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적 진실 규명 없이 선고? 헌재, 헌법 위에 군림하려 한다"
"실체적 진실 규명 없이 선고? 헌재, 헌법 위에 군림하려 한다"
[김윤덕이 만난 사람]
헌법재판소 직격한 헌법학 석학,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
1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연구실에서 헌법학자 허영 교수가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고운호 기자
입력 2025.02.24. 00:06업데이트 2025.02.24. 11:04
지난 19일 서울 논현동 연구실에서 만난 헌법학자 허영 교수는 "홍장원 메모, 곽종근 회유 의혹 등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없이 선고하면 국민의 큰 저항을 부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허 교수가 들고 있는 '한국헌법론'은 올해 스물한번째 개정판을 낸 1200쪽 분량의 방대한 저술로, 헌법 전공자들의 필독서다. /고운호 기자
12·3 비상계엄 후 헌법서 판매가 급증한 가운데, ‘한국헌법론’이 스물한 번째 개정판을 냈다. ‘한국헌법론’은 이 분야 최고 석학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의 저술로, 헌법 전공자들의 필독서다.
허 교수가 개정판 서문에서 헌법재판소를 작심 비판했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사건을 이념 편향적인 일부 판사가 결정하는 비정상적 현상은 우리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19일 조선일보와 만난 노학자는 “헌재가 헌법 위에 군림하려 한다”고 개탄했다. “홍장원 메모, 곽종근 회유 의혹 등 실체적 진실 규명 없는 선고는 큰 저항을 부를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을 주도했다.
◇ 헌재의 위법 사유 10가지
-비상계엄 이후 헌법서 판매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헌법은 한 나라 통치 질서의 큰 흐름을 규범적으로 이끌어가는 법이다. 살아 있는 생물과도 같은 정치가 결코 이탈해서는 안 되는 궤도를 그려주는 게 헌법이다. 모든 국민이 헌법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헌법재판소의 이념 편향성을 우려하셨다.
“일국의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심판을 뭔가에 쫓겨 서둘러 끝내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중립성을 잃은 헌재의 심판이 국민의 승복을 받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헌법재판소가 법을 위반한 사유가 10가지가 넘는다고 했던데.
“공판 준비 기일을 일방적으로 지정한 것부터 피고인의 증인 신문 참여권을 막은 것, 진술이 바뀐 증언을 증거로 채택한 것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탄핵소추의 핵심인 내란죄 철회 요구를 헌재가 수용한 것이 가장 심각한 위법이라고 하셨다.
“국회 측 김진한 변호사가 ‘(소송 기간이 길어질 것을 우려해)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빼겠다’고 신청하면서 ‘그것이 재판부가 저희에게 권유하신 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재판부가 탄핵 사유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빼라고 권유했다는 것 아닌가? 내란죄를 빼면 안철수 의원 말대로 ‘사기 탄핵’이다. 내란죄 없이 내란 행위를 어떻게 심판하나?”
-대통령 공백이 지속되면 경제·안보에 타격을 주는 건 사실 아닌가? 헌재가 신속성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고.
“탄핵심판의 본질은 신속성이 아니다. 헌법이 추구하는 통치권의 기본 원리는 민주적 정당성, 절차적 정당성, 기본권 기속성이다. 특히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민주적 정당성이 가장 막강한데, 그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에서 ‘임명직’ 재판관 8명이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졸속으로 진행한 건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나라의 안위를 그렇게 걱정한다면 왜 한덕수 권한대행의 탄핵심판을 서둘러 진행하지 않았나?”
-한 총리 탄핵은 기각돼야 한다고 보시나?
“물론이다. ‘주석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권한대행자의 탄핵소추 발의 및 의결정족수는 대행되는 공직자의 그것을 기준으로 한다’고 돼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에 준하는 정족수, 즉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탄핵소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저자의 사견’이라는 입장인데.
“집필자가 헌법재판소 재판연구관이고, 주석서를 발간한 곳이 헌재 산하 헌법재판연구원이다. 이를 부인하려면 그에 대한 강력한 반론을 제시해야 한다. (의결정족수를 마음대로 결정한) 국회의장에게 의안을 정리할 권한은 있는지 몰라도 헌법을 해석할 권한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2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10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8분 만에 퇴정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현직 지검장 憲裁 비판, 과하지 않아
-헌재가 ‘수사 또는 재판 중인 사건의 서류는 송부·촉탁을 금지’한 헌법재판소법을 위반했다고도 하셨다.
“수사·재판 중인 사건의 서류를 송부·촉탁하지 않도록 하는 건 헌재 심판의 중립성 때문이다. 증인들이 수사기관에서 뭐라고 진술했는지 알게 되면 예단이 생길 것 아닌가. 그런데도 헌재는 수사 기록의 송부·촉탁을 수용했고, 이를 증거로 채택했다.”
-헌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때 선례가 있다고 주장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은 2017년에 있었고, 2020년에 형사소송법이 개정됐다. 개정안의 핵심은 수사기관에서 한 증인의 진술을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하면 이를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헌법의 대원칙인 무죄 추정의 원칙, 공판 중심주의 때문이다. 더구나 곽종근, 홍장원 등 진술에 의심이 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내란죄 여부를 좌우할 홍장원 메모의 진실, 곽종근 가스라이팅의 진실을 규명하는 대신 재판의 신속성을 위해 수사 기록을 증거로 채택하겠다는 건 언어도단 아닌가.”
-정형식 재판관은 ‘탄핵심판이 헌법 재판이라는 사정을 고려해 형사소송법의 전문 원칙을 완화해서 적용해야 한다’고 설명하던데.
“매우 위헌적인 발상이다. 헌법이 헌재에 부여한 가장 중대한 업무는 국민의 기본권이 입법·행정·사법부에 의해 침해됐을 때 이를 바로잡아주는 것이다. 따라서 절차적 정당성이 보장돼야 한다. 정 재판관의 발언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헌재의 의무를 깡그리 무시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헌법학자 회의’란 단체는 대통령 방어권 보장을 의결한 인권위를 ‘내란 우두머리를 옹호했다’고 비난했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헌법학회장이 내 제자인데 그에게 물어보니 금시초문이라고 하더라. 비상계엄 직후 급조된 단체로 보인다.”
-대통령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고 변호인단이 충분히 방어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해 체포와 구속을 면한 사람이 이재명 대표 아닌가? 그런데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3분의 발언 기회를 달라고 하는데도 헌재가 거부했다. 오죽하면 현직 지검장(이영림 춘천지방검찰청 검사장)이 일제 재판관에 빗대 헌법재판관을 비판했겠나. 나는 그 비유가 결코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제1차장이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10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국가긴급권 과잉 행사일 뿐
-계엄 직후 한 일간지에 쓴 칼럼에선 ‘비상계엄 선포는 헌법이 정한 발동 요건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내란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런가?
“비상계엄 선포권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가긴급권 중 하나다. 또한 지금이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인지 판단하는 것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다. 대신 국회는 해제 요구권으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다. 비록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계엄을 선포했지만 국회의 해제 요구를 대통령이 받아들였으면 그것으로 일단락된 것이다.”
-국회에 군대를 투입한 것은 치명적이었다는 의견이 많다.
“형법상 내란죄는 ‘고의로 국가 권력을 배제하고,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것’을 구성 요건으로 한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이 국가 권력을 찬탈한다는 게 말이 되나? ‘국헌 문란’으로 따지면 29번 줄탄핵에 4조가 넘는 예산을 삭감해 국정을 마비시킨 민주당 책임이 더 크다. 폭동의 요소를 갖췄다고도 볼 수 없다. 고작 200명 군인이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동원됐다. 내가 볼 땐 국가긴급권의 과잉 행사인데, 이를 내란죄로 처벌한 사례는 세계 헌정사에 없다.”
-민주당의 ‘내란 옹호’ 프레임에 걸릴 발언인데.
“그 당은 위헌정당해산 심판 청구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월 2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동사거리에서 열린 '내란종식·헌정수호를 위한 윤석열 파면 범국민 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헌재, 이념 수호기관으로 전락할 것인가
-25일 대통령의 최종 변론 기일이 잡혔다.
“내란 탄핵의 기폭제로 작용한 홍장원 메모의 진실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변론을 종결해서는 안 된다. 필적 감정과 함께 메모를 정서했다는 보좌관의 증인 채택, 곽종근을 회유했다는 의심을 받는 국회의원을 불러 대질 신문하는 등 실체적 진실을 밝힌 후 평의에 들어가야 한다.”
-헌재 결정은 어느 쪽으로 전망하시나?
“헌법 재판은 합법성에 더해 합목적성을 판단한다. 재판 결과가 사회 안정을 촉진할 것인지, 해칠 것인지도 함께 판단한다는 뜻이다. 여론은 그래서 중요한데, 대통령 구속 후 급등한 지지율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이후 헌재가 이념 수호 기관으로 전락했다고 하셨다.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심판이 4대4로 갈리는 것을 보고 개탄했다. 취임 이틀 된 위원장에게 중대한 탄핵 사유가 있을 리 없다. 헌재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바닥을 쳤다.”
-헌법재판관을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3:3:3으로 임명하는 현행 제도는 합리적인가?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다. 겉으론 공평해 보이지만 독재를 감추려는 명분이었다. 헌재 재판관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 중립적인 사람으로 선출해야 한다.”
-재판관도 경제계, 언론계, 학계 인물로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판사는 합법성 판단엔 능하다. 그러나 사회 안정성에 기여해야 할 헌법 재판은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투영돼야 한다.”
-개헌 목소리도 높다.
“87년 체제의 수명은 다했다. 대통령 결선제, 4년 중임제를 도입해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폐지하고, 면책 특권도 제한해야 한다.”
-일각에선 국회해산권도 주장하던데.
“조건부로 도입할 수 있다. 대통령·국무위원 탄핵소추가 헌재에서 기각됐을 경우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왜 헌법을 연구하게 되셨나?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를 목격하면서 헌법에 눈을 떴다.”
-뮌헨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가 ‘창조’지에 쓴 글로 유신 정권의 고문을 받으셨다던데.
“국가 주도 경제정책이 헌법 이념에 어긋난다는 취지로 글을 썼다가 남산에서 3일 동안 지독한 고문을 받았다.”
-김동길, 이극찬 교수와 함께 연세대 3대 명강으로 불렸다.
“서울대, 고려대 학생들까지 몰려와 도강하는 바람에 연세대생들이 강의실 입구에서 학생증 검사를 했다고 한다(웃음).”
-곧 구순인데, 참으로 정정하시다.
“매일 아침 1시간씩 운동하고, 삼시세끼 소식한다. 술은 정년 퇴임하며 끊었고, 담배는 원래 안 피운다.”
-보수이신가?
“스스로는 중도라고 생각한다. 찬탁·반탁으로 싸우던 해방 정국처럼 찬탄·반탄으로 싸우는 이 나라의 미래가 걱정돼 요즘 잠이 오지 않는다.”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는 허영 석좌 교수. 곧 구순이지만 허 교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헌법재판소의 위법 사유를 하나하나 제시해 나갔다. /고운호 기자
☞허영
1936년 충남 부여 출생. 대전고, 경희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뮌헨대에서 헌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본 대학, 바이로이트 대학 교수를 거쳐 1982년부터 연세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정년 퇴임 후 명지대 석좌교수,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했고, 현재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있다. ‘한국헌법론’, ‘헌법이론과 헌법’,‘헌법소송법론’ 등 한국 헌법학 이론의 기틀을 다진 저서를 여러 권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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