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사랑한…] (7) 시인 김경주의 리투아니아 '드루스키닌케이'
고향 생각마저 마비시키는 땅… 동유럽의 서정적 공기를 호흡하다
- 리투아니아 남부 드루스키닌케이의 구르타스 공원. 과거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점령된 당시 설치된 유적을 모아 전시했다. 레닌·스탈린·칼 마르크스 등 공산주의 지도자와 사상가의 조각상도 있다. /사진 작가=한민국
최근 나는 동유럽의 리투아니아라는 나라에 다녀왔다. 인구가 200만이 안 되는 발트해의 작은 나라. 계기는 이 나라에서 매년 가을 열리는 '드루스키닌케이 시축제'에 초청받았기 때문이다. 드루스키닌케이(Druskininkai)는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Vilnius)에서 3시간 정도 버스를 이용해서 가야 하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이 시골마을은 우리나라의 제주도처럼 요양지나 휴양지의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은퇴하거나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노인들이 산책하기에 좋은 평온한 도시이다. 실제로 이곳엔 온천이나 스파(SPA)를 테마로 하는 공간들이 꽤 있다. 1·2차 세계대전의 적전지를 공원화한 '드루스키닌케이 구르타스 공원'은 이곳의 필수코스. 동유럽산 동물과 마르크스의 석상 등이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그곳의 가을은 고엽이 된 포플러나무들 이파리들이 우주공간에서 우수수 떨어진 것처럼 가득하다. 도무지 사건이라고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평온하고 온유한 공기의 질감은 여행자의 불안과 여독과 귀소본능을 잠시 마비시킬 정도이다.
하지만 이 드루스키닌케이가 세계에 알려진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드루스키닌케이 시축제'이다. 이 축제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독창적인 시 페스티벌로 알려진 축제 중 하나. 이 시축제는 며칠간 세계의 시인들을 초청하고 동유럽에서 휴양온 사람들이 어울려 24시간 내내 조그마한 카페에 모여 술을 마시며 자신이 써온 시를 돌아가며 낭독한다. 소박하면서도 정취가 있는 클래식한 느낌이다. 물론 드루스키닌케이의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이 사람들을 하나로 만든다. 동유럽이라는 국가에서 사람들에게 시의 존재는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혹자들은 시가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은 여전히 동유럽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자본의 논리에 맞서 아직 시의 뜨거운 노래들과 정신이 사람들의 내면에 표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사회주의와 유혈혁명을 지나간 자리에 쓰러진 술병들과 수많은 형식의 시들이 민중의 삶 속에서 공존하며 '노래하는 혁명의 땅'으로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우주피스 공화국 광장.
내가 이 드문 도시 축제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축제를 처음 기획하고 현재까지 전 세계의 수많은 작가와 시인들을 직접 초청한 코르넬류스라는 한 시인의 초청을 통해서였다. 그는 리투아니아에서 문화부장관을 역임했고 대내외적으로 리투아니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인정받는 시인이다. 나는 그를 소설가 하일지 선생으로부터 몇 년 전 처음 소개받았는데, 한국에 그의 작품을 소개하거나 한국방문 때 낭독회를 직접 연출했던 인연이 몇 번 있었다. 한국 문단은 동유럽작가들의 문학세계, 그중에서도 리투아니아의 문학에 대해서는 거의 전무라 할 만큼 생소하다. 때문에 나는 그의 깊이 있는 시적 성찰과 서정적인 작품들이 갖는 신화와 은유의 세계를 한국의 독자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자신의 고향으로 다시 초청한 것이다. 조금 색다른 동유럽의 가을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평온과 시의 뜨거운 노스탤지어가 남아 있는 리투아니아로 한 번 날아가 보는 게 어떠냐고 권하곤 한다.
여행수첩
많은 사람에게 리투아니아라는 나라는 생소하다. 어디 쪽에 붙어 있는 나라지? 하는 물음부터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도 생소하다. 농담삼아 '음악감독을 하는 박칼린씨 정도의 엄마가 리투아니아인이야'라고 하면 그땐 좀 호기심을 보인다. 소설가 하일지의 '우주피스 공화국'의 실제 모델인 도시가 빌뉴스이며 이문열의 소설 '리투아니아의 연인'에도 이 도시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곳으로 묘사된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경청하기 시작한다. 리투아니아는 90년대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국어가 있으며 모국어에 대한 자존감이 강하다. 하지만 리투아니아가 하나의 독립국가로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은 것은 90년대 초반이다. 흔히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리투아니아의 자매들이라 비유되는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함께 이 세 나라는 발트3국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중에 리투아나아의 수도인 빌뉴스는 발트3국의 문화적 교육적 중심지로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오래전부터 이 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동유럽의 파리라고 부를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이며 예술공동체 마을인 '우주피스 공화국'이 실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내 중심의 서점 'MINT VINETU'와 카페 'CAFE DE PARI'는 리투아니아 지성의 산실이다. 빌뉴스 대학생들이 모여 토론과 춤과 문화를 즐기는 곳이다. 이 카페에는 발트해 연안에서 잡아올린 굴 요리가 주 메뉴이며 만원 정도의 가격이면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저녁을 먹은 후 '빌뉴스 현대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동유럽 예술가들의 모던한 설치예술이나 회화들을 감상해 보는 것도 빼놓지 말 것.
그리고 빌뉴스에는 실제로 우주피스 공화국(무료 입장)이 있다. 우주피스 공화국은 리투아니아어로 강 건넛마을이라는 뜻인데 이곳은 유럽의 예술독립가들이 자급자족하면서 창작하며 사는 공동체 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그중에서도 마을 입구의 '우주피스'라는 카페는 꼭 한번 권하고 싶다. 이 카페에서는 매년 각종 전시, 공연이 가득하다. 리투아니아 정부에서는 이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독립기념일인 4월 1일에는 축하사절단을 보내기도 한다. 재밌는 것은 소설가 하일지씨가 주한 우주피스 공화국 대사로 임명받아 현재 활동 중이라는 점. 당신도 동유럽에 가서 한 번쯤 우주피스 공화국의 시민이 되어보길 기대한다.
시내 중심의 '콩그레스 호텔(CONGRESS HOTEL·하루 40달러 정도)'은 특유의 중세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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