주 클레망소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 놓습니다.
“내가 갖는 그림에 대한 집착, 기쁨, 고통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나는 아주 오래 전 아주 사랑했던, 지금도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지켜본 적이 있네. (…) 그런데 그 비참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무의식 중에 빛과 그림자 속에 드러난 색을 구별하고 있더군. 나에게 그렇게 많은 의미를 가졌던 얼굴인데 평소의 습관이 그런 반사작용을 일으켰던 거야.”
이 발언은 모네가 그림을 대하고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해 언급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과거 미술의 방식에서 탈피하고 자신의 눈으로 ‘직관’하기 위해 모네가 했던 피나는 노력을 실감해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그것을 맨눈으로 보려는 습관이 작동을 했으니 말이지요.
그런데 그러한 모네를 ‘그림에 미친 사람’으로만 본다면 너무 단순한 결론일 것입니다. 왜냐면 그 과정을 통해 모네가 풀어 놓은 결과물은 곧 미화되거나 포장되지 않은 정직한 죽음이며, 그 때의 고통을 솔직하게 대면했던 순간의 개인적이면서 보편적인 기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한다면 모네는 단순히 색깔을 구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눈으로 느꼈던 감각을 집중해서 포착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여기서 ‘본다’는 행위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은 과연 객관적일까요? 우리가 구별하는 색깔, 형태가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요.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은 한 없이 예쁘게 보다가, 그 사람에게 실망하면 갑자기 못난이로 보는 것처럼 많은 주관이 작용하진 않나요? 결국 인상파 작가들이 던진 질문도 바로 이것이며, 이것에 대한 대답으로 개별성의 길을 열어 미술사에서 불멸로 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카미유의 죽음’은 모네의 내밀하면서도 가장 정직한 그림 중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영국의 미술 평론가인 존 버거가 이 그림에 대해 한 이야기를 보시고 다시 한 번 감상해보세요.
“흰색, 회색, 보라색 물감이 눈보라를 일으킨다…. 상실이라는 고통에 울부짖는 눈보라가 카미유의 얼굴을 영원히 지워버릴 것만 같다. 죽음을 다룬 그림 중 이렇게 강렬하게 감각을 내뿜으면서, 극도로 주관적인 표현성을 드러내는 그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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