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헤는 1869년 이탈리아의 타셀타에서 태어났으며 청년시절 직업군인의 꿈을 품고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포병장교 훈련을 받았고 그후부터 과학과 기술에 대한 흥미를 키워나갈 수 있었다. 1913년에는 "전시 항공기 사용을 위한 법칙"이라는 제목의 군사교범을 만들었고, 전쟁에서 야전의 육군기동문제는 이제 끝났으며 그 보다는 전쟁이전 화면체 국가와 국가사이의 분쟁으로 발전했다는 전쟁관을 세우게 되었다. 분쟁이 교전국 자원에 의하여 지속되기 때문에 두헤는 적국의 자원고갈을 가속시키는 동시에 이탈리아의 자원을 절약하는 방향으로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현대전의 성격은 후에 두헤의 항공력 개념의 핵심적인 기본 전제가 되었다. 두헤는 군 관계자는 물론 정부관리를 포함하여 누구에게든지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으며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결국 1916년 허위사실 유포 및 기밀정보 누설, 군의 위신 실추 등으로 1년 징역을 언도 받았다. 1917년 카포레토 (Caporetto)전투에서 이탈리아는 육군 30만명 이상의 손실을 가져 온 패배를 당하고 나서야 두헤의 주장이 옳았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1918년 그는 공식적인 명예회복과 함께 일반비행위원회에 복직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연구에 전념키 위해 "이탈리아는 올바른 방향으로 항공자원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는 마땅히 실현되어야 할 것이 안되고 있다고 생각되는 한 무관심한 채로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군을 떠났다. 비록 두헤는 중령으로 퇴역하였지만 1921년 다시 장군으로 승진되었으며 항공총감을 역임하고 퇴역하였다. 그는 1930년 죽음에 이르기까지 군인으로서, 사상가로서 조국 이탈리아가 제한된 가용자원을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항공력이 미래전쟁을 지배할 것 이므로 이에 대비케 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의 주요저서에는 제공권(Command of the Air, 1921/1927), 미래전 양상(The Probable Aspects of
the War in the Future, 1928), 1900년대의 전쟁(The War of 19C, 1930 : 마지막 저서) 등이 있다.
항공전 기초에 관하여 처음으로 종합적인 기술을 시도한 제공권(Command of the Air)에서는 그는 제공권의 획득이 곧 승리를 의미하며
국가를 방위하기 위해서는 전시에 제공권을 획득 할 수 있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항공력이 있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는 제공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적을 공중이나 작전기지, 생산지 등 어떤 곳에서든지 공격하여 적의 모든 항공 수단을 박탈해야 하며 이러한 종류의 파괴는 오직 공중이나 적국
내부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지상군이나 해군의 무기가 아닌 오직 항공 무기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지상군 및 해군의
점차적인 축소로서 제공권을 획득하기에 충분할 만큼 상대적인 항공력을 증강시킬 수 있으며 국가방위는 오직 적절한 힘을 가진 독립적 공군에 의해서만
보장될 수 있음을 기술하였다.
미래전 양상(The Probable Aspects of the War in the Future)에서는 과거
역사의 교훈과 과학기술의 진보로 인한 장차전의 전쟁성격에 대하여 상세히 논의하였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은 종전의 전쟁과는 달리 병력만 고갈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 국가의 생사를 건 투쟁이었으며 승리는 독일군을 격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독일국민의 정신적 및 물질적 여유를 고갈시킴으로써
달성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전통적 전쟁관에 항공력을 추가하였으며, 이러한 항공력은 전쟁을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고 전쟁종결을
앞당길 것임을 주장하였다.
1900년대의 전쟁(The War of 19C)에서는 가상의 항공전(프랑스 대 독일)에서 프랑스 방어망을 독일
전투기가 파상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극화(劇化)한 것으로, 지상목표물에 최대한의 피해를 주기 위하여 공격항공기를 대량으로 운용하고 화력집중 원리에
따라 단 한번의 공격으로 최대의 손실을 가할 수 있도록 항공력을 운용하였으며 프랑스 도시의 폭격을 "접근할 수 없는 화로"로 표현하였다. 즉
그는 항공기에 의한 폭격이 가공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이를 바탕으로 적의 항복을 강요할 수 있다고 보았다.
두헤는 항공전략사상의 선구자 역할을 한 이탈리아의 군인으로서 공중을 「제3의 전장」으로 표현하고 육.해군 전력에 대한 공군력의 우수성을
정당화 시켰으며 새로운 전략으로 획기적 전환을 마련하였다. 세계 열강이 두헤의 사상을 따랐으며 특히 영국공군(RAF), 미 육군 항공대 그리고
독일공군 교리에 항공력의 기초와 이론에 대한 논리를 제공하였다. 또한 공군의 독립에 관한 군 조직 및 운용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공군이
타군으로부터 독립되고 항공력이 장차전 승리의 결정적 수단이 될 것"이라 예언하였으며 그의 사상은 몇몇 오류에도 불구하고 1, 2차 세계대전시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 타당성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전쟁과 평화는 전쟁의 전략적 수준에서 결정되고 조직, 기획, 지원 및 지휘된다.
육군은 전투승리의 누적이 그들을 결정적이며
전략적인 작전위치로 격상시켜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적 육군에 집착함으로써 전술적인 수준으로 전락되었다. 해군도 또한 어느 정도는 전쟁의 전술적
수준에서 싸운다고 비판되어진다.
항공력은 전략적, 작전적, 전술적 수준의 전선을 압박함으로써 변화를 가져왔다. 항공기는 통상 전략적 수준의
효과를 달성하는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육·해군과 지상 장애물 위를 비행하여 상대국가의 핵심부를 강타할 수 있는 능력은 치열하고 장기적인
지상전투와 치명적인 해군 봉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준다. 전략적 수준에서의 폭격을 주장하였고, 세계 최초의 독립된 공군인 영국공군(RAF :
Royal Air Force)의 초대 공군 참모총장을 지냈던 휴 트렌차드를 소개하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자료 출처: http://www.airforce.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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