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그림을 그린 적이 없는 유일한 화가라 불리울 만큼 그의 그림은 밝고 화사하며 아름다운 그림들 뿐이며, 따뜻한 색을 즐겨 사용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저절로 따뜻한 느낌이 느껴지게 한다. 너무나 가난했지만 희망을 그렸고, 아름다운 빛을 묘사했으며 특히 검정색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결국 르느와르의 그림은 삶의 환희와 기쁨이 묻어나는 빛과 색채의 예술임에 틀림이 없다.
르느와르처럼 신화로 남은 화가는 많지만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며 낙천적으로 살았던 화가는 없는 것 같다. 생전에 그림 한 점 팔지 못했으나 지금은 범작마저 몇백억원에 팔리는 빈센트 반 고흐가 그렇고, "영광을 막 잡으려는 순간에 죽다"라는 묘비명처럼 서른여섯에 요절한 모딜리아니도 그렇다. 물랭루즈의 꼽추 화가 툴루즈 로트렉, 멀고 먼 남태평양 타이티까지 흘러갔던 고갱, 살아 생전에 예술가로서 누릴 수 있는 성공과 명예, 부를 다 얻었지만 결코 행복한 삶을 살다가지 못한 피카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림은 사람의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환희의 선물이 되어야 한다" "그림은 즐겁고 유쾌하고 예쁜 것이어야 한다" "풍경일 때는 그 속에서 산책을 하고 싶어지는 그림, 여체를 그린 그림일 때는 그들을 껴안고 싶어지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철학으로 삶의 기쁨과 환희를 현란한 빛과 색채의 융합을 통해 무려 5,000 여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젊은 시절 가난했던 이유로 모델을 구하지 못해 인물화를 그리지 못했던 르느와르는 운 좋게도 Lise란 18세 소녀를 친구를 통해 알게되었는데 르느와르가 31세가 될 때까지 그의 작품 모델이 되어주었다. 그의 전기작품에 자연과 함께 등장하는 여인은 거의 전부가 그녀이다.
결국 40세 즈음에 르느와르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는데, 무려 19살이나 연하인 20세의 Aline이란 여성이었다. 1890년대 말엽에 이르러서는 지병인 관절염이 점점 악화되어 손에 붓을 묶어 놓고 그릴 정도로 부자유스러운 몸이 되었지만 누드화를 비롯해 왕성한 작품활동은 계속했다. 하지만 그의 말년 작품들은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게 사실이다. 차라리 작품활동을 하지않은 편이 좋았을지 모르겠다. 은퇴할 시기에 용감하게 은퇴하는 것도 멋진 일이기 때문이다.
후기에는 그의 부인 Aline(1860~1915)을 비롯해 Aline의 먼 친척이었던 가브리엘(1878~1959)과 데데라는 별명을 지닌 앙드레 외슐렝이 르느와르(1841~1919)의 모델 역활을 나누어 맡았다.
가브리엘은 둘째 아들 장이 태어나던 1894년 보모로서 르누와르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은 후 1914년 미국인과 결혼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20년간 르느와르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주된 모델이었다.
르느와르가 아무리 전문모델을 싫어했다지만 아내와 사촌지간이었던 가브리엘에게 누드 모델 노릇까지 요구한 것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소위 예술을 위해 헌신할 수는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결국 르느와르의 아내 Aline의 질투로 르느와르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앙드레 외슐렝도 르느와르의 마지막 누드 모델이었지만 르느와르가 세상을 떠난 후 둘째아들 장과 결혼을 하여 르느와르 집안의 며느리가 되는 아이러니한 일도 생긴다. 하지만 두 모델 모두 르느와르와 사랑하는 관계까지는 발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림이란 건 그렇지 않은가, 벽을 장식하려고 있는 거야. 그래서 가능한 한 화려해야 해. 내게 그림이란 소중하고 즐겁고 예쁜 것이라네. 그렇지, 예쁜 것... 그림이 위대한 동시에 즐거울 수 있다는 개념을 받아드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평범한 미술품 수집가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 같은 이 말은 인상주의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가 했다. 그는 말 값을 하듯 평생 아름답고 즐거운 장면만을 그렸다. 슬픔이나 고단한 삶의 찌꺼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의 그림들을 보자면 화가의 일생도 그림처럼 행복했거니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르느와르 자신은 가난에 쫓기고 콤플렉스에 시달린 삶을 살았다.
삶이 고단해서였을까? 그의 그림은 누구보다도 밝고 아름답다. 여인들은 터질 듯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며 농염한 살내음을 풍기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과 단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과일은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먹고 마시고 떠드는 유쾌함은 다른 어느 인상주의자의 그림보다도 실감난다. 인생에 괴로운 것이 많다면 그림까지 그럴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그의 좌우명대로 르느와르는 아름다운 것에 설레고 아름다운 것을 창조해냈다. 화가가 남긴 말은 솔직하다.
"아! 저 젖가슴! 얼마나 부드럽고 중량감 있는가! 금빛 색채를 띠며 밑으로 처진 저 아름다운 기복... 만일 젖가슴이 없다면 내가 과연 인물들을 그렸을까 의심스러워..."
르느와르가 여성의 누드화를 자주 그렸던 탓에 그가 여성을 존중하지 않앗다거나 혹은 여성의 육체적인 면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르느와르의 초상화 작품들을 보면 그가 모델들에게 진심어린 찬사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녀들의 시선, 태도, 미소는 행복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꿈에서도 가질 수 없는 능력, 즉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네"라고 르느와르는 말했다. 그러나 르느와르는 이러한 말을 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그림과 초상화를 통해 이 사실을 직접 증명해 보였다.
오늘 하루 스트레스나 우울했던 일이 있었다면 르느와르의 밝고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면서 마음을 바꾸어 보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 떨쳐 버리고 행복으로의 여행길에 나서보자.
기간 / 2009년 5월 28일 ~ 9월 13일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시골무도회 / 1883년 작
두 남녀는 거조하고 반짝거리는 빛 속에서 몸을 밀착시킨 채 아라베스크 춤을 추고 있다. 젊은 남자의 팔에 안겨 춤을 추고 있는 여인의 은근한 시선이 마치 관람객을 바라보는 듯하다. 여인의 발그레한 뺨, 바닥에 떨어진 남자의 모자에서 시골무도회의 흥취가 물씬 느껴진다.
이 여인은 훗날 르누아르의 아내가 된 Aline이고, 남자는 르누아르의 친구로 기자이자 작가였던 폴 로트로 알려져 있다. 사진으로만 보던 화려한 치마의 색감이 직접보니 더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정도였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바느질하는 마리-테레즈 / 1882년 작
옆모습이고, 바느질에 몰두하고 있으며, 시선은 바느질 작업에 고정되어 있다. 따사로운 햇살의 화려한 색깔과 빛깔이 자연스럽게 비치고 있는 한낮의 풍경이다. 이 작품에는 어떠한 엄숙함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르느와르는 다만 단순하고 순수한 아름다움과 걱정없는 평온한 인생의 즐거움을 표현하려 했을 뿐이고, 화사한 빛이 하나되어 어우러지는 그 유연성과 순간성을 나타내고자 했다.
풍요로운 자연의 풍경속에서 마리-테레즈의 미모는 마치 활짝 핀 꽃과 같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마리-테레즈가 입고 있는 옷과 장식의 파란색, 주황색, 빨간색은 뒷 배경의 무성한 꽃들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르느와르는 이제 막 피어 오르는 소녀의 아름다움과 함께,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작업에만 집중하고 있는 소녀의 수줍은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는 것 역시 잊지 않고 있다.
피아노 앞의 두 소녀 / 1893년 작
19세기 말엽 프랑스의 가정생활 환경을 상세하고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거칠거나 엄격함 등을 절제하고 색채를 엷고 부드럽게 온화한 황금빛등이 전형적인 르느와르적인 표현법이다.
두 아가씨가 한 멜로디를 익히려고 열심히 악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두 사람의 마음이 융합되어 있음을 보여 주려고, 르느와르는 부드러운 색조의 하모니를 꾀하고 있다.
여유만만한 곡선의 굽이침이 화면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는데, 르느와르는 이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간을 몹시 좋아했다. 주제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범속한 장면이긴 하지만, 이러한 일상성 속의 유연함을 그는 다양한 색조로 포착한 것이다.
빨강, 노랑, 파랑, 녹색 등 원색을 기조(基調)로 하여 이에 대비된 버무려진 색감으로 인물을 감싸고 있다. 그는 대상물 하나하나를 선명한 빛깔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엄격한 양식]을 거침으로써만이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형(形)과 색(色)의 교향(交響)이다.
마리-젤리 라포르트의 초상 / 1864년 작
많은 초상화를 그렸던 르느와르의 작품을 평할 때 [라꼬양의 초상화]와 더불어 자주 보여지는 초상화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후 3년만에 그린 작품인데도 뛰어나다. Camille Corot이나 앵그르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이 작품속 여인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게된다. 촉촉한 눈매와, 약간은 울음을 참는 듯한 앙다문 듯한 입매를 보면서 몇번을 기웃거렸던 작품인데 도록의 사진 품질이 하급이라 여러분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국은 언제 외국처럼 제대로 된 도록을 볼 수 있을지 짜증스럽다.
라꼬양의 초상화 / 1865년 작
이번 전시회에 전시가 안되어 아쉬웠던 작품들로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작품들이다.
Le Moulin de la Galette / 1876년 작
몽마르트르에 있는 서민적인 야외 무도장에서 초여름의 햇빛이 나무 사이를 비추고 무리를 이룬 젊은 남녀의 춤과 즐거운 놀이를 그린 걸작.
The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 1881년 작
젊은 날의 기쁨을 찬미하는 이 그림속 인물들의 다양한 동작들은 우아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있다. 보트 놀이나 공원에서의 사교모임에서 보이는 여인들의 우아한 의상, 아이들과 꽃의 등장으로 이상주의의 대기와 광선의 효과를 느끼게 한다. 어두운 명암을 쓰지않고도 햇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창조하는 르느와르의 기법이 두각을 나타내는 작품이다.
테라스에서 / 1879년 작
젊은 여인과 아이, 그리고 뜨개질 바구니 등은 피라미드 구도를 이루며, 인물들은 특정의 순간에 포착되어있어 친근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모자의 붉은 색은 주변의 색에 비해 두드러져보인다. 르느와르 그림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다. 시카고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는데 직접 가보고 싶을 정도다.
Gabrielle with Jewelry / 1910년 작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성숙해 가던 시절에 얻었던 색채에 대한 지식으로 생동하면서도 미묘한 색채감을 보여주고 있다. 마비의 증세에도 불구하고 그를 휘몰았던 그림에 대한 의욕은 줄어들지 않았고 감동적으로 무르익은 이 작품은 어떤 일정한 방법이나 규칙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있다.
작품의 여인은 실제의 가브리엘이다. 어린애들의 보모로서, 가정부로서, 그리고 마침내는 늙고 병든 화가의 간호인이자 모델로서 이십여년 동안 르누와르의 집안일을 돌봐준 여인이었다. 이 그림에서 가브리엘은 특별히 독자적인 개성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어 있지 않으며, 억지로 꾸미려고 애쓴 흔적 또한 보이지 않는다. 진주빛이 감도는 회색과 윤기가 도는 흰색의 활기찬 붓질은 블라우스에 투명한 고치 같은 효과를 부여하고 있으며 색채가 절정을 이루고 있는 얼굴은 단순한 머리 모양새로 인해 돋보이고 있다.
Oarsmen at Chatou / 1879년 작
햇살과 물빛을 잘 잡아내고 있는데 주황과 파랑은 원래 보색이라 배와 물은 더욱 대비되면서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어 인상파 화가다운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Sleeping Girl / 1880년 작품
감각적인 즐거움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Seated Bather / 1884년 작
목욕하는 여인네들 그림중에서 널리 알려진 그림인데 비교적 젊은 시절에 그려진 작품이라 그런지 여인의 풍성함이 노년기에 그려진 작품들보다 훨씬 덜한 편이다.
Dance at Bougival / 1883년 작
이번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은 아니나 위 시골무도회 그림과 비교하고자 선택한 작품이다. 밝고 신선하고 따뜻하고 풍요한 색채로 건강할대로 건강한 대기의 향기가 넘쳐 흐른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 여행에서 알게된 폼페이 고대벽화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르느와르는 그때까지의 인상파풍의 미묘하게 배치되는 색채의 광휘를 억누르고, 대비를 이루는 아름다움과 명쾌한 방향으로 나갔다. 이 작품은 이러한 변화의 전환점을 이루는 시기의 것으로 당당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전경에 춤추는 남녀의 백색과 짙은 청색의 대비가 여성의 빨간 두건을 축으로 해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그것을 둘러싸고 흥겹게 담소하고 있는 배경인물들의 원근의 대비도 아주 멋진 그림이다. 종래의 관능미의 표현에서 벗어나, 건강 그 자체와 색채의 대비만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려한 르느와르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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