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스크랩] 여름처럼 뜨거운 어느 봄날의 눈물 / 정소성

鶴山 徐 仁 2008. 9. 7. 18:55

 

 

여름처럼 뜨거운 어느 봄날의 눈물

 

                                                                                                                         정 소 성 

  

  오늘(4/17) 강남 삼성의료원에 같은 직장에서 한 30년 같이 근무하셨던 분의 부인상에 갔다. 직장 동료였을 뿐만 아니라, 고향(안동, 봉화) 사람이라 각별히 지냈다. 고려 말 충신 이색의 후손으로, 고향 평해에 조상의 사당과 옛 거처를 지으려 하나 고려시대 집의 형체를 몰라 고심하던 분이다. 정년 하신 지 한 5년은 넘으신 것 같다. 재경 안동 봉화 영덕 평해 출신 교수들의 회장이라는 돈 안 생기는 자리를 맡고 있다.

 

  이 분이 불과 사나흘 전에 나에게 회원들의 주소를 기재한 수첩을 만들어야겠다는 전화를 했다. 그때, 그 분의 목소리는 죽을 정도로 아픈 아내를 둔 사람의 그것은 아니었다. 차분하였고 다소 기분이 좋은 듯했다. 빈소에서 예를 올린 나를 그 분은 손을 그러잡았다.

 

  "얼마나 오래 병석에...?"

 

  "병석이라니! 감기 한번 안 걸리던 사람이요."

 

  "혈압, 혈당은?"

 

  "정상이요. 도무지 무슨 징조는 전혀 없었어요."

 

  "그래도 남이 모르는 무슨 징조가...?"

 

  "전혀! 아침에 잠 깨 거실로 나갔더니 이 사람 잠을 자는 듯이 소파에 바로 앉아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여보 일어나

   했지. 아니 이게 웬 일이냐... 심장이 멎어 있는 거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아무리 소생술을 써도 소용이 없었어..."

 

  "어쩌면..."

 

  "벼락이야 벼락..."

 

  이 분은 소리 없이 울었다. 아직까지 이 분의 슬픔은 그대로 나의 가슴으로 전해져 오지 않았다. 다만 충격으로만 받아

들여졌다. 12시쯤이었는데, 1시에 발인이 있다하여, 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 분은 내가 와 준 것이 그래도 고마운지 밥을 먹는 내 식탁으로 와서 경황이 없는 가운데에서 짝을 잃은 슬픔을 천천히 토로했다. 이 분의 전공은 수학이다. 그래서인지 정말 가식이 없는 사람이다.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도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사람이다.

 

  "장지는?"

 

  "정 교수, 우리는 이 세상에 살다가 가는 흔적을 남기지 말자고 다짐을 했었어요. 그래서 오늘 벽제로 모시라고 했어.

   그래서 시간을 맞추느라 오후 1시 발인을 하기로..."

 

  "하지만 너무 쓸쓸한 것 같습니다. 아직 선생님는 20년은 더 사실 텐데..."

 

  "내 나이 70인데 그렇게 오래 살기는 살까... 홀몸으로 그래 오래 살아보아야 무슨 대순가... 외롭기만 하지...

   죽어라 고생만 시켰어..."

 

  이 분의 말씀이 나의 처지에 오버랩되면서 서서히 나의 자아에 덮씌워지기 시작했다. 충격을 넘어서서 감동이 가슴에 이는

것을 느꼈다. 죽어라 고생만 시켰다고...  으음... 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월세방부터 시작하여 수도 없이 전세를 전전하였던 내가 아니었던가... 쌍동이를 낳고 석달간 이승과 저승을 배회하지 않았던가... 소설을 씁네 무슨 외국어를 합네 하면서 별 지랄 같은 삶을 산 녀석이 아니던가... 한 시간을 기다려 발인식에 참석했다. 먼 시선으로 그 분은 남아준 나에게 감사하는 눈치였다. 장성하여 가정을 이룬 두 아들이 분향하였고, 딸과 사위가 분향하였다. 이윽고 선생님이 아내의 영정 앞에 섰다. 그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영정 앞에 엎드려 통곡하였다.

 

  "여보, 정말 가는 거요.... 이 못난 놈을 버려두고... 내 너무 잘못했오. 나의 허물을 용서해 주구려..."

 

  어찌나 목소리가 절절했던지 많은 사람들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뜨거운 눈물이 뺨을 적셨다. 수 십년 이래도 남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근 30년 전에  아버님과 장인 어름을 유택으로 모셨지만 이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린 기억이 없다. 오히려 제삿상 앞에서 살아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한 아버님을 추억하고 눈물을 흘린 적은 있다. 한 번 터진 눈물은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다 늙은 내가 아직도 이런 어린아이 같은 데가 있는 것일까. 오후의 스케줄 때문에 나는 벽제행을 하지는 않았다. 선생님을 길고 검은 리본이 달린  캐디락에 태워 보내면서 나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했다. 짝 잃은 기러기가 혼자 창공을 나는 것을 보아야만 하는 사람의 심정은 참담 바로 그것이었다.

 

  캐딜락에 안에 앉아 있던 선생님은 다시 문을 열고 나의 손을 잡았다. 유족도 아닌, 단순한 문상객인 나를... 나는 여름처럼 뜨거운 봄철의 한 날 흔들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혼자서 삼성의료원에서 대청 역까지 걸었다. 근 두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남아 있는 이 초개같은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나...

 

 

 

< 출처 : 정소성의 문학세계 >

 

출처 : 경대사대 부중고1215회 동기회
글쓴이 : 카페지기(여정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