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는 슬픔의 그늘 - 김옥영
자기 자신을 껴안는 법을 배워야지. 세상은 발붙일 데 없어. 8월 염천 불같이 달아오른 슬레이트 지붕, 한 발자국만 미끄러져도 살이 데고 호박넝쿨은 추녀 끝에서 여직 멈칫거리지. 멈칫거릴 시간은 없어. 여름은 곧 가고 -허공중에선 누구나 붙잡을 데 더듬는 덩굴손이 되는데, 필요한 것은 시간과 사랑. 태양이 그의 회로를 달구기 전에 태양보다 빨리 잎 피우는 일, 제 그늘 속에 저의 발을 담그는 일.
살아 있는 것들에선, 끊임없이 수분이 증발하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 불볕 드실대는 한낮과 길고 오랜 비 몰아치는 밤을 위하여 집 짓는 사람들. 등뒤에서 느닷없이 무릎 꺾여 꿇어앉기 전에 지붕 위에서건 어디서건 다시 튼튼한 지붕 올리고 땀에 젖은 꿈 하나 고이 들이는 그늘.
슬픔이 슬픔의 튼튼한 잎새 하나 펴올려서 슬픔에는 슬픔의 그늘 주는 일 고통에는 고통의 그늘 주는 일
자기 자신을 껴안는 법을 배워야지. 8월 염천 불같이 달아오른 슬레이트 지붕 위로 기적처럼 무성한 호박넝쿨, 꽃 필 것 다 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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