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아시아 중동圈

[스크랩] 태산

鶴山 徐 仁 2007. 7. 18. 22:17

― 일  자 : 2007. 3. 1~ 3. 4 

― 일  정 : 3/1일 13:30 정부 3청사앞 리무진 출발. 인천16:30시도착 수속후 18:00 공항출발,  청도도착, 치박 임치구 이동, 석식,호텔, 3/2일 조식, 태산 도보등정 하산 , 치박 임치구 이동, 석식,호텔. 3/3일 조식, 고차박물관 관광 후 청도이동, 노산등정(도보), 석식후 야시장, 호텔. 3/4일 조식, 공항이동, 10:30청도출발, 인천도착후 중식, 출발. 17:00 대전도착

― 인  원 : 9명

― 비  용 : 1인당 항공료 190,000 + 87,300원(텍스) = 277,300원, 차량 19인승 155불(142,000원) 기사팁 200불(20,000원), 국내이동료 대전-인천-대전 리무진 30,000원, 기타잡비 50,000원

― 1인당 : 520,000원


3월 1일 저녁 8시가 다되어 청도(靑島)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인근 식당에 들러 저녁식사를 마치고 버스로 3시간을 달려 치박시(淄博市) 임치구(臨淄區)에 있는 齊都大酒店에 여장을 푼다. 오는 동안 가시거리 30~40m 로 좌욱한 안개속을 달리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 청도공항에서 임치(臨淄)까지는 215㎞이고 임치에서 태안시(泰安市) 태산(泰山) 까지는 168㎞이다.

임치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서둘러 태안시 태산으로 향한다. 태산은 산중턱에 위치한 중천문부터 정상지역인 월관봉(月觀峰) 케이블카 정류장(索道站)까지 케이블카가 운행하고 있으며 15분이 소요된다. 대략 케이블카를 타고 옥황정 등 정상부근 관광을 하고 내려온다면 2시간 남짓 소요된다.

우리일행은 대묘(岱廟)부터 걸어서 돌계단으로 된 일천문(一天門) - 중천문(中天門) - 남천문(南天門)으로 올라 정상인 옥황정(玉皇頂, 1,532m)에 오른다. 우리 일행을 안내 해 주었던 가이드는 하산까지 5시간 주었지만 중천문 식당가에서 1시간가량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정상부근 관광 후 케이블카로 중천문으로 내려와서 버스로 하산을 마치는데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산동성 관광지도>
2006년 6월 초순 배를 타고 다녀왔던 곤유산과 구정철차산이 반도같이 튀어나온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지도상으로는 가까워 보이나 버스로 2시간 거리다. 항공편으로 3박 4일 일정이면 청도 노산, 태안 태산, 곡부의 공묘까지 둘러보고 오는길에 치박의 순마갱(殉馬坑)과 고차박물관(古車博物館)도 관광할 수 있는 일정이나, 뒤늦게 항공권을 구입하느라 곡부(曲阜)의 공묘(孔廟)는 아쉽게도 관광을 하지 못하였다.   



<태산관광 안내도>

초입부터 돌계단을 걸어서 태산 최고봉 옥황정까지 오르는 주된 등산로인 동로유람구(東路游覽區 ; 紅門游覽路). 등산하였던 루트를 붉은색으로 표시하였다.  

 

<泰  山>

泰山은 예부터 岱宗, 岱山, 東岳 등으로 불리다가 春秋時代 泰山이란 이름이 되었으며, 최고봉 옥황정(玉皇頂, 1,532m)이 정상으로 중국의 다른 명산들에 비하여 높거나 빼어난 경관은 아니다. 태산 등로 초입의 대묘는 역대 제왕들이 태산에 오르기 위하여 봉선(封禪)의식을 하여 하늘에 제를 지내고 태산 산신령께 제사를 드리던 곳이다. 황제는 문무대신 백여명을 거느리고 산에 올라 정상에서 하늘을 향하여 제사를 지내는데 이런행사를  "封"이라고 하고 산에서 내려와 깨끗한 곳을 찾아 지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행사를 "禪"이라고 한다.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지냈던 곳으로 그자체만으로도 중국인들에게는 하나의 신앙이다. 태산에 오르면 영생을 얻는다는 믿음이 있어 일생 동안 태산에 한번 오르는 것이 중국인들의 소원이라고 할 정도이다. 태산은 오악(五岳)의 으뜸이다. 중국의 오악은 한무제 신작(神爵) 원년에 조서가 반포되면서 정해졌다. 동악은 산둥성 태산(泰山), 서악은 산시(陝西)성 화산(華山), 남악은 안후이성 천주산(天柱山), 북악은 산시(山西)성 항산(恒山), 중악은 허난성 숭산(嵩山)으로 정했다. 그 후 수나라 문제가 남악을 후난성 형산(衡山)으로 바꾼 이래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중국에서 오악은 황제가 제사를 지내던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오악은 중화의 영토적 경계를 나타낸다. 오악의 내부는 ‘화(華)’며 바깥은 ‘이(夷)’다. 오악의 밖에 존재하는 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불렀다.

 



 <태산 등산로 구간거리>

우리가 올랐던 태산동로(東路), 간체자(簡體字)로 쓰여 있어 열거하였다. 대묘(岱廟)-대종방(岱宗坊) 0.5km, 대종방(岱宗坊)-홍문(紅門) 1.2km, 홍문(紅門)-두모궁(斗母宮) 1.3km, 두모궁(斗母宮)-호천각(壺天閣) 1.8km, 호천각(壺天閣)-중천문(中天門) 0.7km, 중천문(中天門)-오대부송(五大夫松) 1.2km, 오대부송(五大夫松)-대송정(對松亭) 0.7km, 대송정(對松亭)-남천문(南天門) 0.8km, 남천문(南天門)-옥황정(玉皇頂) 0.8km, 옥황정(玉皇頂)-후석오(后石塢) 1.5km.

 사진 아래부분 태산서로(全程 7.8km), 대묘(岱廟)-보조사(普照寺) 1.8km, 보조사(普照寺)-대중교(大衆橋) 0.8km, 대중교(大衆橋)-흑용담(黑龍潭) 0.6km, 흑용담(黑龍潭)-장수교(長壽橋) 1.3km, 장수교(長壽橋)-선자애(扇子崖) 3.3km이다.   

대묘부터 옥황정을 지나 후석오까지 10.5km이며 우리일행은 옥황정까지만 오르고 공북석(拱北石)과 첨로대(瞻魯臺)등 정상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고 케이블카로 하산한다.

 

<태산 산행 첫관문인 일천문>
 

 일천문으로 조금 오르면 만선루가 있다. 2월 18일 구정부터 3월 3일까지 2주간 중국 구정명절 연휴기간이다. 구정명절기간이라 홍등을 메달아 놓은 풍경.
 

 거대한 고목이 관문처럼 쓰러져 있다. 저위 매점에서 1元을 주고 속이 붉은 무우조각을 사먹었는데 그냥 무우 맛이다.  
 


 <호천각, 壺天閣>
 

 이곳 현지 중국인들에게는 매우 성스러운 곳이라 가파른 계단길을 안스러울 정도로 힘들어 하며 오르내리다. 
 

 <중천문>

 태산은 태안시 시내와 맞닿아 있으며, 초입부터 산중턱인 이곳 중천문까지 전용 미니버스가 운행하고 있다. 사진의 중천문부터 하산하는 버스정류장까지는 완만한 경사의 0.2km거리로 도로 주변에는 식당과 관광기념품 가게들이 있다. 0.2km 도로를 걸어온 다음 정상을 향해 다시 급경사 계단을 오르게 된다.

우리일행은 중천문 식당가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몇가지 요리를 먹었는데 그중 중국식 쌀국수와 태산의 名物인 대총전병(大蔥煎餠)을 맛보았다. 밀가루와 옥수수 반죽을 얇게 부친 뒤 계란을 다시 얇게 도포 후 대파를 넣고 말아 담백하기는 하나 별다른 맛은 없다.     

 <오대부송, 五大夫松>

운보교를 지나면 오대부송이다. 진시황제가 태산을 오를 때 비를 피하게 해준 소나무로 진시황이 오대부라는 벼슬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오대부송은 후대 다시 식재한 것이다.
 


 중국인들이 붉은 머리띠를 이곳까지 두르고 와서 양끝에 돌을 매달아 나무를 향해 던지면 가지에 걸리게 된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다. 
 

계단을 따라 山頂까지 오르다보면 마애석각(摩崖石刻)이 1,000여곳에 달한다.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등 없는 것이 없다.
 


 
 

 대부분이 위 사진상과 같이 급경사 계단길이다.  

 



 

 <승선방>
 


 <南天門>

저위 남천문이 보인다. 저곳까지 오르면 평길 같은 길을 따라 약 30여분 걸어 옥황정에 오른다.
 

 

 남천문에서 올라온 계단길을 보며 한컷.


 

 <天街>

 남천문을 들어서면 바로 식당과 숙박시설이 있는 천가가 나온다. 

 


 천가 풍경
 


 천가(天街)에서 내려다본 태산 돌계단 등로, 초입부터 중천문까지 7,412개 중천문부터 남천문까지 1,633개 총9,054개의 돌계단으로 이루어졌으며, 도보등정 시 약 3시간이 소요된다. 
 


 태산 정상 풍경 



 


 


 


 

 

 

 <당마애; 唐摩崖>

금빛으로 쓰여진 당나라 현종의  "紀泰山銘"(기태산명) 摩崖碑, 세로 13m 가로 5.3m의 바위에 996字가 새겨져 있다.




<옥황정, 玉皇頂> 

 

 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태산에 올라 제를 지냈다. 그래서 태산에 붙여진 이름이 ‘오악독존(五嶽獨尊)’이다.
 저 오악독존 마애비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 태산을 올랐다고 인정 받을 만한 유명한 장소다.

 

 옥황정에서 내려다 본 공자묘<孔子廟>와 바로 아래 태산 도교 성지인 벽하사<碧霞祠>가 있다. 옥황상제의 딸이자 태산의 여신인 벽하신군을 모신 사원이다.


옥황정(玉皇頂)에서 서쪽으로 1.5km 거리의 후석오(后石塢).

 

<拱北石>

안내판 설명에 의하면, 공북석은 北斗를 향해 기울어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바위의 형상이 바다를 탐험하는 사람과  같다고하여 "探海石"이라 부른다. 이곳에서는 동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수 있으며, 하늘의 화려한 구름을 감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첨로대 바위 "造化鐘神秀"(조화종신수)라 쓰여져 있는데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다.

<첨로대, 瞻魯臺>

태산은 2천년전 춘추시대 노나라 북쪽 변경이었다. 이곳에서 바라다보면 남쪽방향으로 노나라 수도 曲阜(곡부)를 볼수 있어서 "첨로대"라 한다.

첨로대에서 바라다 본 정상 풍경, 제일 높은 곳이 옥황정, 바로 아래 孔子廟, 碧霞祠가 보인다. 

저멀리 월관봉(月觀峰)의 케이블카 정류장(索道站)이 보인다.



월관봉(月觀峰)에서 바라본 태산 정상 풍경.


 
 
태산에 오르는 코스는 두 개입니다. 편한 코스와 힘든 코스. 편한 코스는 천외촌(天外村)에서 중천문(中天門)까지 버스를 이용하고 중천문에서 남천문(南天門)까지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남천문에서 바로 하늘길(天街)만 통과하여 오르면 태산 정상이지요. 태산에 올랐다고 하기에는 거저먹기에 가까운 이 코스를 '천외촌 코스'라고 부릅니다.

힘든 코스는 매표소가 있는 홍문(紅門)에서 중천문, 남천문, 하늘길까지 전부 걸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 길은 홍문 코스라고 합니다. 두 개의 코스는 처음 출발점에서 중천문까지만 다를 뿐 나머지는 겹쳐집니다. 그러니까 중천문은 도보 이용객과 버스 이용객이 만나는 지점이지요. 그 이후 걸어올라 가느냐, 케이블카를 타느냐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저희는 홍문 코스를 따라 정상까지 걸어올라 갔다가 천외촌 코스로 편히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가이드북에는 예상 소요 시간이 6시간가량 된다고 하였으나, 워낙 극심한 운동부족과 게으름으로 단련된 몸이기에 8시간 정도 걸릴 거라 각오하였습니다.

조 교수님은 올라갈 때 편히 올라갔다가 걸어 내려오는 게 어떻겠냐고도 하셨지만, 나이답지 않은 부실한 무릎 관절을 가지고 있는 제게는 계단이나 산을 '오르는 것'보다는 '내려오는 것'이 더 큰 고통이기에 제 주장을 관철시켰지요.

택시를 타고 홍문으로 가자고 하면, 태산의 첫 번째 문인 일천문(一天門)에서 내리게 됩니다. 일천문에서 홍문까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니 택시기사에게 분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홍문까지의 거리는 한국의 여느 산 입구와 비슷합니다. 각종 기념품과 모자, 지팡이 등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지요.

▲ 태산의 첫번째 문인 일천문(좌)과 공자가 지나갔다는 공자등임처(우)
ⓒ 윤영옥
일천문을 지나면 나무가 예쁘게 꼭대기를 덮고 있는 '공자등임처(孔子登臨處)'라는 문이 보입니다. 예전이 공자님이 태산을 오르시면서, 이곳에서 무슨 말씀인가를 하셨다는데. 이전 기사에서 말씀드렸듯이 중간에 가이드북을 잃어버려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공자등임처를 지나 홍문을 들어서 홍문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삽니다. 헉! 80위안(우리 돈으로 약 만원)이나 합니다. 중국의 물가에 비하면 각 공원이나 유적지의 입장료는 정말 터무니없이 비쌉니다. 보험료는 2위안이며, 보험료를 내고 안 내고는 선택사항일 뿐 필수는 아닙니다만 혹시 모를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여 보험료까지 82위안을 내고 표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노약자와 학생, 군인 할인 등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우리나라는 어린이는 나이에 따라 할인을 해주잖습니까. 그런데 중국에서는 나이가 아니라 키 1.2m 이하의 어린이가 할인 대상에 해당됩니다.

또 태산에서만 본 흥미로운 할인은 '기자 할인'입니다. 태산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은 입장이 무료입니다(그런데 외국 기자도 해당이 되는지, 기자라는 신분을 무엇으로 증명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을 가지고 갔더라면 한번 시험이라도 해볼 걸 그랬습니다).

▲ 홍문(좌)을 지나면 매표소가 있고 만선루(우)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태산 등반이 시작됩니다.
ⓒ 윤영옥
만선루(萬仙樓) 앞에서 검표를 하고 만선루를 지나면 드디어 태산 등반 시작입니다. 태산 등반은 우리나라 산을 오르는 것과는 다릅니다. 제가 이전 기사들에서 누차 이야기했듯이 중국의 산은 전부 계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등산화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그냥 편한 운동화면 되지요. 저는 이날 치마 입고 하이힐 신고 올라가는 초인적인 처자도 보았습니다.

일천문에서 중천문까지는 약 6.2km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누가 세어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누구는 7412개의 계단이, 또 다른 누군가는 7421개의 계단이 있다고 하니 대략 7420여 개의 계단이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게 말이 7420여 개지, 직접 올라가 보시면 장난이 아닙니다. 그것도 중천문까지의 계단만 이 정도지 중천문 이후에는 더 살인적인 계단이 남아있지요. 태산에 한 번 올라갔다 온 뒤로는 계단만 봐도 치가 떨린다니까요.

▲ 두모궁 입구와 두모궁 내부, 소원을 걸어 잠근 자물쇠
ⓒ 윤영옥
만선루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두모궁(斗母宮)이 나옵니다. 두모궁은 태산을 수호한다는 두모신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향을 피우며 절을 하고, 소원이 새겨진 자물쇠를 걸어 소망을 빕니다.

▲ 저 양옆의 손잡이를 문지르면 물방울이 튄다는데, 이것도 돈을 내야 할 줄은 몰랐지요.
ⓒ 윤영옥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낯익은 물건이 눈에 띕니다. 물이 담긴 대야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 있고, 그 손잡이에 손바닥을 살살 문지르면 물방울이 튀어 오른다나 어쩐다나. 괜스레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하며 직접 시범을 보였으나. 물 한 방울 튀지 않습니다. 어? 왜 나는 안 되지?

한국인은 끈기의 민족. 안 되면 될 때까지! 몇 번을 더 문질러 보았습니다. 여전히 물방울은 튀어오를 기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이 작은 세숫대야가 제 오기를 자극하는군요. 본격적으로 물방울과의 한판승을 벌이려는 찰나, 조 교수님께서 외치십니다.

"어? 윤 교수! 이거 한 번 문지르는 데 2위안씩이라는데?"

어머나! 저는 미처 보지 못했으나 한쪽 구석에 2위안이라는 작은 쪽지가 수줍게 붙어있었던 것입니다. 유료라는 말에 갑자기 주춤해졌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돈 내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적어도 10위안은 벌었습니다, 하하하.

▲ 태산의 수호신, 두모낭낭
ⓒ 윤영옥
두모궁을 나와 조금 더 걸으면 양 갈래 길이 나옵니다. 왼쪽 길은 그대로 태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경석욕(輕石峪)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경석욕은 자연의 너럭바위에 금강경(金剛經)을 새겨 놓은 곳입니다. 경석욕을 보면 다시 이 양 갈래 길로 되돌아 나와야만 태산 등산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갈림길은 언제나 고민과 선택을 요구합니다. 이 지점은 일천문에서 중천문까지의 거리의 반 정도 되는 곳입니다. 사실 조금 힘이 들기는 했지요. 이제 와서 생각하기에 ‘조금’ 힘이 들었다고 여겨지는 것이지, 아마 그 당시에는 ‘많이’ 힘이 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지친 관광객들을 움직이는 단 하나의 주문이 있지 않습니까. '이왕 온 김에 보고 가야지, 언제 또 여길 오겠니.'

경석욕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직접 보니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합니다. 글자 한 자의 크기가 50cm 정도 되고 전부 1043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데. 중국 사람들은 자연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미인가 봅니다. 산을 전부 돌계단으로 깔아버린 것도 그러하거니와 태산 정상까지 제대로 된(?) 바위가 없습니다. 틈만 있으면 전부 빨간 글자들을 새겨버렸지요.

▲ 금강경이 새겨진 경석욕
ⓒ 윤영옥
경석욕을 되돌아 나와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중천문까지 가는 동안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어찌 일일이 다 글로 적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숨은 차오고 말수는 적어지고 다리는 무거워지고 있었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제 겨우 중천문에 왔을 뿐인걸요. 다음 관문인 남천문까지의 코스는 거의 죽음에 이른다는 가이드북의 경고에 엄습해오는 두려움을 간신히 억누르며 시원한 빙과 하나로 속을 달래며 휴식을 취합니다.

▲ 이제서야 겨우 중천문에 다다랐습니다.
ⓒ 윤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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