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올림픽을 맞아 영국이란 나라가 새삼스레 궁금하게 생각되었다.
나의 오래된 인터넷 글 중에서 영국의 역사에 관한 글을 재수록하여 영국의 어제와 오늘을 깊이 생각하여 보았다.
영국은 뭐니 뭐니 해도, 왕권의 종식을 뜻하는 명예혁명으로 왕권의 화신인 찰스 1세를 처형한 나라이다. 물론 명예혁명(1642-1660)으로 영국의 왕권이 완전히 청산된 것은 아니다. 찰스 2세와 제임스 2세의 강력한 반동으로 왕권은 회복되었고, 이어서 일어난 권리선언으로 회복된 왕권은 다시 무너지고, 입헌군주제가 성립된 것이다.
인종자체가 다른 아일랜드와 스코트란드와 잉글랜드의 갈증은 영국이 안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갈등의 요인이다.
오늘날 엥글로 색슨족과 그들의 언어인 영어가 세계를 지배하다 시피 하는 것은, 명예혁명으로 어려움에 처한 영국인들의 일부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같이 미국으로 건너온 프랑스인들을 구축하고 신대륙 개쳑에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그 나라가 세계최강의 미국이 된 탓으로 영국은 다시 태어난 것이다.
구석기 시대(기원전 2백오십만년전에서 일만년 전까지)에 대륙에서 섬으로 이주해온 민족이 있었다. 제 2차 빙하기 시대에 이베리아반도(스페인)에서도 이주해 왔다. 기원전 6세기 4세기 시절에, 중앙 유럽으로 부터 켈트 족이 이주해 왔다. 이들을 할시타인 문명이라고 하며 철기 시대를 열었다. 이들 켈트 족은 2차에 걸쳐 이주해 왔는데, 일차가 고이델 족 혹은 게일 족이며 이들은 아일랜드와 스코트란드로 흩어졌고, 이차 이주는 킴족 혹은 브리튼 족이라고 하며 잉글랜드를 개척하였다. 오늘날 브리티쉬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아일랜드와 스코트란드, 그리고 잉글랜드에 민족 종교분규가 잦은 이유가 이런 민족적인 문화의 차이 때문이다. 기원전 1 세기에 로마의 시저의 침입을 받아 정복되었다. 로마 멸망 때(기원 후 476)까지 지배를 받았다. 시저의 영국 정복의 가장 큰 이유는, 영국의 켈트인들이 대륙의 켈트인들과 결합하여 로마를 위협할까봐서 였다. 3세기 말 부터 섹슨인들의 침입이 시작되었고, 이어 게르만 민족인 엥글인들의 침입이 이어졌다. 이들이 바로 엥글로 색슨인들이다. 6세기 말에는 7왕국 시대가 전개되었으며,프랑스가 탄생할 즈음인 825년 웨섹스의 액버트가 잉글랜드 남부에 통일 왕국을 건설하였고,이어 927년에 전 영국을 통일 하였다. 영국의 중세는 노르만디 공 윌리엄의 영국 정복으로 시작한다(1066). 윌리암은 바이킹 출신 프랑스인이므로 근 300년간 윌리암에게 정복된 영국은 불어를 국어로 사용하였다. 1154년 헨리 2세가 즉위하였는데, 이 사람이 노르만디 공작 플랜태저넷 공이고, 이 사람의 부인은 프랑스 카페왕조의 루이 7세의 왕후이다가 소박을 맞은 알이에노르였다. 이 부인은 보로도 지방의 다른 이름인 아키텐 지방을 다스리던 아키텐공작의 외동딸로서 막강한 유산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영국 왕이 됨으로서 자연적으로 노르만 지방과 아키텐 지방-다른 말로 앙주 백 령 이라고도 한다-은 영국의 영토가 되어, 영국은 브리튼 섬 지역과 프랑스 서남부를 아우르는 거대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존왕 때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이 영토를 대부분 잃었다. 1215년 전쟁으로 인한 무거운 과세에 저항한 귀족들이 런던으로 쳐들어가 왕으로부터 마르나 카르타(권리장전)을 얻어 내었다. 1264년 시몽 드 몽포르가 이끄는 귀족당이 왕당을 격파하였다. 1266년 성직자.대제후, 주 대표를 포함하는 의회를 열었으며 이것은 대의정치의 시범인 영국 하원의 시발이 되었다.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와 백년 전쟁을 시작하였다(1337-1453). 그러나 패전하였다. 랭카스터가와 요오크 가의 왕위계승전쟁인 장미전쟁이 발발하여 정세는 불안하였다.(1445-1485) 근세에 들어와 영국에서의 가장 큰 사건은 영국국교의 확정이었다. 강력한 전제군주인 헨리 7세와 헨리8세 때, 이들은 카톨릭으로 부터 독립하여 국왕이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는수장령을 발표하여 영국 국교회를 확정 지었다. 메리 여왕과 엘리자베스 1세를 거치면서 이것은 더욱 굳어졌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 격파, 1600년 동인도회사 설립 인도 시장 석권 하지만 국내적으로 정치가 복잡하게 얽혀,왕과 의회,국교도와 신교도 귀족과 신흥 젠트리 사이의 알륵은 한층 가열하였다. 결국 혁명이 일어나 1642-1660년 사이에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 , 찰스 1세가 처형되었고 이어서 공화제가 선포되었다. 그러나 영국이 순수 공화제가 되지 못한 이유는, 다음찰스 2세와 제임스 2세가 강력하게 반동하여, 공회제를뒤업고,1688년 오랜지 공 윌리엄을 윌리엄3세로 옹립하는데 성공하였고, <권리선언>을 승인케 한 명예혁명으로 드디어 절대왕권이 무너지고, 이어서 의회주의적 제한 왕정인 입헌 왕정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의회정치의 융성으로 토리당(보수당)과 휘그당(자유당)으로 양분하여 양당정치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1707년 앤여왕 치세에 스코드랜드를 병합하였다. 1714년 하노바 왕조 시대에는 근대적 책임내각제가 확립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이스페니아계승전쟁,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에서 승리하였으며,1763년 파리 조약 결과 프랑스를 구축하고 북아메리카와 인도에 광대한 식민지를 개척했다. 근대로 들어옴으로써, 영국은 조오지3세 시대에 산업혁명을 맞는다.근대 사회에서 영국은 자유주의적인 식민지 개척에 적극 나선다. 벨기에의 독립을 돕고, 터키를 도와 러시아의 남진을 막으며, 아편전쟁 애로우호 사건으로 중국의 쇄국을 부수며,카나다를 자치령으로 하고 오스트레일리아,남아연방을 식민지로 개척한다. 1919년 일차 대전을 맞는다.프랑스와 손잡고 독일침략을 분쇄한다. 1939년 나치스 독일의 이차대전을 맞는다. 프랑스와 협력하고, 미국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승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