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보영 / 낭송 고은하
기다림이 행복으로 느껴지기까지는
되돌리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 있었다
생각만 해도 좋은 그대가 떠난다고 했을 때
비늘 떨어진 나비들이 담장 밖으로 날아가고
거꾸로 돋은 가시들이 내 안을 찔러댔다
사랑이란, 나뭇잎처럼
아픈 것을 알면서 보내야 하는 것
거짓이라 해도, 그대가
원한다면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머물수록 상처만 더 커진다며
사랑은 나를 두고 저만치 멀어져 갔고
기억들은 돌아와
함바 식당 작업복처럼 가슴에 걸렸다
잊는 것이 떠난 사람을 위한 일이라며
모질게 마음먹고 기억들을 벗겨 냈지만
벗길수록 선명하게 다가서는 모습들
허리 꺾인 일상은 힘없이 거리를 배회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은
날 세운 절망으로 내 안을 난도질 해댔다
더 베일 곳 없는 육신 앞에 절망은 무디어 지고
겹겹이 쌓여가는 시간은 모르는 척 지나갔지만
메아리는 처음 만난 날에 동그라미만 칠 뿐
힘겹게 그해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새로운 한 해가 더 지나길 여러 차례
이제는 기다림이 행복을 꿈꾸는 언덕
언젠가 돌아오겠지
시들지 않게 마음 적셔 맞아야겠다며
언덕에 싱싱하게 뿌리 내릴 집 한 채 짓고
아름다운 흔적들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강 떠난 연어가 강으로 돌아오면
내색하지 않고 기다리던 강물이 가슴을 열듯
내 곁을 떠난 그대가 돌아오면
꽃 그리움 깔아두고 행복으로 맞을 거야
마음을 열어둔 채, 오늘도
내 안으로 마중 나갔다가
언덕에 그리움만 걸어 두고 돌아온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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