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의 식물
이 작품은 1887년 뜨거운 태양을 쫓아서 마르티니크섬에 얼마간 체재하면서 그렸다. '원주민의 남녀는 서인도의 노래를 부르면서 종일 맷돌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그칠줄 모르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단조롭다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이만큼 변화가 풍부한 곳은 없을 것이다. 자연은 색이 선명하고 기후는 온난하며 때맞추어 시원한 바람이 분다.' 그는 이섬의 환경에 만족스러웠으나 여기서도 가난과 병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은 그가 초기에 자주 나타내던 전후경(前後景)의 대조적 구도법을 이섬의 자연에 의하여 장식적으로 바꾸어 나간 흔적을 느끼게 한다. 이 섬의 강한 태양은 프랑스의 힘없는 태양빛 아래의 경우처럼 인상파적인 분할적 수법(分割的 手法)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 섬의 체험은 후일 그를 타히티로 가게 하는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뜨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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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잔 밤부리지
1891년 6월 4일, 고갱은 타히티에 도착한 3일만에 부인 메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조금 있으면 초상화를 좋은 값으로 두세 장 그릴 수 있게 될 것 같소. 그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사방에서 물어오고 있기에 말이오. 이번엔 내가 될 수 있는 한 배짱을 좀 퉁기려고 하고 있소 그러는 것이 좋은 값으로 사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오.' 이 작품도 그가 말하는 초상화의 하나이다.
모델은 당시 타히티의 수도 빠뻬테에 사는 영국여성(英國女性)이었다. 타히티 궁전에서 당시 의식(儀式)이나 축전(祝典)을 거들거나 통역을 하거나 했는데, 고갱이 먼저 그 여성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 것이다. 이 작품에는 아직강한 타히티의 작품적 특색은 나타나지 않고 있어, 아를르에서 고호와 함께 그렸던 <루랭 부인의 초상>을 상기시키는 온화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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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히네 노 테 치아레
고갱이 타히티에 도착하여 얼마간 지난 후에 그린 작품으로, 간혹 그의 오두막집에 찾아오곤 하던 이웃 여인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녀는 예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는 구라파적 기준에서 보았을 때 그럴 뿐이다. 어쨌든 역시 아름다운 것이다. 그 얼굴 생김새의 어디를 보나 곡선의 매듭 속에 라파엘로적인 조화가 있다. 조각가가 살을 붙인 것 같은 입은 온갖 말을 하고, 즐거움과 괴로움과의 입맞춤을 말하고 있었다. 그 울적한 표정 속에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뒤엉켜 의연함 속에 순종(順從)함이 있었다. 미지(未知)한 것에의 두려움이 적당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서 정열을 기울여 일을 했다. 그 초상은 내 마음의 눈이 인정한 것을 그리려고 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내면을 그리려고 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노아노아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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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 오라나 마리아
'그러나 나는 50호의 그림을 한 점 그렸다. 노란 날개를 가진 천사 하나가 두 사람의 타히티 여인에게, 타히티 사람인 마리아와 예수를 나타내고 있는 그림이다. 그것은 파레오를 걸친 나체화이다. 파레오라고 하는 것은 꽃모양이 있는 일종의 면포(綿布)인데 말이야,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는지 허리에 감는 거야. 배경은 지극히 어두운 산과 꽃이 피어 있는 나무들, 길은 짙은 보라색으로 전경은 에머랄드 그린, 왼편에는 바나나가 있다. 나는 이 그림이 제법 마음에 든다.'(1892년 3월 11일 몽프레에게) 고갱이 브르타뉴 이후 타히티에서도 화면에 간혹 기독교적인 주제를 취급하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를테면 중경(中景)의 두 여인의 모습이 자바 사원의 대상 부조(帶狀浮彫)에서 가져온 것은 원시의 신성(神性)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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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 레리오아 : 꿈
'군함이 10일쯤 출항을 연기한 것을 이용하여 다시 한 점의 그림을 완성했다. 서둘러서 그렸지만 지금까지의 것보다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테 레오리아 : 꿈>이라는 것이 그 제목이다. 이 그림에 있어서의 모든 것이 꿈인 것이다.
아이도, 모친도, 오솔길을 가는 말에 탄 인물도, 말하자면 이것은 화가의 꿈인 것이다. 그런 것은 그림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어째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다분히 그런 일은 없을 줄 안다.'
(1897년 9월 12일 몽프레에게) 이 그림 속에 그려져 있는 것은 고갱의 오두막집이다.두 쪽으로 갈라져 있는 왼쪽은 화실로서 '나는 이것을 조각으로 장식하여 제법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라고 그는 쓰고 있다. 두 인물은 들라크로아의 <알제리의 여인>을 상기시키는 포즈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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母性
초록의 대지 위에 한 여인은 과일을 들고, 한 여인은 꽃을 들고 서 있다. 두 여인의 보호 아래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어머니는 타히티의 성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물의 뒤쪽에는 노란색 하늘, 그 속엔 분홍빛 구름이 걸려 있고, 오른편 하늘로 내려온 나뭇가지에는 꽃이 매달렸다. 대담한 색 배치와 건실한 구도로써 힘찬 교향악을 이루고 있다. 고갱의 어머니 아리느는 고갱이 하급 선원으로 항해 중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머니의 눈길은 부드럽고도 위엄이 있으며 맑고 애정이 넘쳤다.'고 말했었다. 그는 그의 딸에게 아리느라는 어머니와 같은 이름을 붙여 사랑했었는데, 1896년 딸이 급사하여 그는 심한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이 작품은 항상 그에게 깔려 있던 슬픈 마음의 바탕에서 우러난 행복한 모성에의 찬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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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는 소리
1901년 11월, 고갱은 몽프레에게 자기 생활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한쪽 구석에 조그마한 잠잘 곳을 둔 커다란 아틀리에, 이것 저것 모두 선반에 정리하여 손이 닿는 곳에 있다. 그늘진 곳에 달아맨 그네에서 낮잠을 자고 있으면, 3백미터 앞의 바다에서 야자수의 숲을 넘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여기서는 시(詩)가 저절로 생겨난다. 시상(詩想)이 떠오르는 것은 그림을 그리면서 몽상에 잠겨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 작품은 고갱의 이런 말들을 상기할 수 있게 한다. 전경의 풀밭 빛깔은 화려한 꽃밭과도 같은 빨강, 분홍, 노랑색 들의 해조(諧調) 뒤쪽의 잔디밭을 앞에 하고 여기 저기 선명한 나뭇가지 사이로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듯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있는 이들의 귀에는 어떤 소식이 전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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