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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결국 세금이냐 빚이냐 선택일 뿐이다

鶴山 徐 仁 2020. 6. 12. 13:49

[동서남북] 결국 세금이냐 빚이냐 선택일 뿐이다

 

조선일보

 

나지홍 경제부 차장


입력 2020.06.12 03:16

 

선진국 수준 복지 확충하려면 세금 아니면 나랏빚 늘릴 수밖에
전문가들 해법은 결국 증세… 욕먹어도 추진할 리더십 필요

 

경제학에 '불가능한 삼위일체(Impossible trinity)'라는 이론이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미 컬럼비아대 교수의 이론으로, 국가 간 자금 이동이 자유로운 개방 경제에서는 한 나라가 환율 안정과 자유로운 국제 자본 이동, 독자적 통화정책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삼중(三重) 딜레마란 의미에서 트릴레마(trilemma)라고도 부른다.

IMF 외환 위기 때 우리나라가 몸소 겪었다. 경상수지 적자로 달러가 빠져나가는데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을 억지로 800원대로 유지하려 하니 달러 품귀가 더 심해졌다. 결국 못 버티고 800원 선 방어를 포기하니 달러 값이 거의 2000원까지 급등했고, IMF 처방을 받아들여 고금리 정책을 펴면서 통화 주권(主權)도 상실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초(超)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면서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이 오르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트릴레마다.

재정 전문가인 중앙대 류덕현 교수는 최근 복지 재정 확충을 둘러싼 국가 채무 논란을 '재정 트릴레마(fiscal trilemma)'로 설명하고 있다. 높은 복지 수준과 낮은 조세 부담률, 적은 국가 채무를 동시에 만족할 수 없고, 셋 중 둘을 달성하려면 다른 하나는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류 교수에 따르면 높은 복지 수준을 유지하는 국가는 스웨덴형과 일본형 둘밖에 없다. 스웨덴은 국민이 낸 세금이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조세 부담률)이 33.6%(이하 2015년 기준)로 일본(18.6%)보다 높다. 반면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51.7%로 일본(221.8%)보다 낮다. 한국은 조세 부담률(18.5%)과 국가 채무 비율(45.8%)이 모두 낮지만, 복지 수준은 두 나라보다 떨어진다. 복지 수준을 높이려면 결국 세금을 더 내든지, 그게 싫다면 국가 채무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결국 복지 확충에 들어가는 비용을 어느 세대가 부담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현 세대가 세금을 더 내는 증세(增稅)를 선택하면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할 국가 채무가 늘어나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답은 정해져 있다. 스웨덴식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 같은 고상한 논리가 아니다.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니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다. 기축통화란 달러화나 엔화처럼 국제 결제나 금융 거래에 쓰이는 돈이다. 이 나라들은 나랏빚이 많아도 외환 부족을 겪을 일이 없다. 자기 나라 돈을 찍어 갚으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는 국가 채무 증가가 신용 등급 하락과 외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증세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제아무리 좋은 대의명분으로 포장해도 자기 호주머니에서 세금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국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조세 부담률을 10%포인트 높이면 1년에 세금을 200조원 더 내야 한다. 국민투표에 부치면 백전백패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세 부담이 늘어날 현 세대는 반대할 테고, 미래 나랏빚을 책임져야 하는 세대는 아직 투표권이 없거나 태어나지도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 중 비록 미완(未完)으로 끝났지만 복지 트릴레마를 공론화한 게 노무현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복지 선진화를 하는 데 25년간 1100조원이 든다는 내용의 '비전 2030' 보고서를 2006년 발표했다가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공격받았다. 당시 노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지만, 국민 여론이 부정적이고, 강력한 정치적 반대가 있는 경우 지도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결국 당장 욕먹더라도 미래를 보고 추진할 수 있는 정치 리더십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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