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입력 2020-08-01 03:00 수정 2020-08-01 03:00
코로나19 계기 미중 갈등 전방위 확전
한국, 미중 가운데 선택의 순간 다가와
사안별 국가이익 부각하며 결정해야
비핵화 고려않는 남북관계 올인은 위험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미중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무역전쟁으로 시작된 미중 갈등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전방위적으로 확전 중이다. 코로나19의 혼란을 틈타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군사 활동을 부쩍 강화하자 미국은 항행의 자유 작전으로 맞서고 있다. 베이징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에 대한 특수지위를 종식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지식재산권 절취의 소굴로 지목된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을 미국이 폐쇄하자 중국은 청두 미국 총영사관 폐쇄로 맞대응했다. 상승곡선을 그리는 미중 간 갈등의 끝이 어디일지 지금으로서는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코로나19 이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미중 관계는 트럼프의 대선 전략으로 보기에는 그 깊이와 범위가 너무 크다. 미 의회는 최근 들어 대만, 홍콩, 티베트, 신장위구르 등 중국의 핵심 국가이익과 관련된 법안들을 줄줄이 통과시켰다.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교란을 겪게 되자 경제번영네트워크(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를 비롯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구상을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제 기능을 못 하는 G7 혹은 G20을 대신하여 D10, 즉 민주주의 10개국으로 이뤄진 새로운 동맹체제의 필요성도 거론했다. 급기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요바린다 닉슨도서관 연설에서 ‘중국이라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40년 전 닉슨의 회고까지 인용하면서 중국이 변해야 세상이 안전해진다며 사실상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을 보는 미국인들의 근본적 인식 변화를 바탕으로 한다. 즉, 지난 40여 년간의 대(對)중국 관여정책이 중국을 개방된 체제, 기존 국제질서 순응, 법치, 민주주의 가치 수용 같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힘을 키울 시간만 줘서 결국 오늘날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로 만들었다는 실패론이다. 미국이 1979년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할 때 기본적인 전제는 중국을 국제경제 체제 속으로 견인하고 포용하면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 순응해서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전제는 잘못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중국은 미국의 관여정책하에서 최대의 혜택을 받은 국가이지만 갈수록 기존 국제체제와 룰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밀어내고 자신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고 하는 것이다.
올 5월 코로나19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와중에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대해 협력보다는 공개 압박과 봉쇄 전략 등 ‘경쟁적 접근(competitive approach)’을 하겠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이 제기하는 도전은 전방위적이다. 첫째,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취하는 국가 주도 보호무역주의와 국가자본주의의 위험성이 있다. 둘째, 미국적 가치에 대한 도전이다. 시진핑 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에다 민족주의, 일당독재, 국가 주도 경제, 공산당에 대한 개인적 자유의 복속 등을 특징으로 한다. 셋째, 안보적 도전으로 황해(서해), 동·남중국해, 대만해협, 중국·인도 국경지역 등에서 선제적이고 강압적인 군사 및 준군사 행동을 실행하고 있다. 이러한 도전에 맞서 미국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더 약화시키려는 중국의 추가적인 행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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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미중 관계는 이제 패권경쟁, 체제경쟁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미중이 격돌하는 상황은 단순히 미중 간의 관계를 넘어 전 세계에 심각한 여파를 불러올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갈수록 안보와 경제도 얽혀 안미경중(安美經中)은 더 이상 유지 가능한 외교 태세가 아니다. 결국 사안별로, 일방적으로 미국 편을 들거나 중국을 적대하는 것이 아닌, ‘현명한 국가이익(enlightened self-interest)’ 기준으로 선택한다는 평판을 만들어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한국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사사건건 미중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선택을 망설이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한국을 흔들어댈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거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될 비전과 전략은 있나. 한국 정부는 미중이 싸우는 틈을 타 남북과 북-미 관계를 분리해 비핵화 진전과는 상관없이 남북 관계에만 올인하려 한다. 그 결과는 한미 간의 디커플링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한국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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