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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Douglas MacArthur
최연소 육사 교장. 최연소 참모총장등을 역임후
1930년 대장으로 승진하였으며 1937년 퇴역하였다.
그 후 대일관계(對日關係)가 긴박하였던 1941년 7월
현역에 복귀하여 미국 극동군사령관으로
필리핀에서 근무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맞이하였다.
1942년 초 일본군의 공격으로 비율빈에서 후퇴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동,
1945년 7월에는 필리핀을 완전히 탈환(奪還)하고,
이어 8월에 일본을 항복시키고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UN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하여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 전세를 역전시켜
적을 한만국경까지 몰아내고
한국의 적화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중국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를 하게 되자
그는 만주폭격과 중국연안봉쇄
대만의 국부군(國府軍)의 사용 등을 주장하였고
이로 인해 트루먼 대통령과의 대립으로
1951년 4월 사령관의 지위에서 해임되었다
‘노병(老兵)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 밖에도 수많은 일화를 남긴 맥아더 장군은
1964년 4월 5일 월터리드 육군 병원에서
명예로운 일생을 마쳤다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년 1월 26일 ~ 1964년 4월 5일)는 미국의 군인이다.
생애1880년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스코틀랜드에서 이민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버지 아서 맥아더 주니어(Arthur MacAthur Jr.)(중장 예편)는 행군때 자신도 사병들과 똑같이 걸음으로서, 어린 맥아더에게 지휘관이 먼저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참전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등에 참전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당시 무지개부대(42사단)를 이끌고 프랑스에서 복무하였다. 이어서 윌슨대통령때 최연소 미육군참모총장임명되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초기에 퇴역하였고 2차대전발발시 예비역에서 소집되어, 전쟁중 태평양지역 미육군사령관으로 승진했고, 이어서 원수로 승진하였다. 일본의 항복후에 일본점령군사령관을 지냈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 상륙 작전은 워싱턴등 군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투를 성공적으로 지휘, 전쟁의 양상을 뒤바꿔 놓았다. 그러나 그는 전쟁에서 독단적인 행동에 대한 당시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의 불신으로 인해, 한국 전쟁 후 미국에서 매카시스트 즉, 극단적 반공주의인 매카시즘 추종자로 낙인찍힌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 정규군(중국인민지원군)의 개입을 무시하다가 중국이 전쟁에 수십개 사단급 병력을 보내어 개입하자 만주에 원자폭탄 투하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무모하고 극단적인 주장들은 만약 그가 트루먼에 의해 해임되지 않았다면, 세계대전이 한번 더 일어났을 것이라는 비판의 근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