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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칼럼] 制度的 견제 사라진 대통령은 낭떠러지에 혼자 선다

鶴山 徐 仁 2025. 6. 7. 11:19

오피니언 칼럼

[강천석 칼럼] 制度的 견제 사라진 대통령은 낭떠러지에 혼자 선다

국민이 왜 자기 찍었는지보다

왜 찍지 않았는지

이유 먼저 들여다봐야

위기의식 놓치면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에 매달려

나라 그르쳐

강천석 기자

입력 2025.06.06. 23:55


어떻게 이겼고 왜 졌는지는 싸워본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 6·3 대선에 대해선 이재명 대통령과 낙선한 김문수 후보가 제일 정확히 안다. 이 후보는 선거 유세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 말이라며 “정치는 우리가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상대방이 자빠지고 그럼 우리가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김문수 후보의 패인(敗因) 분석은 좀 길다. 상대가 대통령에 취임한 날 “우리 당이 계엄이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벌인 대통령을 뽑았고, 우리에겐 그것을 제어(制御)하는 힘이 없었다”며 ‘절대로 이런 식의 계엄이 다시 있어선 안 된다’고 했다. 선거에 지고 나서 깨달은 것일까, 아니면 알고 있었으면서도 행동으로 옮기기 힘든 말 못 할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튼 두 사람 말을 모으면 대선의 큰 그림은 그려진다.

결국 선거의 승패는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지난해 12월 3일 밤 정해졌다는 설명이다. 그날 대통령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진 뒤 몇 군데서 전화가 걸려 왔다.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니냐. 혹시 과음(過飮)….’ ‘부인 특검 문제로 폭발한 거 아니오….’ 오래전 현장에서 떠난 기자에겐 해 줄 말이 없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넣어 첫째 짐작은 사실이 아니라는 답을 들었으나 둘째 용의점(容疑點)인 부인과의 관련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하루 걸러 특검과 탄핵안을 내놓아 정부를 마비시키고, 국가 현실에 맞지 않는 법안을 잇달아 통과시켜 대통령 거부권을 유도하고, 이재명 대표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 수사 검사 특검, 법관 기피 신청 등등 온갖 수단을 동원한 야당 책임은 또 얼마나 크냐는 양비론(兩非論)은 합리적인 사람들이 일이 터진 후 내놓은 설명이다. 그러나 이걸론 ‘먼저 자빠져 버린’ 비상계엄 선포를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선거 득표율은 이재명 49.42%, 김문수 41.15%, 이준석 8.34%였다. 대승(大勝)일까, 신승(辛勝)일까. 통계는 불리하게 읽는 쪽에 약(藥)이 된다. 이번 대선 득표를 국회의원 선거에 대입(代入)하면 지역구에선 민주당 170석, 국민의힘 81석이다. 국민의힘의 참패다. 그런가 하면 서울에선 ‘김문수+이준석의 득표율’은 10개 지역에서 이재명 득표율을 웃돌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후보를 찍은 이유는 ‘계엄 심판’ 27%, ‘행정 능력’ 17%, 김문수 후보는 ‘도덕성·청렴' 33%, ‘이재명이 싫어서’ 30%였다. 찍지 않은 이유론 이 후보에 대해선 ‘사법 리스크·범죄 혐의' 30%, ‘신뢰 부족·거짓말' 18%, 김 후보에 대해선 ‘계엄 옹호’ 30%, ‘당(黨)이 싫어서' 19%였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사를 듣고 취임사대로만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여러 대통령을 겪었으면서도 국민은 여전히 그런 희망을 붙들고 있다. 연설문에선 사이좋게 지내던 두 단어도 현실에선 자리싸움을 벌인다.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우선이란 말은 검사 120명을 투입한 사상 최대 3개 특검과 사이좋게 지내기 어렵다. 올 연말까진 특검에서 터져 나온 온갖 선정적(煽情的) 뉴스들이 민생 뉴스를 뒷방으로 내몰 것이다. 적폐(積弊) 청산이란 늪에 발을 들였던 대통령이 제 발로 늪을 빠져나온 경우는 없었다.

지금 대통령에겐 잘못을 바로잡아 줄 제도적 견제 장치가 없다. 가드레일 없는 낭떠러지 앞에 혼자 서 있는 꼴이다. 거대 여당은 완전히 평정(平定)됐고, 야당의 기력(氣力)은 바닥이 났으며, 사법부는 포위 공격으로 흔들리고, 헌법재판소도 내일모레면 대통령에 유리한 쪽으로 재편된다. 공영(公營) 방송이란 이름의 국영(國營) 방송들은 풀보다 먼저 대통령 쪽으로 드러누웠다.

제도적 견제가 무너지면 대통령 개인의 자제(自制)와 절제(節制)밖에 기댈 데가 없다. 입헌(立憲) 민주주의는 개인의 절제를 불신(不信)하고 권력 분립에 의한 제도적 견제를 선택한 시스템이다. 한국 정치는 제도적 견제에서 개인적 절제에 대한 기대로 후퇴했다.

역설(逆說)이지만 대통령의 우군(友軍)은 나라 안팎의 위기뿐이다. 위기는 ‘하고 싶은 것’을 하려는 대통령을 ‘해야 할 일’ 쪽으로 돌려세워 탈선(脫線)을 막기도 한다. 대통령은 경제가 위기 상황이라고 했고, 대통령 되고 나서 유일한 동맹국 미국과의 관계를 비롯한 외교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위기와 친하게 지내며 자제해야 한다.

대통령이 경기지사 시절 부지사로 있던 사람이 북한에 불법으로 돈을 보낸 혐의로 엊그제 대법원에서 7년 8개월의 중형(重刑)을 선고받았다. 대통령은 이 사건에 공범(共犯)으로 기소돼 있다. 국민에게 아무 설명이 없어도 되는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